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도 똑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2009년 고등학생이던 시절,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늘 유지하고 있는 귀밑 6cm 보다 짧은 머리, 주머니 속을 굴러다니는 니베아 스트로베리, 아직도 내 플레이리스트를 떠나지 못하는 에피톤프로젝트와 브로콜리 너마저. 그럼에도 성실하게 자꾸 어디론가 가고 있는 내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31년을 살았으니까 궤적이라는 것이 조금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살고 싶어 하는 인생이 있는 것 같은데, 본인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것 같은데, 아무리 각자만의 지옥이 있다고 해도 그걸 잘 견뎌내는 법을 아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사춘기를 지나는 것 같고 25살 정도에 정신 연령이 멈춘 것 같다. 친구들이 결혼을 절절히 원하고 집을 사기를 원하고 아이를 원할 때, 나는 또 6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도시로 이사 가서 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찬바닥에서 새우잠을 잔다. 자꾸 헷갈린다. 성숙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겠다가도, 조금 알 것도 같다가도, 이런 생각을 전혀 안 하면서 산뜻하고 담백하게 살고 싶다가도, 이 우울 속에 앉아서 영원히 손톱이나 뜯고 싶다가도, 그냥 운석을 맞아서 이 세상에서 불운하게 증발해버리고 싶다가도, 사회가 원하는 성공을 좇아 불나방 같이 살고 싶다가도, 그냥 춤이나 추러 가고 싶다.
가장 짧고 가장 괴로웠던 작년의 연애는, 나를 아주 파괴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나는 질겁해버렸다. 다시는 그런 불공평한 일방적 희생을 하지 않으려고 눈을 부라렸고 발톱을 세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아가는 과정에서, 예전 같았으면 전혀 신경 쓰이지도 않았을 것들에도 "얘도 결국 나를 혼자 외롭게 할 인간인가" 물으며 날을 세운 채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상대방이 떠나 보내는 데에 성공하면, 나는 또 내 상처를 스스로 핥으며 울지도 못한 채, 나를 둘러 싼 성벽을 더 높였다. 그 성벽 안에서 혼자 앉아 골똘히 생각한다. 챗지피티와 한참을 얘기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는, 그 무엇보다도 아픈 진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서, 나 혼자서 스스로를 갉아먹어가며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어서,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너무 다치게 해서,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겉으로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내 상처에 대해 별거 아니라는 듯 농담하면서도, 내가 나 자신을 가장 못미더워하고 경멸하고 있다는 진실은 너무나 괴롭다. 2024년에 타인에게 나를 맞추려던 모든 시도들을 두고 간다고 했으면서, 정작 나 스스로를 믿고 어떤 괴로운 과정을 견뎌줄 인내심은 없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처럼 나는 나를 밑도 끝도 없이 파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최진영 소설들처럼 내가 나 스스로를 자꾸 먹어치우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스타에서 자기자비라는 말을 인플루언서들이 말하는 걸 너무 많이 본탓일까, 내 자기자비는 완전히 불타서 사라졌다. 다정한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또 깨달았다. 내가 세상에 감사한 것, 즉 외부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긍정적 자극에 대한 자각은 너무 많은데, 내가 나 스스로를 위해 한 행동들은 단 한 번도 인정해준 적이 없었다. Q가 함께 조립해준 소파에 혼자 앉아 창밖에서 눈이 오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가 한 주 전에 눈 오는 거 창밖으로 봤냐, 예쁘지 않냐고 물었을 때는 답장 안했으면서 참내) 나는.. 이제 나를 용서해주고 싶다. 내가 헤아리지도 못할 깊이로 나를 사랑해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보내버린 것,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너무 오래 사랑한 것, 내 상처와 상실감과 외로움을 어쩌지 못해 실수한 것… 그냥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니까, 누구나 헷갈리니까,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걸 잘 모르고, 가끔은 불안과 감정이 운전대를 잡게도 하니까. 그냥 이제는 나를 좀 봐주고 싶다. 어떻게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주고 싶다. (근데 그거 정말 어떻게 해요..?)
31년의 궤적에 대해 생각한다. 성숙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이를 이렇게 먹어서도 남자 문제에 이렇게 고전하는 게 한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글이 일기장이 아니라 이 세상에 나와도 되는지, 나중에 후회 안 할 자신 있는지 웃기기도 하고. 살면서 이렇게 또 힘들었던 때가 있었나 싶어 돌아보면 당연히 있었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예전에는 일이 나를 지금처럼 불안하고 괴롭게 했다. 그때 일기를 보면 살벌하다 아주. 근데 웃기게도 이제는 일이 있어서 이렇게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 적당한 요령으로 숨어서 좀 쉴 수도 있고, 나에게 필요한 만큼의 distraction 을 얻을 수도 있고. 이런 생각을 하면 인생 또 멋지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만든 기반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니. 20대 때의 나는 늘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고, 늘 숨이 트일 것 같으면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당연히 터널처럼 여겨졌던 그 모든 일들에 대해 이걸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이제는 내 개인적 삶이 흔들릴 때, 내가 10년을 들여 쌓아온 시간 속으로 도망칠 수 있다. 일은 내가 버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지금 지나가는 어려운 감정들도 미래의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겠지?
++ 덧글1: 일단 지금까지는 뉴욕에 온 건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필요한 자극을 언제든 찾아나설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위안이 된다.
++ 덧글2: Q, 니가 이 글을 읽는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다정했던 너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됐었는데… 나는 여전히 너의 음악과 너의 시를 사랑할 거고, 늘 응원할거야. 졸업 시험 잘봐.
"그녀는 그를 끝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다가, 이어 그런 잔인성을 뉘우친다. 그런 잔인성, 곧 복수에 대한 불합리한 욕구는 그녀 자신의 슬픔의 이면이었을 뿐, 시몽은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