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이 될 자신은 없고요, 은퇴는 하고 싶습니다

치앙마이엔 은퇴자가 많다

by 루나리

'위잉~ 위잉~'


아침부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잠결에 휴대폰을 봤는데 회사다. 갑자기 잠이 확 깬다. 잠결에 받은 걸 들키고 싶지 않다. 헛기침을 2번 하고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ㅇㅇ선생님, 복직하는 거 맞는지 확인 차 전화 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1월 2일 복직이 맞냐는 확인 전화였다. 가벼운 안부를 묻고 복직 이후 스케줄을 짧게 확인한 뒤 전화를 끊었다.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 두근거림이 아닌, 콩닥콩닥이다. 태국으로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 중요한 전화가 올 수도 있으니 한국에서 오는 전화를 받는 준비를 해 갔다. 무급휴가 중이지만 회사에 속해 있다. 게다가 난 뼛속까지 K-직장인이다. 휴직을 시작한 순간부터 복직을 생각했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함께 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치앙마이 일주일 차, 회사에서 복직 확인 전화가 왔다.




“어머, 얘네들 좀 봐. 쌍둥이인가 봐”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어? 한국분이세요?”


한국인 노부부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노부부도 얼마 만에 만난 한국분이냐며 반가워해 주셨다. 한국에서는 누군가에게 말 거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여기서는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익명성이 보장된 채 이어나가는 대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통성명을 할 필요도, 이야기가 새어나갈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머리를 덜 굴리며’ 얘기해도 되는 게 해외여행의 매력이다. 좋으면 얘기를 이어나가면 되고, 싫으면 갈 길 가면 된다.


“오, 그래서 혼자 애 둘을 데리고 오게 된 거예요?”


오랜만의 한국어라서 그런 걸까, 묻지도 않은 얘기를 시작했고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대화를 이어나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 노부부의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남편이 음식을 푸는 데 뒷모습이 정갈하다. 희끗한 백발에 짧게 깎은 머리, 정강이뼈까지 올라온 새하얀 양말, 깨끗한 운동화… 아, 느낌이 왔다. 넌지시 물었다. ‘혹시 공무원이세요?’ 하고 묻자 깜짝 놀란 눈치다. 내 느낌이 맞았다. 올해 퇴직예정자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 얘기를 하고야 말았다. '저는 언제 은퇴할 수 있을까요, 너무 부러워요 ‘




동트기 전 일어난다. 어젯밤 준비해 놓은 옷을 입고 음식을 욱여넣는다. 한밤중인 애 둘을 깨운다. 애들은 한 번에 일어나는 법이 없다. 애를 들쳐 업는다. 우는 아이를 달래 세수하고 이 닦고 나갈 채비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잠에 취해 있다. 쌍둥이 유모차에 애 둘을 태우고 나는 내달린다. 빠른 걸음으로 10분, 지하에 위치한 어린이집이 보인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애를 맡긴다. 나는 또 내달린다.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목에서는 피 맛이 난지 오래다. 지하철을 탄다. 운이 좋으면 1번, 운이 나쁘면 2번 갈아타고 1시간 걸려 회사에 도착한다.


이게 나의 출근 전 시나리오다. 복직 후가 두렵다. 두려움에 떨다 못해 떠났다. 따뜻한 치앙마이에서 내가 살려고.




치앙마이에는 크게 3종류의 외국인이 있다. 여행객, 디지털 노마드, 은퇴자.

여행객은 딱 봐도 여행객이다. 한껏 멋을 낸 새 옷, 새파란 코끼리 바지, 짙은 화장과 호기심 어린 눈빛, 늘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

디지털 노마드는 평소의 나와 다를 바 없다. 미간에 있는 주름이 특징이다. 이 주름은 깊이의 차이만 있을 뿐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손엔 노트북을 가지고 다녔으며, 빠른 눈빛으로 앉을자리를 물색하곤 했다. 그리고 색이 바랜 낡은 코끼리 바지를 입고 있었다. 바지도 이들처럼 처음에는 새파랗고 빳빳한 바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처럼 코끼리 바지도 낡고, 생기를 잃었다.

은퇴자들은 모든 게 여유로웠다. 표정은 온화했고 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엔 세월의 주름이 있었지만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옷들은 깔끔했다, 낡지도, 바래지도 않았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사람은 은퇴자다.


묵묵하게 대화를 듣고있던 퇴직 예정자분이 한 마디 했다.


“그래도 난 새댁이 부러워요. 나도 젊고, 애들이 어릴 때가 있었는데, 이젠 애들이 커버려서 오라고 해도 안 와요. 젊고 애들도 어린 그때가 좋을 때예요.”

“맞아요. 난들 이 늙은이랑 단 둘이 오고 싶었겠어요? 애들한테 같이 가자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절대 안 간대. 얼마 안 남았어. 늙은이 둘이서 오니 핸드폰 볼 줄도 모르고 재미없어요.”


이 노부부는 이렇게 말하고선 서로를 보며 웃었다.


'지금이 좋을 때야' 선배들이 아무리 말을 해줘도 새겨지지 않았는데 오늘은 느낌이 다르다. 아이들이 내 곁을 떠난다고? 벌써 마음 한편이 쓸쓸해진다. 갑자기 남자분이 주머니를 뒤적거리시더니 돋보기를 쓴다. 나에게 현지인 야시장이 어디냐며 알려달라고 하셨다. 띵똥, 장소를 찾았다는 알람이 울리고 이분들의 입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젊음이 좋다니까”


우리는 번호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동행을 제안하셨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애 둘을 데리고 다니는 게 쉬운 게 아니다. 그래도 그분들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으니 오늘 시작이 좋다.


우린 이곳에 앉아 조식을 먹었다. 분수가 나왔고 새소리가 들렸다.


숙소로 돌아가려는 데, 어느 외국인이 문을 열어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Come alone? (손가락으로 둘을 가리키며) with twins?”


아, 이 분 기억난다. 백인의 중년 남성이었다. 내가 레지던스에 도착한 날부터 나에게 친절함을 베풀어준 사람. 내가 오는 걸 보자마자 뛰어와서 짐 내리는 나를 도와줬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감사인사를 했다. 쌍둥이 유모차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인이고, 시애틀에서 살았던 은퇴자 6년 차라고 했다. 그리고 이 레지던스에 거주한 지는 3년이 되었다고... 나는 당신과 주고받은 대화에서 은퇴자임을 느꼈다고 했다. 은퇴자 특유의 여유로움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나는 또 부럽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나의 은퇴는 언제쯤이 되겠냐며 반문하면서 은퇴자인 당신이 부럽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가 나를 지긋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은퇴를 하고 싶으면, 돈을 모아 은퇴시기를 앞당기는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Enjoy this moment. This is the brightest moment of your life, seriously."




돈을 모아서 일찍 은퇴하라고? 이건 파이어족 얘기잖아.

오랜만에 주식창을 열었다. 나의 주식창은 파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주식창이 나를 보고 비웃고 있었다. '주식이 쉬운 줄 알아?'

갑갑해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엄마, 아파? 내가 호 해줄게. 호~ 호~ “

첫째가 오니 16개월 둘째도 뒤뚱뒤뚱 다가온다. 내게 안긴다. 서로 내게 더 안기겠다고 난리다.

"얘들아, 그만하자. 엄마는 차례 지키는 사람이랑 안을 거야!"

괜히 근엄하게 애들을 바라본다. 똘망똘망 내 앞의 작은 생명체들은 서로 안아달라고 울기 직전이었다.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나에겐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젊음, 나에게 안기는 아이들, 그리고 파란 주식창.


역시 파이어족은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은퇴는 여전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