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보다.
두 달 전 회사에서 업무복귀를 하라고 메일을 받았을 때 정말 출근을 해도 되는 건지 내가 근무하는 곳은 안전한 곳인지 어떻게 회사에서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회사는 멈추어 있었던 비즈니스를 다시 재생하기 위해 20가지 방안을 마련했다고 그 방안을 알려주었는데 그중에 직원들의 업무 환경의 안전과 청결은 당연하게도 맨 처음부터 언급되었다.
1. 업무 중 마스크를 착용할 것
2. 회사에서 마스크를 일주일분을 나눠줄 예정.
3. 출퇴근 시 자차 혹은 택시를 이용할 것. 비용은 회사에서 비용처리를 해줄 계획
4. 본사의 구내식당 이용시간은 12시-12시 반 사이이며 반드시 시간을 준수할 것.
5. 엘리베이터는 6명 이상 탑승 금지
6.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를 때는 휴지로 손을 감싸 누를 것
7. 회사 출입 시 체온 측정
8. 바이러스 의심증상이 있는 사람과 접촉을 했거나 불확실한 직원은 무조건 인사과에 보고할 것
9. 기침, 열, 콧물, 피곤 등과 같은 바이러스 의심증상이 있는 경우 무조건 인사과에 보고
10. 회사 내 에어컨 작동이 중단되고, 하루에 두 번 자동 환기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이 10가지는 실현 중이다. 아니, 3번만 빼고 말이다. (택시비를 두 달이나 지원해주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다만 지난주부터 날이 더워졌고, 유리창으로 둘러 쌓인 사무실 건물에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지기까지 건물은 그 열을 온전히 다 받고 있고, 에어컨까지 작동하지 않으니 마치 건식 사우나를 경험하게 되었다. 게다가 마스크까지 하고 있자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마주 보고 있지 않을 때, 혼자 있을 때 마스크를 살짝 턱에 내렸다가, 올리기도 하고, 잠시 벗어서 부채질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벗진 않고 있다. 직원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1번부터 10번까지의 방안은 두 달 전만 해도 어색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두 달 후 지금은 술에 잔뜩 취해도 휴지로 손가락을 감싸서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를 수 있을 정도로 적응과 훈련이 제대로 되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고 진화했다는 말을 이럴 때 체감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환경이 원치 않는 환경이고, 그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는 행동 들인 만큼 이 원치 않는 환경이 점점 나아지고 시간이 흐른다면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이 순간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그때가 돼서도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바로 ‘아이컨택’이다. 이런 뜬금없는 생각은 오늘 미팅 중에 느낀바이다.
오늘 여느 때나 다름없이 마스크를 쓰고 미팅에 갔다. 그리고 신기한 경험을 했다. 처음에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을 봤을 땐 누가 누군지 구별도 못했다. 화장을 안 한 이유도 있었고, 평소 사람을 볼 때 눈을 그렇게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오늘 미팅에 가서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신기하게도 단숨에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도, 식당에서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중에도 누군지 눈만 보고 알 수 있게 됐다.
쌍꺼풀이 없고, 아이라인을 그린 듯 만 듯 얇게 그려 넣는 전략팀의 클레어.
눈이 아몬드 모양을 하고 있고, 속눈썹이 꽤 긴 마케팅의 헬레나.
속쌍꺼풀이 있고, 눈이 아주 커서 눈 안의 검은 자 동그라미가 다 보이는 고객서비스팀의 엔젤리나.
마스크를 쓰지 않았으면 깊게 보지 못했던 눈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평소 이쁘다 생각하지 않았던 직장 동료들도 너무나 이쁘고, 신비한 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스크로 우리의 자유롭던 일상은 답답하게 가려졌지만, 대신 마스크가 가리지 못한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었고, 그 눈으로 평소에 보지 못한 곳을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마스크를 벗고 다시 그들과 대면했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일지, 어떤 새로운 느낌을 받을지 꽤나 궁금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