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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수집가 Dec 19. 2020

내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듣기

2020년, 한 해의 마무리


어느 때보다 길었던 2020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방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당차게 선언했던 하반기의 도전 역시 끝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난 1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새롭게 택한 길이 온전한 나의 욕망이 맞는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 건지.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할 때 편안하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아마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르지 않았을까.


청소년기를 막 통과하고 성인기에 접어들었던 나에게 연극은 삶에서 뗄 수 없는 장르였다. 무수히 쏟아지는 세상을 향한 질문과 존재론적 의문들을 연극을 통해 해소해왔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하면서 지금까지 수백 편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관람했고, 배우로 여러 번 무대에 서보기도 했고, 무대 뒤에서 스태프의 일을 경험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연극학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스물두 살에 참여했던 작품을 끝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스물네 살이 된 지금, 다시 그때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여름에 선언했던 유학에 대한 꿈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그리고 연극은 나와 맞지 않는 옷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작업의 특성상 내적인 재료들을 밖으로 꺼내야 하고, 협업하는 수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그 결과물이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보이는' 일이다. 끊임없이 에너지가 외부로 향하는 건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걸 직감했다. 선택의 합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고, 누구보다 아파했고, 방황했고, 답을 구하기 위해 애써왔다. 뭔가를 제대로 만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막 학기를 앞둔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면서 해왔던 경험을 토대로 확신한다고 말하고 싶다.


선망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한다는 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선망과 애정은 엄연히 다르다. 연극을 선망하지만, 예전과 같은 크기로 애정을 갖는 건 나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암시를 통해 계속해나갈 수는 있어도, 그것은 내 안의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자발적인 힘이 아니다. 연극이라는 건 이미 지나간 인연과도 같다. 이미 흘러간 일은 흘려보낼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보려고 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방향을 바꾸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타협하고 포기하는 일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모든 판단과 결정,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은 내 몫이다. 결국 내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 한 방황은 '계속'될 테다. 적어도 그 과정에서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는 주어진 여건과 기회 속에서 나름의 답을 도출하는, 지금처럼 부딪히는 삶이 어울린다.


다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다른 일에 도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손이 갔던 유일한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자기표현의 욕구를 담아내는 그릇이 달라질 뿐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여전하다. 세상과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도구를 바꿔가면서 성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 여정을 동행하며 지켜봐 주길 바란다.




상반기는 연극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복수전공하며 기고 활동을, 하반기는 스타트업 인턴십과 최대 쓰리잡까지 병행하면서 6개월 동안 총 1,300만 원을 모았다. 동시에 새로운 동료를 만나 POST IMF라는 팀을 만들어 청년예술청 공동운영단 기획사업인 <스페이스 랩: 아직>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이길보라 감독의 말처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때로는 무식하게, 때로는 아프게 온몸으로 부딪히는 1년을 보냈다. 힘차게 달려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기록해왔던 메모들을 공유해볼까 한다.



2020년 7월 15일

지난 몇 달간 우울했던 건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날 인정해 주는 것보다 나 스스로가 나를 알아주고 격려해 주는 일의 힘을 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왜 그렇게 애썼을까, 왜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을까, 인정이 뭐길래 그에 맞춰 흔들리고 방황했던 걸까. 그래도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음을 느끼며.


요즘은 내가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잘 흔들리지 않고 슬픔에 깊이 빠지지 않고 뚜렷한 목표와 강력한 동기부여가 내 삶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 느낌은 강렬하고 뜨겁고 열정적이다. 나의 재료를 모두 태워 가는 느낌이다. 다른 생각, 잡생각이 많았던 건 그만큼 치열하게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길었다. 아파했던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그 아픔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2020년 7월 17일

어떻게든 방법을 구하니 되긴 된다. 두려움과 망설임, 안 된다는 생각은 모두 핑계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는 7월부터 일을 하는 중이다. 회사 담당자에게 인턴십을 하고 싶다고 설득했고, 주말 알바를 구했고, 영어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이 모든 일이 3주도 안 돼서 일어난 일들이다. 시간은 쓰기 나름이고 모든 건 계획하고 움직이는데 달려있다. 나는 나를 굳게 믿는다.


훗날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때 무모했고, 어리석었고, 아프게 여길 테지만 용기 내서 부딪혔다는 것만으로도 후회 없을 것 같다. 지금이 그렇다. 이 시간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2020년 7월 21일

앎이 주는 안정감과 안전함.

사회적 이름이라는 자리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꺼내는 일.

진정한 의미의 성장.

마치 중력이 몸을 이끌듯이, 몸에 악착같이 달라붙는 인정욕과 과시욕을 분리해내는 일.

이름에 매혹되지 않기를.

저항하기를.


2020년 7월 22일

오염된 언어.

낡은 관념과 생각.


2020년 7월 23일

오랜만에 지난 프로덕션 때 했던 작업을 살펴보는데, 그동안 내가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솔직하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라는 건 없고 이름만 있을 뿐인데 그 안에 온갖 의미 부여를 하면서 속이고 또 속였던 날들. 그저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진실일지도 모르는데. 지난 몇 년 동안은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았던 거 같다.


스물두 살 이후로 자기 자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끝냈던 건 아닐까. 복잡한 생각이 싫어서 사는 대로 살았고, 사실 그보다는 불안함이 더 커서 억누르고자 자꾸만 무언가를 하다가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데. 다시 해보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서. 그저 부끄럽고 미안해서. 두려워서 도망치다가 여기까지 와서.


다시 용기 내서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2020년 7월 24일

묻어두고 살다가 굳이 꺼내보기.

느껴지는 당시의 온갖 감정들.

서글픈 후회와 알아보지 못했던 어리석음.



2020년 7월 25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직감으로 한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그 마음은 아마 쉽게 변하지 않을 거 같다.


2020년 7월 26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던 경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역으로 상처받는 순간들.


여기는 나의 전부가 아니야.

이곳에서 평생 머무르지 않아.


2020년 8월 3일

강남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 안.


몸이 부서질 듯 아프다. 퇴근 후 역까지 뛰어서 겨우 늦지 않게 도착했다. 첫 수업은 오티 위주였고 생각보다 내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이 외로움과 말하지 못할 고통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지, 원하는 걸 이룰 때까지 익숙해져야 할 감각은 아닐지 생각하게 되었다.


원해서 하는 일, 내일이 기대되는 순간, 역설적으로 체력이 달리고 녹초가 되었음에도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초인적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뒤돌아보지 않고 강인하게 내딛는 걸음들. 독해지라고 당부한 아빠의 말. 함부로 울지 않을 것.


누구도 시킨 적 없지만, 한계에 도달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추진력과 용기, 도전 따위가 중요해졌다. 일주일 내내 일을 하고 꿈꿔보다가도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이 짧아진 요즘.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갈지는 몰라도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다.


지금처럼 기대되는 앞날과 생각들로 삶을 채운다면 좋겠다.


많은 생각들을 모두 녹여내지 못해 아쉽지만, 틈틈이 적어 놔야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스물네 살의 어느 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알아주면 된다. 그걸로 만족한다.


2020년 8월 5일

융합학문.

소통이 중요함. 장르 간 경계.

옮겨왔던 자취들.

전문가들의 수평적 소통과 대중과의 가치 공유로의 확장.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시각과 문제의식을 공유. 그 그릇이 연극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


다른 곳으로 눈을 잘 돌리는 학생.

이걸 공부하다 보면 저걸 알고 싶은 무한한 호기심.

그때마다 갖게 되는 호기심을 따르다 보니 일관성 있는 활동을 하지 않게 됨.

그러나 오히려 이게 옳다고 생각함.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의 고민.


나에게서 타자로 옮겨가는 시선.

그 확장의 기록과 연구들.


실험극. 렉처 퍼포먼스. 글쓰기. 기획.


2020년 8월 28일

긴장이 많은 나


2020년 8월 29일

편의점에서 일하는 중.

오자마자 물건을 진열하고 나면 한 시간이 지난다.

정리를 마치고 튀김을 튀기면 9시 정도.

항상 여기에서 아침을 사 먹게 된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시아가 쓴 블로그 댓글을 보고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좋은 어른이 될 거라는 확신이,

그 단단함이 내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2020년 9월 7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이 책을 읽고 만감이 교차했다. 한 개인이 어디까지 성장하고 '해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용기와 성장이 누군가를 꿈꾸게 만든다. 나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더욱 용기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초심을 잃을 때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이 책을 펼쳐 들 수 있기를 바란다.

귀한 경험을 나눠준 이길보라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2020년 9월 8일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대안이 요구되어왔다. 온라인 유료 공연이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해외 공연의 경우) 이전보다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연예술만이 갖는 현장성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부단히 논의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시도란 존재하지 않으니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적절한 대안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20년 9월 11일

소중한 걸 쉽게 내보이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힘.

지난 4년 동안 지안이에게 배운 절제와 단단함.


20년 9월 13일

날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주말이 주말인 줄 모르고,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흐르는 걸 체감하지도 못한 채.

어느새 가을이 되었다. 환절기가 되자마자 재채기를 엄마를 보고 가을 옷으로 바꿔 입었다.

몸살도 한 번 왔다. 편의점에서 정신없이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잠시 나가서 아침 공기를 마셨다.

순간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20년 9월 27일

8월 내내 애인처럼 자주 만났던 손유리.

정확한 인식과 사랑을 알려준 양효실 선생님.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를 알아봐 준 혜원 씨와 희수 씨.

내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안진아와 순수한 나의 11명 친구들.

배울 점이 너무 많은 우리 깨비들.

제대로 된 선배 노릇 한 적도 없는데 연락해 주는 빛나는 동생들.

바보 정재원.

한 박자씩 느리게 생각하고 대답하는 신다은 언니.

그리고 생각날 때면 나를 찾아주고 아껴주는 언니들.

요즘은 바빠서 연락도 잘 안되는 노소연.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프랑스에 간 유리 언니 사진을 보다가 울컥해서 불러보는 이름들.

새로운 관점, 감각, 삶을 느끼고 상상하게 해주는 나의 사람들.

무너지지 않도록 꼭 붙들고 한결같이 지지해 주는 사람들.

사랑하는 여자들이 어디서든지 꼭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20년 9월 30일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꿈꾸는 대로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 유학을 가서도 이분과 함께 작업하고 만나는 상상을 했는데, 정말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질문을 준비해 가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면 어땠을까. 만약 인스타를 지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만날 기회가 생기기나 했을까? 내가 너무나도 애정하고 동경했던 이를 만나서 생각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뜻을 맞추게 된다니.


정말 모든 건 계획되어 있는 걸까?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찾아온 건지 답답한 마음에 가슴 두드리던 시간도 결국 모두 계획된 일은 아니었을까. 가슴이 떨린다.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각자의 자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과의 연대.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고 경계에 존재하는 97년생들.

힘을 모아서 각 분야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작업하고, 그 작업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될 수 있다면. 그런 방식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낙담하지 않으며, 동시에 낙관하기를. 이 마음을 잃지 않기를. 사명감으로 걸음을 뗄 수 있기를.


집 가서 꼭 일기로 남겨둬야겠다.



20년 10월 14일

오늘은 이상하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우리 팀이 한 명씩 모이고 의견을 나누면서 그림을 구체화해나가는 건 정말 좋은데,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큰 에너지를 쏟게 된다. 집 가는 지하철 안에서 배터리가 꺼졌고, 책을 꺼내 들었지만 결국 잠들었다.


며칠 만에 만난 동료들. 긴장을 놓칠세라 끝까지 집중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오늘따라 말을 더듬고 추상적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첫 만남보다 조금 달라 보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그래도 꾹 참고 계속해서 듣고 이야기를 해나갔다. 고대 잔디밭에서 햇볕을 쬐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은 행복했다. 늘 꿈꿔왔던 만남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해야만 한다는 부담감도 앞선다.


초심, 배우고 겸손하되 낙관하는 태도. 내 선택이 미래를 만들 거라는 능동적 확신.

그런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단단히 매듭을 묶는 시간도 필요하리라.


뭐가 됐든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할 수 있는 한 큰 꿈을 꾸기를.

좀 더 솔직한 나로 살아갈 수 있기를.


20년 10월 25일

vita contemplativa


20년 11월 2일

억압의 투쟁과 인정 투쟁.

닫힌 방은 존재 증명의 투쟁.

나를 비추는 타인이 없다면 우리는 자기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를 신체와 연결한다면?


20년 11월 4일

상담받고 가는 길.


나의 지향점은 독립성과 자기 보호, 그리고 목표였다.

자신을 몰아붙이며 달려가는 게 숨 막힌다는 생각을 가끔 했는데,

최대한 의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20년 11월 6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계속해서 한계를 경험해보는 요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정말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싸워낼 유일한 것은 두려움이다.


20년 11월 14일

POST IMF는 97년생 창작자로 이루어진 퍼포먼스 기반의 다원예술 그룹입니다. 연극과 시각예술이라는 다른 출발점을 갖고 있지만, 각 분야의 퍼포먼스에서 발견되는 '신체의 수행성'이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출발했습니다. 아울러 저희는 예술이 한 시대의 담론과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생산하고 주도할 수 있다는 '상상력'이 결여되지 않은 미래를 꿈꿉니다. 이를 위해 장르 간의 충돌, 즉 탈장르적 결합이라는 실험적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0년 11월 23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예민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건네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가족보다 내가 할 일에 집중하느라 그들의 말을 잘 못 듣고 있는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하루는 짧고 할 일은 많기에 모든 걸 챙길 수 없다. 나중에 가서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가족.


20년 11월 26일

아침 생각.

집이라는 공간과 나의 정체성을 만드는, 가장 물리적으로 가까운 관계인 가족에 대하여.

(중략) 내 마음을 알면 불안이 사라질까 봐 책을 읽었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공부했다.

집 그리고 가족.


20년 11월 27일

"한 사람이 오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이라는 말을 웬 광고판에서 본 적이 있다. 아무튼 사람을, 연인을 곁에 두기로 하는 것은 무척이나 거대한 결심이다."


20년 12월 1일

수많은 과정에서 만났던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능성을 믿지 않은 채

작고 부족한 내 모습만을 전부라고 여겼다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가장 좋은 스승은 언제나 나였음을.

가장 의심해야 할 사람 또한 나태했던 나였음을.


그 사이에서 균형을 발견해나갔던 지난 반년,

멋진 동료와 함께하는 마지막 한 달.


스물네 번째 12월의 시작!


20년 12월 3일

생리학적인 몸에 대한 궁금증.

정신에 관한 질문은 해왔어도 유아적인 이해에서 멈춘 몸.

몸의 성장을 짚어가기로 한다.



20년 12월 9일

날 것의 엉망인 느낌.

정상성에 가두지 않는 몸.

가지런하고, 단정해야 된다는 학습.


20년 12월 14일

나에게 중요한 가치.

인사이트.

성장.

사회적 성공?


20년 12월 16일

능력주의.

아메리칸드림.

완벽한 능력주의가 정의로운가.


20년 12월 19일

연극 → 기획 → 여행 → 연극 → 책 → 글 → 작가 → 감정사회학 → 미학 → 비평 → 퍼포먼스 → 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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