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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회사에 간 문과 여자, 그 후 3년

여성의 달, 출간 3년, 사회생활 10년을 기념하며

by 염전씨

2025년 여성의 달, <IT 회사에 간 문과 여자> (이하 아문여)가 세상에 나온 지 3년이 된 것을 축하하며, 그리고 올 7월 사회생활을 한지 만으로 10주년을 맞이하는 것을 미리 기념하며 글을 씁니다.


아문여를 쓴 것은 제 짧은 인생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이면서도, 제가 아문여에 대해 느끼는 많은 감정들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수치심입니다. 왠지 숨기고 싶고, 독자 분들이, 동료 분들이 잘 읽었다고 소감을 나누어주실 때에도 이상하게 부끄러워 도망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것은 제가 가공하지 않은 제 진실된 감정과 경험을 어쩌면 너무나 날것으로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가진 모든 것을 세상에 던져놓고 난 뒤 3년, 저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 시애틀로 적을 옮겼고, 리테일 사업부문에 갔다가 다시 AWS로 돌아왔고, 또 뉴욕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아문여라는 제 인생의 중요한 마일스톤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책에 대한 제 의견과, 지금 제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짧게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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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생인 아버지의 친구들은 제 가장 큰 팬들이십니다. 다들 제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어주셨는데요, 그중 한 분이 제 글에서 너무 많은 분노가 느껴져서 걱정이 된다고 말씀해 주신 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다지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이 제게 주신 능력과 약간의 정직함 외에는 가진 게 없었습니다. 왜 나는 친구들처럼 유학을 다녀오지 못했지, 나는 왜 토플이 110점을 못 넘지, 나도 엄청난 고액 과외를 받았다면 서울대에 갔을까 괴로웠던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사회초년생일 때는 내가 전공이 달랐다면, 내가 다른 부서에 갔다면,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내가 성격이 좀 달랐다면,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 좀 더 좋았을까 생각하며 괴로웠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10대는 열등감으로, 20대는 분노로 살았습니다. 가진 게 전혀 없었냐면 그건 아니지만, 제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열망하며 살아서 마음에 구멍이 가득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주어진 행운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르는 채 가지지 못한 것에 화만 나 있던 시절이 여과 없이 아문여에 담겨 있기 때문에, 저는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저의 부박한 글에 상처받으신 분들이 있다면, 그 손을 꼭 붙잡고 사과하고 싶습니다. 당신들께 받았던 선의들, 당연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려서 나쁜 것만 눈에 들어왔다고, 팍팍한 삶에서 조금의 선의를 나눠주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힘든지 그때는 몰랐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제가 이룬 사회적 성취가 저 혼자서만 해낸 것은 아님을 압니다. 공연히 그냥 후배니까 사주셨던 끼니, 좋은 말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날카로운 피드백, 망아지 같은 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셨을 선배들의 시간들, 그것들이 저를 얼마나 지켜주었는지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 선의를 동료와 후배들에게 충분히 나누어주지 못한 저의 인격적 부족함도 많이 후회가 됩니다.


제 책을 읽고 울었다고 한 분들도 꽤 많이 만났는데요, 그건 그분들이 제 이야기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발견하셨기 때문이겠죠. 그런 후기를 들으면 그 앞에서는 아이구.. 그러셨어요.. 이따위 고장난 반응만 나왔는데, 그건 제가 혼자 남은 방안에서만 소화할 수 있는 감정들이 일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글이 위로가 됐다는 말만큼 저를 힘이 나게 하는 말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혹시 영혼이 없어 보였다면 용서해 주세요. 정말 고장난 거였을 거예요... 그 뒤로 3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그 시간들을 울며 회상하지 않으셔도 될 만큼 편안해지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이제 울지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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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제게 최종 목표가 뭐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을 받으면 저를 높게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말문이 탁 막힙니다. 저는 디렉터나 VP가 되고 싶지도 않고, 퇴사하고 창업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2025년의 저는 솔직히 야심이 없습니다. 책이나 많이 읽고 글이나 많이 쓰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사실 생각이 짧은 제가 원했던 것들을 지난 10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 모두 이뤘어요. 그리고 그것들 외에 뭘 원해야 하는지 모르며 살았기 때문에 지금은 방황기입니다. 이렇게 방황하는 와중, 제가 지금 원하는 것이 몇가지 있다면요, 영원히 마르지 않는 호기심으로 최대한 편견 없이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곧 피곤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편견이라는 건 피곤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니까요. 뇌는 진공 상태를 싫어하니까, 모르는 무언가가 등장하면 그것에 대해 얼른 대충 색을 입히고 넘어가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모르는 걸 모르는 상태로 두고 진득하게 탐구하며 살고 싶어요. 빠르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매일 내려야 하는 회사원으로서는 그다지 권장되는 태도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요. 그러거나 말거나 사회생활 10년을 넘어가는 이 시점, 저는 직접 제 직업 윤리를 정의하고 제 세계관을 정립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인 것 같습니다.



제 목표가 그러하기 때문에 저는 일을 하며 글을 쓰시는 동료 작가들을 늘 응원하고 늘 기다립니다. 저만큼 회사원으로서 인생의 격랑을 큰 진폭으로 겪으면서, 그 과정에서 겪는 생각의 변화를 이 세상에 이렇게까지 공개적이고 광범위하게 남기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쓰는 이 글도 3년 뒤에 본다면 부끄럽겠죠. (신수정 작가님, 김은주 작가님, 정김경숙 작가님처럼 이미 지혜가 있고 세상에 이뤄놓은 것들이 많을 때 출간을 했다면 덜 부끄러웠을까 생각하게도 됩니다.) 그렇지만 저는 초1때부터 일기 쓰는 것을 즐거워했던 어린이였고 아마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쓸 것입니다. 제가 일기 쓰는 것에만 만족했다면 좋았겠지만, 저는 글로써 소통하고 싶은 사람이라, 올린 뒤에 몇 번이고 내릴까 후회하는 생활을 계속하겠지요. 조금 자랑스럽고 많이 창피했다가, 또 실수한 게 있을까 몇 번을 다시 읽어볼 것이고, 아 이정도면 내 최선이야 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2018년부터 공적으로 제 커리어에 관한 글을 써왔으니 그런 글들이 8년간 쌓였네요. 그 시간 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를 전합니다.




30대는 아직 너무 조금밖에 안 살기는 했지만, 아직은 조바심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제 열등감과 분노가 저를 멱살 잡고 끌고 가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계속하고 있는 새로운 도전에 흥분이 되면서도, 그것이 퇴사하고 창업하는 것 같이 대단한 일이 아님에 부끄러운 한편, 다른 사람들은 이제 인생 방향을 정하고 정착하고 있는데 저는 대학을 갓 졸업한 것처럼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함도 입니다. 방황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방황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직 모르기에 불안하네요.


이 긴 안부 인사를 마무리하며, 아버지의 손글씨로 제 팔에 새긴 문구를 남깁니다. 아문여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 진심으로 모두의 안녕을 빕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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