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친구랑 얘기하다가 '굳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이 언어화 되어 나와서 나도 말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굳이 그래야 해?', '굳이?' 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유난히 그 단어를 꼭꼭 짓밟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내가 그 말을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굳이'라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우리를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수로 만든다. 우리가 스스로 지정한 경계를 넘어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없게 한다.
그런 '굳이'를 뚫고, 이번 분기 나는 참 많은 걸 '굳이' 해내며 살아냈다. 정말 많은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3개월동안 내 이사 포함 6번, 대륙을 횡단하는 트래블을 했고 텍사스 오스턴을 포함해 6번의 출장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됐다. 1월 30일 뉴욕에 이사와서 사실 “여기가 내 동네구나” 하는 느낌이 채 들기도 전에 트래블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야 천천히 모든 곳과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10대 청년들과 운동하는 YMCA, 아주 마음에 드는 Mias bakery, 사람이 많아서 생각보다 잘 안 가게 되는 트조, 이제는 꽤 익숙해진 Jay st-Metrotech, 가도 가도 교통을 이해할 수가 없는 Williamsburg, 오늘 가서 반함 Greenpoint. 너무 힙해서 감당하기 어려운 Bushwick, 아기자기 깨물어주고 싶은 West Village 까지 차근차근 내 footprint 를 늘려 가고 있다. 가장 기쁜 건 혼자 노는 것의 즐거움을 꽤나 다시 찾았다는 것이다.
이번 분기 나에게 있었던 가장 큰 일은 내가 내 인생을, 내 일을,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나 도대체 왜 이래”라고 생각하며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모두 내 생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니. 그리고 매순간 그렇게 최선을 다해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해 뛰어들 수 있었다니, 오히려 대견했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이고 싶어서 뉴욕으로 이사를 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견딜 수없이 무료한 나머지, 나 스스로를 독립적이지 않다고 들들 볶고 싶지 않았다.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어디에서 즐거움을 얻는지를 우선하여 준 적 없었다. 나는 낯선 공간, 낯선 사람의 자극을 좋아하고, 맛있는 커피와 빵집을 정복해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시애틀에서의 시간까지는 내가 상정한 나의 모습과 내 실제 모습 간의 간극을 어떻게든 메우려고 애썼다면, 뉴욕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내가 내 실제 모습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었다는 점에서 나한테 큰 의미가 있다.
회사에서 아주 긴밀히 일해야 하는 내 파트너 B와 이번에 아주 크게 대판 싸웠다. 진짜 이번에는 유독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그가 불행하기를 아주 조금 바랄 정도로.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화가 났다는 걸 문득 깨달으면서, 그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가 생각해봤다. 그 답은, 내가 내 일을 너무나 많이 사랑하고 너무나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B가 자꾸 마지막 순간에 와서 내가 하는 일에 초를 치려고 할 때, 나는 그가 나를 파트너로서 존중하지 않고 뭣도 모르면서 내 노력을 무시하는 것 같은 발언을 할 때 나는 참을 수가 없어진 것이다. 돌이켜생각해보면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자꾸 나서서 일을 만들고, 나서서 고객들한테 하나 더 퍼주려고 하고, 나서서 글이라도 뭐라도 하나 더 쓰려고 ‘굳이 굳이’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어린 싹들을 raise up 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아무리 바빠도 나랑 1시간 반씩 상담해주는 uncle figure 동료, 다른 여자들을 끌어주고 싶어하는 여자들 백여명이 모인 오프사이트, 나랑 2주에 한번씩 얘기하는 게 너무 도움이 되고 이 회사 안의 safe place 라고 느껴진다는 신입 직원의 말, 이런 것들이 내 생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너무 부족해서 다른 사람들을 양성하는 데에 시간을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을 스스로를 계발하는 데에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최고가 될 수 없는, 밑 빠진 독 같은 영역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그 독을 채우고 싶었다. 10개의 독이 있다면 그 모두를 가득 채우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나머지 8개가 넘쳐 흐르면 밑이 빠진 두 개의 독에 자연스럽게 물이 들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 밑빠진 독에 집착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내 시간을 나누어주어도 괜찮다는 느낌이 나에게 스민다.
Q와 A를 만났다. 그들을 통해 내가 언제나 진심이고 사랑과 연결을 두려워 않고 기꺼이 겁도 없이 상대와 나의 상처 옆에 앉는 사람임을 배웠다. 지금까지는 그게 내 약점인 줄 알았다.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럴 수 있는 것은,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부정적인 감정이 내 안에서 일 때, 난 그 자식의 멱살을 붙잡고 바로 볼수있는 힘이 있다. 그것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섣부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그 감정을 쪼개고 관찰하며 삼켜내는 힘이다. 이것은 도망치고 싶었을때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힘이다. 필라테스를 한 뒤 아주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복근 같은, 내 안의 아주 깊은 힘이다.
이 모든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 얼마나 또 운이 좋은 인생인지, 사랑 받은 인생인지 깨달으며 한없이 겸손해진다. 위에 기술한 ‘내가 가진 힘'이라는 건 어찌됐던 작은 긍적적 강화들이 주어졌기 때문에, 나에게 웃어주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것임을 절절하게 느꼈다. 2025년 1분기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주 섬세한 손길로 하나씩 더듬어 봐야지만 살 수 있었다. 내가 타지에 살 기회 자체가 주어진 것, 이정도의 안락함이 있는 것, 비빌 커리어 언덕을 지난 시간 동안 쌓아온 것, 내 논리와 감정을 외국어로 꽤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Creative outlet 이 있는 것. 사랑받고 자란 것, 무조건적 사랑을 경험해본 것, 나에게 케이크 한 입보다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바래주는 친구들이 있는 것. 무너질 것 같을 때 나를 지켜준 이 모든 것들 앞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감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정말 나 자신과 화해하는 3개월이었다. 1분기에는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써내려간 시간이 많았다. 2분기는 여행기 같은 글이 더 많기를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