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기 훨씬 전부터 내가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방인으로 부유하는 삶에서 딴짓으로 나를 찾아가고 있다'는 브런치 작가 소개를 정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웃사이더 같았고, 이방인 같았다. 편안한 집 같은 공간과 사람을 갖기를 원했다.
미국에 와서는 나의 이방인스러움 또는 아웃사이더스러움이 조금 더 강해졌던 것 같다. 한국말로 할 때에는 나름 장난도 잘 치고, 가끔 재치 있는 말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 때도 있었는데 (진짜로? ^^;) 영어로는 그 모든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사실과 관찰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과학자의 기본 자질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원래도 일대일 또는 소그룹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선호하는 나였다. 사람이 많을수록 한 사람에게 자연스레 나누어지는 집중이 n분의 1로 줄어드니까. 사람 수가 적으면 적은 노력에 대다수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가까이 지내는 연구실원들과의 관계는 그럭저럭 만족했지만 다수가 모이는 자리는 의례 피하고 싶거나, 피하게 되었다. 갔다가 말 그대로 이방인임을 한껏 느낀 뒤 자괴감을 잔뜩 안고 지쳐 돌아오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런데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는 나에게 커리어 코치가 준 첫 번째 미션은 바로 '네트워킹'이었다. 네트워킹이라니!
너 홀로 하얗구나
미국에서 job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킹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건 미국인들 (또는 원어민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건 그들만의 리그, 이 사회에 이방인이 아닌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나는 그냥 내가 지금껏 해온 일을 바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닌가?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바보였는가?)
규모가 큰 이 연구실 구성원들과, 그래도 공통분모가 많은 이들과 네트워킹을 하는 것도 버거운데 학계 밖으로 나가 네트워킹을 하라니. 내 이력서를 준비하는 것도, cover letter를 다듬는 것도, 공고된 자리에 지원하는 것도아닌 네트워킹을 제일 먼저, 그리고 집중적으로 하라고 했다. 그게 잡을 잡는 가장 빠른 길이라면서.
그래서 시작된 네트워킹의 여정. 좁은 나의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informational interview를 시작했다. 만나서 무슨 일을 하는지 듣고, 현재 하는 일에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은지 듣고, 회사에 가려는 나에게 해주는 조언을 듣고, 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한두 명씩 소개받았다. 소개를 받은 사람을 만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고, 가끔은 학회나 네트워킹 모임에 참여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과 다 만난 뒤에는 커리어 코치가 추천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연구소 출신 연구자분들에게 LinkedIn*을 통해 콜드 메시지(cold message,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보내 만남을 요청했다.
*구인/구직을 위한 소셜 네트워크. 자신의 얼굴을 포함한 경력 사항을 프로필로 설정하고 커넥션을 통해 인맥을 넓힌다.
한 달에 약 6.6명 정도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4.3명 정도를 만났다. 약 25퍼센트의 경우에는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고, 약 5퍼센트의 경우에는 만남 요청에 대한 거절 아닌 거절을 받았다. 많을 때는 한주에 대여섯 명에게 informational interview 요청을 했고 요청을 하나도 보내지 않은 주도 많이 있었다. 만난 사람 중 약 반 정도의 사람들이 한 명 이상의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소개를 요청하지 않은 경우도 꽤 있었으니 대충 70퍼센트의 확률로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았다고 생각해도 될 듯하다.
Informational interview를 시작할 때 200이 조금 넘었던 블로그 이웃은 몇 달 뒤에 돌아가보니 180~190 정도로 줄어있었다. 그사이 LinkedIn 커넥션 수는 100명 대 후반에서 300명을 훌쩍 넘겼다. (물론 블로그 이웃을 늘리는 것과 실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LinkedIn 커넥션을 늘리는 것의 어려움은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서 네트워킹의 효과는?
효과는 다른 글에 정리하기로 하고, informational interview를 하며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실 예전 글에 썼듯이 이직을 위한 informational interview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개인적으로 informational interview를 해오고 있었다. Informational interview의 형식을 빌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1:1 인터뷰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이방인으로서 사람을 만나기 위한 나만의 방편이었다. 한 명씩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각 만남마다 배우는 것도 있었고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우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목적은 조금 달랐지만 이직을 위한 informational interview도 대부분의 시간이 즐거웠다.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분들이 귀한 시간을 내주셨고 1:1로 이야기를 나누는 데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응원과 도움도 많이 받았다. 어떨 때는 의무감으로 했지만 (코치가 계속하라니까), 막상 만나고 나면 서로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때가 많았다. 더 많은 사람을 인터뷰할수록 요령도 생기고,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도 생겼다. 변화하는 내 상황에 필요한 질문을 하고, 조언을 구하고, 중요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이직 후에는 다시 목적을 바꿔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