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생에서 이성의 존재가 완결일까>
네 명의 자식 모두 이혼하거나 파혼한다는 파격과 현실 그 사이의 설정점을 잡은 kbs주말드라마 <한번 다녀왔습니다>. 초반에 여성을 대상화한 몇몇 불편한 장면들과 잃어버린 동생을 가까이에 두고도 찾지 못한다는 뻔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드디어 그동안 주말 드라마들이 지독히도 고집했던 재벌들의 암투 이야기에 미스터리 스릴러인 듯~~~ 하다가, 갑작스러운 재벌 2세와 가난한 여주인공과의 사랑이야기가 신데렐라 신분상승 로맨스인가~~~ 하다가, 알고 보니 배다른 남매였다는 K-신파극의 종말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기혼자 3명 중 1명이 이혼하는 시대에 드.디.어. 2020년대 다운 주말드라마 설정이었다. 확률적으로 봐도 이혼한 사람이 있는 게 맞고, 한 집안에 여럿이 이혼한 사례를 종종 목격한 나로서는 실제로도 없지 않을 것 같아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비혼 주의 여성 캐릭터를 설정한 kbs 월화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도 마찬가지다. 이 두 드라마는 모두 결혼에 대한 변화된 사회상을 다루고 있다.
여자와 남자의 사회적 나이는 다르게 카운팅 되는 현실과, 결혼제도의 비합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30대 중반 전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마치 탈선하는 것처럼 고착화시킨 기존 언론관의 변화였다.
그러나 어째 극이 진행될수록 진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끝을 향해갈수록 이혼한 자녀들은 이전 배우자를 다시 만나거나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고, 비혼 주의 주창자는 갑작스럽게 로맨스물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어쩐지 모두가 생각하는 해피엔딩 아니면 ‘해피가 아니더라도’ 극과 인생의 완결은 남녀의 사랑이라고 느껴지게끔 한다. 연애를 하고 다시 배우자를 찾아야지만 이야기가 완결된듯한 느낌 말이다.
사랑의 영속성에 대해선 시니컬한 편이지만, 나도 여전히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 가치와 힘은 논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제는 그 대상이 좀 더 다양해져도 좋지 않을까.
어떻게 사랑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있겠는가. 가족, 친구, 동식물에도 있다. (나는 우리 집 극락조를 사랑한다. 새 잎을 내어줄 때마다 그렇게 신비롭고 귀여울 수 없다. 극라기라고 이름도 붙여줌) 그리고 요즘엔 취미활동이 그 사람의 인생이 돼버린 사람들도 많으니 사랑은 생명이 없는 물건이나 경험, 시간에까지 존재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는 사랑의 감정에 상호성이 필수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두 드라마의 예상되는 결말은 벌써부터 고루하고 어떤 이에게는 폭력적이다. 더 이상 이혼이 흠이 아니고 결혼은 선택이라고 하지만 결국 “왕자님과 또는 공주님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식의 결말에는 ‘이성이 없는 혼자’는 불완전한 상태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혼했지만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그 외에 것에서 행복을 느끼거나, 비혼 주의자 캐릭터가 그 설정 그대로에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백마 탄 왕자의 갑작스러운 등장보다 현실적이다.
사랑, 연애, 결혼같이 ‘이성(또는 연애대상)의 존재가 있어야만 내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 준다’는 이 마법 같은 주문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주문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봐왔던 매체에서 자리 잡힌 인식이었다.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외계인의 침공으로 지구가 종말 할 것이라고 꿈꿨던 2020년대에,
이혼은 더 이상 맞지 않는 또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이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비혼은 유별난 탈선의 선언이 아닌 개인의 선호에 따른 선택으로 존중받는 티브이 드라마를 꿈꾸는 것이 왜 더 어려운지 모를 일이다.
나는 이혼한 자녀가 남은 가족들과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았다거나 비혼 주의자가 여전히 비혼 주의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기다린다. 그 삶 그대로가 완전한 결말 말이다. 2030년대쯤엔 기대해봐도 될까.
+쓰고 보니 솔로찬양글 같은 느낌이 있다. 이쯤에서 나는 10년 차 연애 중이라는 반전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고 예상대로 난 빛이 나는 solo....(별)
참고로 이 글은 솔로 만세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것을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또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존중받길 바라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