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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사랑, 특기는 비관, 기질은 낙관

지옥에서 온 의식의 흐름: <공주와 개구리>, <폭싹 속았수다> 등

by 염전씨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기도 하고, 새로운 도시에 살면서 개인적 삶에도 나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일이 많다. 가장 곤란한 질문은 ‘주말에 뭐하세요’인데, “소파에 앉아서 하루 종일 필요와 욕구가 무엇이고 그 사이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어요”라고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매 질문으로는 ‘취미가 뭐세요’인데, “책이랑 영화랑 드라마 등 주로 이야기를 소비하면서, 그것들이 연결되는 순간들마다 글을 써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너무 구구절절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읽은 이야기들과, 내가 친구들과 한 대화, 내가 경험한 일들이 서말처럼 꿰어져 내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가 되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이번 주말에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에 다녀왔다. 놀이기구를 딱 하나 탔는데, 그게 Tiana’s Bayou 였다. 놀이기구 주제에 너무 감명 깊어서, 티아나가 나오는 <공주와 개구리>를 봤다. 나는 디즈니가 늘 영화 안에 숨겨놓는 인생의 질문들을 사랑하지 않을 재주가 없다. <공주와 개구리>에서 가장 크게 울린 말은 Mama Odie의 “You gotta dig a little deeper. It’s not what you want, it’s what you need” (너는 너 스스로를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해. 니가 원하는 게 뭔지가 아니라, 니가 필요로 하는 게 뭔지에 대해서)였다. 티아나의 아빠는 아주 오랫동안 식당을 열고 싶다는 꿈을 가졌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본인의 근원을 건드리는 질문을 만났을 때 티아나는 생각한다. 아빠는 원하는 걸 가져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가장 필요한 걸 가지고 있었다고. 그래서 지금 필요와 욕구에 대해 생각하며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이다.


어린이 영화의 양식 안에서 want 와 need 가 반복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 노래를 생각한다. 니가 원하는 걸 언제나 얻지는 못하지만 니가 필요로 하는 건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노랫말이, 너무 힘들었던 때 너무나 큰 위로가 됐었다. 그게 벌써 기억이 까마득한 예전 일이 되었다는 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그러자면 지금 내가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3월을 뒤집어 놓았던 <폭싹 속았수다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가 떠오른다. 금명이가 애순에게 “가난한 집에서 자라서 그런지 뭐가 막 갖고 싶어”라고 말하던 장면에서, 그걸 연기한 아이유가 Shopper 라는 노래에서 “난 더 가지고 싶어”라고 노래한 것으로 생각이 옮겨간다. 내가 ‘원하는’ 것은 욕망, 열정, 호기심에서 나온다. 그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새로운 곳으로 가게 한다. 원하는 것을 좇는 건 우리를 살게 한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안정과 회복과 자기 안정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누구나 소진된다. 나는 지금까지 늘 공격수였다. 나는 늘 뭔가를 원했고 그걸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렸고, 나는 그래서 때로는 크게 다쳤고 때로는 꽤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나는 뭐가 막 갖고 싶은 사람이었다.


미국에 온 뒤로 내 필요와 욕구는 온통 사람으로 범벅되었다. 나는 지금 꽤 오랜 시간 동안 연애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데, 나는 원체 비밀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자꾸만 나를 상처줄 남자만 골라서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여자친구를 찾는 남자들은 재미없다고 걷어차버리고,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깊은 불안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을 쫓아다니면서 그들의 영혼을 채집하려 시도하다 차이기 일쑤다. 그래서 친구들이 사연 있는 남자 좀 그만 만나라는 핀잔을 많이 주는데, 나는 정말이지 외로운 모던보이들을 안 좋아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언제나 무리에서 가장 크게 말하고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이어서 늘 눈에 띄고, 또 그 관심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희한하게 늘 언제나 한순간의 예외 없이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래서 나는 외로움을 잘 알아본다. 그리고 두꺼운 외피를 두르고 있는 외로움을 캐내어, 결핍과 상처와 빛으로 가득한 다른 사람의 진짜 얼굴을 보고 그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게 내 변태 같은 기쁨이자 인생의 의미이다. 그래서 나의 취미는 사랑, 특기는 비관인데, 결국 사랑을 믿는다는 점에서 기질은 낙관이다.


그러고 있자면 4월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Past Lives>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 또 떠오르는 것이다. 이번 생에 이루어지지 못한—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그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상처와 잔여물만 남기고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을 그 다음 생에서 만난다면, 그때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함께 생각했다. 나를 지나가야만 했던 사람들, 내가 지나가야만 했던 사람들, 우리는 다음 생에 어떤 모습일까, 그때는 좀 다를까 답없는 질문에 대해 공연히 생각하다가 이런 글을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 비싼 소파 위에 가만히 앉아서 혼자 머릿 속에서 조용한 차력쇼를 해내다가, 이제는 공부를 좀 하러 간다. 5월의 첫번째 주말이 저문다.


+ 사랑은 사랑 밖에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던데, 나는 내가 가장 오래 알고 지낸 감정인 외로움에 대해서 말할 때 어째서 이렇게 장황해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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