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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Nov 21. 2021

편안한 것에만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무언가와 편안하다는 것이, 익숙하고 하찮은 것에 무뎌진다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하는 생각 중, 편안하다는 것은 꼭 몸과 마음의 아늑함과 익숙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익숙함과 편안함이 다르게 해석되는 많은 경우가 있다.


예로 들자면,

새로운 도전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긴장되고 피곤하지만, 그러한 새로운 환경에 처하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 편안한 사람이 있다.

또는 새로운 환경으로 가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익숙하고 몸에 익은 이 환경과 순간을 벗어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많은 망설임도 있다.

따라서 나는 편한것만 참는다 라고 이야기할 때는 그 안에 숨은 속 뜻에 대해서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에게 편안함이란 꿈을 위해 어려운 길도 기꺼이 가는 나아가고 있는 동적인 내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편안함을 쫓는다고 할 때의 그 편안함이란, 

지금 처한 환경 상황 사람 역할에 익숙해져 머무르겠다는 말이 아니다.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난 편하지 못하다.

밤 잠을 설치고, 어딜 가나 주눅이 들고,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어디서나 목소리를 내기에 소심해진다.

즉, 나는 익숙한 환경에 있지만 편하지 못한 것이다.


살면서 때로는 매우 익숙하고 낯선 단어에 대해서 고찰해볼 기회가 있다.

아니, 기회가 있다기 보다는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입버릇 처럼, 습관처럼, 세상에서 이러하게 쓰이니 나도 언제나 처럼 그러하게 쓰고 있던 말 쓰임새가 몇가지 있다.

그런데 그런 당연한 말들이 더 위험할 때가 있다. 나의 정확한 마음과 환경에 대한 시야를 아주 당연하게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한 단어들에 대한 평소와는 다른 생각이 들거나, 진정한 의미를 깨닫거나, 깊게 고민해보고 싶은데 정답을 모르겠을 때에는 언제나 나에게 글이 있다.

써놓고 느낌을 남겨놓고 돌이켜볼 수 있게 저장해놓고, 나는 언제나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할 필요도, 손아귀에 쥔 모레알이 손틈 새로 빠져나감에 전전긍긍해 할 필요도, 쏜살같은 시간 앞에 무기력함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런 조급함들이 오히려 더 돌아가는 함정을 파놓기 때문이다.



언제나 입버릇처럼 편한것만 찾는건 아닌가 라는 물음 앞에,

이제는 다시 그 말을 정확히 하자.

편함을 찾는 건 언제나 옳은 일이다.

사람들은 '익숙함'을 찾는다.

그 '익숨함'이 옳은 일인지, 진정 자기가 원하는 일인지, 옳진 않지만 기꺼이 선택한 일인지 그따위의 가치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본능에 의해 항상 주어졌던 그 상황 속에 항상성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편안함'이라는 고급스러운 단어를 활용해 '익숨함'을 찾는 나의 비겁함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 단어 앞에서 자기의 삶을 합리화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흔하게도 '편안함'과 '익숙함'을 혼란스레 쓰고 있다.


내가 찾는 것이 '편안함'이기를, 

나의 기준과 양심과 삶과 가치관을 반영해, 내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기꺼이 불편한 길을 갈 용기를 가진 '편안함' 이기를.


내가 머무는 곳이 '익숨함'이지 않기를,

알맞는 것과 올바른 것과 원하는 것과 멋있다 생각하는 것을 애써 외면한 채,

지키고 싶은 것들에 매몰된 '익숨함'이지 않기를.


항상 스스로가 가장 양심적인 동반자가 되기를.

누구에게 의지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떳떳한 일상이기를.

돌이켜 보았을 때 나 자신에게 흐뭇히 웃어줄 수 있는 하루하루 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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