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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Mar 01. 2024

[자기 연민] Self-compassion

나를 동정하기 위함이 아닌 나를 수용하기 위하여.

Brené Brown의 "Atlas of the Heart"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직역하면 마음의 지도라는 이 책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지도라는 공간적인 요소에 맞추어, 어떤 특정 상황에 우리가 느끼는 특정 감정들을 '매핑 Mapping'하여 그 연결고리들과 지도 안에서의 인간의 경험들을 언어로 표현한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벌써 세 번 정도를 챕터마다 다시 읽어보는 중이다. 내가 말하고 싶던 이야기들이나 혹은 정확하게 표현할 줄 몰라서 허공에 떠돌기만 하던 것들을 찾아놓아, 희열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수많은 공감의 순간들을 뒤로하고 내가 글로 남기고 싶은 챕터 중 하나는 '자기 연민'에 관한 챕터다. 한국어로 자기 연민이라고 하면, 흔히 "자기 연민에나 빠져..."라는 식의 맥락에서 꽤 부정적이고 한심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데 브라운박사는 우리에게는 이 자기 연민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라며 오히려 더 많은 자기 연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했다. 나도 영문으로 읽을 때는 이 아이디어에 바로 수긍했지만 그걸 한국어로 생각하니 그 개념을 나 자신에게 적용시키기엔 나 스스로가 너무나 볼품없어지더란 거다.


영문으로 '자기 연민'이란, "Self-compassion"이라고 한다. Compassion 은 'Con-' (함께)라는 어두와 'pati' (고통)이라는 어근이 합쳐져, 함께 고통을 감내하다, 함께 괴로워하다, 혹은 함께 울다의 의미를 가진 단어다.  어떤 대상이 가진 감정에 대하여 함께 그 감정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mpathy라고 하는 공감과는 연관돼있기는 해도 그 결이 다르다. 브라운 박사는 이 Compassion이라는 감정의 하위 개념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컴패션', Self- compassion을 강조했다.


이 자기 연민은 사실 정신의학이나 사회학적으로도 '신뢰'만큼 중요한, 아니, 사회 내 안정과 구성인의 안녕에 필수인 요인이다.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 이 연민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고도 생각한다. 내 삶을 공감하고 함께 그 무게를 짊어지고자 해주는 타인들에 의해 일으켜 세워지고 또 그 타인 또한 내가 혹은 또 다른 타인이 그렇게 일으켜 세워주고자 할 때, 이 사회 전체에 대한 든든한 울타리와 도움을 인지할 수 있기에 그 데이터들이 축적될수록 신뢰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준 타인들을 사회로 인식하는 개인들이 스스로도 그 사회에게 신뢰를 주고자 하는 사람들로 다수의 구성원들이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선순환 안에서 신뢰사회로, 더욱 여유 있게 서로의 삶을 흘러 보낼 수 있는 풍족한 사회가 될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 그렇게 타인을 향하는 연민이, 사실은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도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민하는 것이 불쌍하게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의 어감이 다름을 인지하는 것이다. Self-compassion의 직역으로서 자기 연민은 나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소위 말해 '값싼 동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의 자아를 타자화 하며, 다른 누구도 정확히 알아주지 못했던 그 고통스러운 과거의 나에게 다가가, 현재의 내가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고통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현재의 나는 그것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음을 믿어야만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를 함께 데리고 가, 결국 우리가 원하는 성장과 치유의 유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과거의 나에게 다가가, 너 자신을 고치라고 혼내는 것이 아니라, 울고 싶다며 울어도 된다, 우리는 그럴 여유도 권리도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는 것 -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의 대상이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연민을 통해 차근차근 내 감정을 수용하고 그런 감정을 느끼고 삶의 진로를 선택해 온 나 자신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봐 준다면,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생길 테고 그것은 조금씩 더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나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휘할 연료가 되어줄지 모른다. 그리고 네 삶은 지금 이러한 모습이라도, 그랬을지라도, 혹은 그래야만 했다는 것이 --적어도 자기 합리화이거나 자기기만적이지 않다면-- 네 삶은 가치가 없는 삶이라는 거짓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도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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