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공원
“얼른 일어나서 두부 한 모랑 콩나물 천 원어치 사와”
또 시작이다. 일요일 아침만 되면 엄마는 꼭 나만 깨운다. 아빠도 동생도 드르렁 쿨쿨 꿈나란데 왜 나만 깨워. 잠옷 바람으로 툴툴대며 집 앞 마트 심부름을 다녀와도 이불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다. 숟가락 젓가락도 보기 좋게 놓아야 하고, 밑반찬도 덜어놓고, 간이 맞나 안 맞나 맛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 제일 성가신 아빠와 동생 깨우는 일이 남았다.
좌우로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보고 간지럽혀도 둘 다 콧바람만 킁킁, 입만 씰룩댈 뿐 일어날 생각이 없다. 결국 “차리는 놈 따로 있고 먹는 놈 따로 있네!”로 시작해서 “아침 밥 차려주는 가족 찾으러 떠납니다”로 끝나는 엄마의 돌림노래를 듣고 나서야 어슬렁어슬렁 식탁으로 나와 앉는다. 동생 녀석은 “이따 먹는다니까!”라고 부리던 성질은 어디 가고 반쯤 감은 눈으로도 된장 안 두부만 쏙쏙 잘도 골라 먹는다. 아빠가 밥 한술을 뜨고 나서야 나는 “잘 먹겠습니다”하고 밥숟갈을 든다. 어디 보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당근이 송송 올라간 노란 계란말이! 네 녀석이 오늘 내 첫 반찬이다. 나는 일요일이지만 엄마를 도와 밥상도 차리고 아빠가 수저를 들고 나서 밥숟갈 떴다고 밥을 먹으며 혼자 뿌듯하다.
아빠가 “뭐하노 밥 묵자” 라고 할 때쯤이면 엄마가 식탁에 앉으면서 TV를 켠다. 그럼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전국~ 노래자랑!’ 이 흘러나온다. ‘악! 저게 뭐가 재밌어!’ 동생이랑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구운 고등어 가시를 발라내는 데 열을 내고 있어도, 귀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어느새 같이 흥얼거리고 있다. 송해 선생님이 진안군 특산물을 가지고 나와 자랑하는 참가자와 한창 인삼 이야기를 하는데 김인협 악단장이 곶감을 몰래 하나 들고 가서 먹는다. TV를 보던 엄마와 아빠가 빵 터졌다. 웃다가 사레까지 들린다. 동생이랑 나는 엄마랑 아빠가 웃겨서 빵 터진다.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는 엄마랑 아빠가 웃겨서 전국노래자랑을 본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전국노래자랑이 끝나고 난 뒤에 하는 만화영화를 기다렸다. ‘은비까비’나 ‘날아라 수퍼보드’를 봐야 일요일의 단맛을 본 느낌이었다. ‘날아라 수퍼보드’의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와 ‘은비까비’의 ‘호호호호 쵸쵸쵸쵸’를 목청껏 따라 부르며 누가 더 만화영화 주제가를 많이 아는지 내기하다 보면 일요일 낮이 흘러갔다. 나중에는 꼭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나서야 만화영화를 봤다. 그래야 만화의 단맛이 더 길고 깊게 났다. 전국노래자랑은 나에게 끝나기를 기다리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일요일의 기억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방송이기도 했다.
일요일은 살면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일요일을 함께하던 가족은 동서로 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일요일 아침 요리를 준비하던 엄마의 칼질 소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고, 조금만 더 자겠다고 실랑이하는 아빠나 동생도 더는 없다. 월화수목금금금이 이어지던 여러 해가 지나고 가족들에게 일요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 일요일의 남자도 우리 곁을 떠났다. 살아생전 꼭 고향 이북에서 노래자랑을 하는 게 꿈이라던 선생님은 이제 ‘천국 노래자랑’을 열고 계실 테다. 일요일 12시. TV에서는 변함없이 ‘전국~ 노래자랑!’이 흘러나온다. 멜로디를 들으니 송해 선생님이 그리워 선생님을 만나러 옥연지로 발길을 향해본다. 옥연지 송해공원은 송해 선생님의 처가가 있는 곳으로 송해가 실향의 아픔을 달래던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옥연지 송해공원의 백세교와 백세정 (출처: 한국관광공사)
송해공원을 하루 만에 다 둘러보는 건 욕심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걸쳐 갈 때마다 천천히 둘러봐야 새롭다. 옥연지와 그 일대 모두를 송해공원이라 부르는데 저수지 면적만 14만 평에 이르고 그 주변의 둘레길은 자그마치 4km다. 가슴이 탁 트이는 크고 넓은 풍경이지만, 송해선생님의 품 안인 듯 아늑하다. 환한 웃음의 송해 선생님이 그려진 송해 기념관 옥상에는 전망쉼터, 그 옆으로는 대형 물레방아, 출렁다리, 시간에 맞춰 춤추는 음악분수, 곳곳의 포토존과 계절별로 볼 수 있는 향기로운 꽃들까지. 주차장 한편으로 만들어진 장터에서는 찐쌀, 제철 나물, 누룽지도 헐값에 후한 인심까지 얹어서 가져갈 수 있다. 날이 좋고 운까지 좋은 날엔 통기타 버스킹도 볼 수 있다. 노랫소리를 따라 백세교를 걷다 보면 백 세까지 건강하게 살자는 의미의 백세정을 만난다. 먼저 간 아들이 보고 싶어서였을까, 몇 해 전 떠난 아내가 그리워서였을까. 백 세를 5년 앞둔 어느 날, 선생님은 홀연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선생님이 없는 일요일은 계속 흘러갔다.
우린 그렇게 저마다 이별한다. 뜨겁게 뜨거운 안녕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알게 된다. 엄마가 그토록 아침에 나만 깨우던 이유가 나와 제일 먼저 떨어져 지내야 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아빠와 동생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건 엄마가 잔소리와 함께하던 포옹이 하고 싶어서였다는 걸. 또 알게 된다. 일요일의 남자 송해 선생님은 떠났지만, 일요일의 막내딸 김신영이 새로운 일요일을 만들어 간다는 걸.
평생 딩동댕과 땡을 외치던 송해 선생님은 ‘딩동댕과 땡 중에 뭐가 좋냐’고 묻자, ‘딩동댕이 좋다고 하지만 땡을 모르면 딩동댕을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의 이별은 때로는 땡이기도, 때로는 딩동댕이기도 했다. 우리 인생 그야말로 딩동댕동 아닌가.
송해공원 저수지가 햇살에 온몸을 맡긴 채로 반짝반짝 빛난다. 어지러운 달성 물길은 옥연지에 이르러서야 평온해졌다. 이제 새로운 일요일을 찾아 움직여본다.
▲송해기념관 벽면에 그려진 환한 웃음의 송해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