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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Nov 21. 2021

슬리퍼를 신고 떠나는 여행

코로나 시대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공간, 공원

      

"아빠! 빨리와~"

초등학생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며 활기차고 신나는 목소리로 뒤처져 따라가는 가족들을 부른다. 고등학생 딸은 인생 부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공원 풍경을 배경으로 아내와 나에게 새로운 포즈를 알려준다.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팔짱을 끼고 활짝 웃는다.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공원 나들이 모습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올해 여러가지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주로 듣고 아내와 나도 재택 근무일이 점점 늘었다. 가족들은 각자의 노트북 앞에 앉아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들은 사소한 일로 부딪치는 일이 많아졌다. 말 한마디에 예민해지고 아이들은 걸핏하면 감정 싸움을 했다. 집에서 업무를 하면서 아이들을 동시에 챙기는 일은 생각보다 버겁고 힘들었다. 집 안에는 점점 짜증과 긴장감이 감돌았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고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이들은 방문을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가족들은 대화가 점점 줄었다.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거의 대화가 없었다.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집 안에 흘렀고 심리적 피로감이 점점 커졌다. 가족의 갈등문제를 해결한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밤중에 혼자 공원에 가서 배회하는 날이 많아졌다.
 

▲ 공원 풍경 저녁 산책  ⓒ 정무훈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제안을 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이 하루종일 집에 갇혀 있으면 점점 관계가 안 좋아지겠어. 저녁을 먹고 하루 30분 공원에 가서 산택을 하면 어떨까? 공원에 가면 무엇을 하든 간섭을 하거나 잔소리를 하는 않을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자기만의 자유시간을 갖는 거야. 운동을 해도 좋고 공원 벤치에 앉아 쉬거나 산책을 해도 좋아. 좋아하는 간식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 하루 한 번은 바깥 바람도 쐬고 활동을 해 보자."


처음에 아이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나가기 싫다고 했지만 우선 하루만 산책을 해 보자고 어렵게 설득했다. 마치 못해 따라 나서는 아이들은 집에서 눈치 보며 잔소리를 듣는 것보다 공원에서 마음껏 자유시간을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모두 저녁 산책을 나선 첫날 저녁 차가운 바람이 가볍게 불었다. 낙엽이 가득한 공원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은행나무는 조용히 잎을 떨구고 겨울나무로 묵묵히 서 있었다. 공원 운동장에서 바라본 저녁 하늘은 보라색으로 선연하게 물들었다.  


딸은 저만치 떨어져서 혼자 휴대폰 사진를 찍고 있었다. 아내는 긴 스웨터를 걸치고 팔짱을 끼고 가로수가 늘어선 길을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걸었다. 나는 공원 운동장 트랙을 힘껏 달렸다.


오랜만에 몸 안에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아들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공원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다. 가족 누구도 서로 간섭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도 각자 자유롭게 결정했다. 


예전에 직장에서 일이 많고 바쁠 때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은 것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바뀌어 하루 종일 가족들과 같이 있으니 나는 잔소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공원에 있는 잘 자란 나무들은 다른 나무와 거리가 충분하면 뿌리를 깊게 뻗고 든든하게 성장했다. 나도 나무처럼 이제 훌쩍 큰 아이들을 한 발 물러나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원에서 바라본 저녁 풍경은 너무나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누구도 화를 내거나 큰 소리로 싸우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은 공간 속에 담긴다. 지금은 마스크 쓴 사람 뿐이지만 예전의 공원은 가족 놀이터였다. 봄이면 솜사탕 같은 벚꽃길을 걷고, 여름 선선한 저녁이면 은은한 조명과 음악에 맞춰 올라가는 형형색색 분수 쇼를 구경하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버스킹 하는 젊은 친구들의 노래를 가볍게 들었다. 나는 기분 좋게 땀 흘리며 운동장을 뛰었고 아이들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트랙을 돌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학원에 가느라 늘 바빴고 쉬는 날에도 집에서 컴퓨터나 휴대폰을 하느라 공원에 가지 않았다. 어른들도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주말에 집에서 쉬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생활이 일부였던 공원은 우리 가족이 삶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러나 올해의 공원은 온전한 가족의 시간을 우리 가족에게 만들어 주었다. 저녁 공원 산책 시간이 하루하루 지속 되면서 가족들도 서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여전히 소소한 일로 부딪치고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지만 각자 자신의 마음 속에 여유로운 공원을 하나씩 갖게 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오늘도 함께 집을 나서서 자기만의 공원에 간다. 언젠가 지금의 힘든 시기도 한 장의 가족사진처럼 남아서 함께 회상하며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예전의 아이들이 뛰놀던 동네 공원이 아직도 가족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오늘도 동네 공원에 가족의 시간을 필름처럼 담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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