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유 업무에, 영어능력만 있으면 어디서든 먹고 산다
‘별거 없는데 애들이 가장 즐거워 한 곳이었어요’
나를 이곳으로 이끌게 한 구글 리뷰였다.
나에게는 별거 없는 곳이 필요했다.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부산한 움직임은 싫었다. 얼마 전에 갔던 유명 키즈카페에서 한국인 무리를 만났다. 그들도 나를 알아봤고 나도 그들을 알아봤다. 이 모든 게 피곤했다.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구글맵의 리뷰는 정확했다.
오래된 모래, 대나무로 된 미끄럼틀과 그네, 거대한 트램펄린, 색 바랜 소꿉놀이 도구가 전부인 곳.
세계 각지에서 온 아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섞여 놀고 있었다. 모래를 쓸어주는 사람도 없었고 놀이를 유도하는 어른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이곳에 동양인은 우리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하나가 되었다.
“오늘 치앙마이 풍선 축제 하는 날인데, 같이 갈래? “
갑자기 카페 주인이 와서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빨간색 썽태우에 앉아 있었다. 몇 초의 망설임 끝에 다음에 같이 가자고 그녀에게 말했다. 조금 겁이 났다. 대신 내일 또 오겠다고 하니 그녀가 말했다.
“나는 매주 교육 봉사활동을 해. 그래서 다음 주 화요일에 문을 열어. 화요일에 보자”
주말에 문을 닫는 키즈카페라니… 이런 곳은 처음 본다.
축제 동행을 스스럼없이 제안해서 한 번 놀람, 키즈카페 피크인 금토일 봉사활동을 한다고 해서 두 번 놀람. 아이들이 부모 없이 썽태우에 올라타서 세 번 놀람.
치앙마이 사람들은 스스럼이 없는 걸까? 아님 이 주인이 유독 스스럼이 없는 걸까? 그녀가 궁금해졌다. 이 사람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 키즈카페는 자유스러운 그녀를 닮았다.
화요일이 되었다.
“여기 너무 멋진 곳이에요 “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삶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녀는 42세이고 이름은 ‘드위’였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영어를 좋아했다고 했다. 그 덕에 대학교 졸업 이후 아일랜드, 캐나다 등에서 살았다. 그러던 그녀가 29살 갑자기 아이가 갖고 싶어 졌고 이후 그녀는 결혼 후 2명의 자녀들과 태국에 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둘째가 캐나다 시민이라 조만간 캐나다로 다시 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재미있는 건 그녀의 교육관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홈스터디를 통해 교육시킨다고 했다. 학교를 보낼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키즈카페를 차렸고 이후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서 아이들의 영어와 태국어를 습득하며, 사회성도 좋아졌다고 했다. 손님이 아닌 아이들의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주된 소득 창출은 컨설팅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위해 차린 이곳이 ‘치앙마이스러운’ 공간이라고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장소 디자인을 해주며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고 했다.
단지 아이들을 위해 공간을 만들었을 뿐인데 모든 것들이 이어졌다고.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 공간이 그녀와 닮았다고 느꼈던 건, 구석구석 그녀의 손길이 닿아서 그랬던 거였구나.
그녀는 한 마디 덧붙였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고. 부모가 앞길을 봐줄 필요도, 닦아줄 필요도 없다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가기 마련이며, 이걸 통해 밥벌이를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영어는 필수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야기를 끝내고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는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1호선, 지옥철, 점심시간 김치찌개… 이 모든 것과 대비되는 현실.
나는 뭘 그렇게 불안해한 걸까?
자기 일과 영어만 있으면 이렇게 어디서든 먹고살 수 있다. 답은 있는데 뭐가 그토록 두려웠던 걸까?
아이들은 여전히 해맑게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많은 것이 필요 없다. 티브이도, 깨끗하고 정돈된 공간도, 전집 세트도. 그저 모래와 삽, 그리고 건강한 신체만 있으면 된다. 그거면 됐다. 아이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답은 정해졌다. 아무리 세상이 뒤집어지고 흔들려도 중심 잡고 살면 된다. 영어와 나의 일.
그녀의 미소가 유난히 환해 보였다. 치앙마이 햇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