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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보이 Oct 28. 2019

한국어 공부 어디까지 해봤니?

익숙함으로 성장하기



도쿄에는 신오오쿠보라는 한인타운이 있다. 나는 유학시절  한국의 맛과 흥이 그리울 때면 그곳을 찾았다. 엊그제 동네에서 마신 4천 원짜리 소주가 그곳에서는 만원이나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비싼 줄도 모르고 그리운 고향을 생각하며 한 방울도 남김없이 털어 넣었다. 해외에 나갔을 때 어쩌다가 발견한 한글을 본 적이 있는가.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장시간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인천공항에 입국했을 때 느껴지는 안락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주변에서 한국어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누군가와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동질감을 느꼈던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어느덧 귀국한 지 4년이 다되어간다. 그때 느꼈던 감동은 온 데 간데없고 오히려 요즘은 타지에서의 낯선 생활이 종종 그립기도 하다. 당시에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부모님이나 지인의 목소리만 들어도 힘을 얻고는 했었다. 그러나 현재 매일 듣는 그들의 목소리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익숙함이 그때의 감정까지도 덮어버린 것이다.


씽큐베이션을 통해서 혼자서는 읽지 않을 책들을 몇 주째 접하고 있다. 특히 이번 책이 더욱 그러하다.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는 교과서 같이 생긴 책 표지도 그렇고 심지어 연습 문제와 답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의 구성도 한 목을 한다. 마치 앞뒤 꽉 막힌 에프엠 군대 교관의 느낌이었다. 역시나 초반에 책을 읽기가 너무 힘들었었다. 읽는 와중에도 수도 없이 한 챕터가 몇 페이지가 남았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꾸역꾸역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느꼈던 감동은 실로 책을 읽은 후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내 한국어 이대로 괜찮을까



 이 책은 한국인이 타고 항해하는 한국어라는 배, 이 배는 모두 한국식으로 기본 설계가 되어 있지만 개인의 건조 솜씨와 관리 상태에 따라서 그 성능이 천차만별이다 -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여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한국인의 모든 배가 최고의 성능을 갖추도록 안내하기 위하여 지어진 책이다.
글을 쓰는 사람과 그것을 읽는 사람 사이에 한국어라는 표준화된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처럼 매우 손쉽게 다른 사람의 지식과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라는 관념은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한 발더 나아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점검해볼 것을 역설한다. 사실 일상 속에서 익숙해진 것을 재점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굉장히 귀찮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사는데 지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다른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익숙함을 점검하는 것은 내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즉, 익숙함에 젖어 숨어있는 디테일을 점검하는 것이다.

 

익숙함에 대한 함정



우리는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잘 안다고 쉽게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인간관계를 예로 들면 어떤 사람과 매일 만난다고 해서  그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언가를 잘 알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건으로 시간이 동반되어야 하지만 구체적으로 성장배경과 깊은 대화 등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중요하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국어를 잘 안다고 하기보다는 그냥 익숙한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착각' 때문에 무언가를 더 깊이 알기를 주저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과 관련해서 의도적인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쓴 글이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읽기 불편하지 않은지 등 의문점을 갖기 마련이다. 정확히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고충들이다. 내가 쓴 글에서 약점이 드러나자, 그동안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이 착각이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동안 일기는 꾸준히 써왔지만 누군가한테 내 생각을 보여주는 것은 여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5월에 첫 글쓰기 강좌를 한 달간 수강한 것을 시작으로 씽큐베이션 잘팔글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를 통해서 내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신의 글에서는 조금씩 비문이 보입니다.


그러나 어법을 모르거나 오해하여 쓰는 경우, 깊은 생각 없이 어휘를 나열하는 데 급급하면 수많은 비문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래 문장은 '에서'를 쓸 자리에 '에'를 쓴 것들이다. 아무래도 부자연스럽게 보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장을 비문이라고 한다.


형은 큰 회사 근무하고 있다.   '에' -> '에서'

그 광경은 꿈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에' -> '에서'

이 정보를 인터넷 찾아라.  '에' -> '에서'


씽큐베이션을 통해 받은 첫 피드백이다.(물론 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당시 나는 '비문'이라는 단어조차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위에 예시처럼 문장 구조가 어법에 맞지 않고 어색하게 보이는 것을 비문이라고 한다. 본문에 의하면 한국어 사용에서는 주로 '조사'나 '어미'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비문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글을 쓰면서도  조사 하나쯤이야라는 허접한 마인드가 있었던 것 같다. 익숙함의 단계에 있을 때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지도 못할뿐더러,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국어란 그저 의미만 전달되면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글은 호흡이 긴 편입니다.


한국어는 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을 위해서 주어와 목적어 및 서술어 사이를 가능하면 짧게 만들어야 하는 언어, 다시 말하면 부사어를 간결하게 써야 하는 언어이다.


축약은 문장이나 글에서 중요하지 않거나 관련이 없는 내용을 뺌으로서 글을 간결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몇 달 전 첫 글쓰기 수업을 들었을 때 귀가 닳도록 들은 피드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내용만큼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용시키기가 어렵다.  이 책을 보면서 내 문장이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 줄 깨닫게 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주어와 서술어 사이 혹은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 오는 관형어나 부사어를 잔뜩 넣어 두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읽다가 늘어진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익숙함을 경계하라



자기의 중요한 뜻이 문장 구성의 잘못으로 인해서 오해되거나 평가절하되지 않도록 가장 어법에 맞는 문장을 쓰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바르게 쓴 언어와 문장 속에 아름다움과 참됨이 깃든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모국어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익숙함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그래서일까 익숙한 것에 대하여 더 이상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게 된다.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라는 책은 한국어를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익숙함이라는 관념을 더욱 폭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다른 깨달은 점이 있다면 그동안 한국문학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의 것을 더욱 계발하기 위해선 모든 의사소통에 기초가 되는 한국어부터 새롭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없는 상태로 읽기를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 본다면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한국어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사랑이 담겨 있다. 그의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그것에 감회 되어 더욱 올바르고 곧은 문장을 구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를 마무리하면서 내린 결론은 언어의 경우 '바로 쓰는 것이 아름답게 쓰는 것이다'라는 한 문장이다. 더욱 줄인다면 '바른 문장이 아름답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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