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 몸이 이토록 무거웠던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였다. 우리는 화장실에 가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내가 먼저 다녀온 사이 J는 밖에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이었다. 낡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아프다는 말이 얼핏 들려왔다. 얼마 뒤 J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가만히 등을 두드렸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조용히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괜찮아, 괜찮아"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 밤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도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휴대폰을 내지 않았던 친구가 세월호에 대해 알려주었다. 우리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 어수선한 교실에 앉아 있었다. 그중 몇몇은 엎드려 울기도 했다. 하교 후에도 한동안 뉴스만 보았다. 며칠 뒤 K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B의 장례식에 와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친구의 죽음, 장례식······. 모든 일이 처음이었고, 갑작스러웠고, 두려웠다. 그날 나는 K에게 "시험 기간이라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와주면 안 되겠냐는 말에 미안하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어쩌면 평생 남을지도 모를 상처를 주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다시 전화를 걸어 장례식에 간다는 말을 전했다.
초등학교 친구 B의 장례식, J에게 아버지나 다름없었던 할아버지의 장례식,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H의 장례식, M의 갑작스러운 부친상,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살아있는 자들의 의식. 죽음 앞에서 무감각한 자신의 모습을 견디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동안 자신을 의심했다. 장례식 이후로도 눈물이 나지 않았고,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고, 모든 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 순간 나는 완전한 타자이자 관찰자였다. 슬픔에 잠식된 무거운 몸이 되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그저 언어의 영역 안에 머물 뿐이었다.
선생님은 지금 비상사태예요. 그렇게 슬프거나 울적할 시간이 없어요, 라고 그는 나를 탓한다. 그가 옳다. 나는 존재의 바닥에 도착했다. 단독자가 되었다. 본질적 타자성의 존재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나의 삶을 혼자서 다 껴안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이토록 무거웠던가.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한겨레출판, 2018, 70쪽.
돌멩이 하나. 나의 슬픔만 헤아릴 줄 아는 쩨쩨한 자아.
돌멩이 둘. 죄책감과 부채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
돌멩이 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도하는 마음.
이제 J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위해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4년 전, M의 아버지가 우리의 연극을 보며 몰래 눈물을 훔쳤던 공간에서. 우리는 이제는 떠나고 없는 사람들을 감각하며 연습하고 있다. 내가 B의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고 했던 이야기를 아는 S도 함께. 최근 어머니를 여읜 H도,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읜 Y도, 아버지와 동생을 동시에 여읜 G도, 사랑하는 연인을 여읜 P도, 자신의 삶을 죽음 가까이 내던졌던 K도.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산 자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울음과 웃음을 공유하면서.
이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일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임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