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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Dec 24. 2019

사람, 파바로티

<파바로티>, 론 하워드, 2019

  ‘세계적인 테너’ 라는 수식어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루치아노 파바로티’다. 목소리 하나로 전설이 된 남자. 영화 <파바로티>는 전설로 기억되는 파바로티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인간으로서의 파바로티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이다. 

  그 질문 이전에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던 파바로티는 ‘100년 후에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긍정적이고, 오페라를 친근하게 전하려고 했던, 레퍼토리가 다양한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영화 <파바로티>에 기록된 가수로서의 그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파바로티는 대중들에게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한 가장 이상적인 목소리”, “사진처럼 선명한 High C를 불러낼 수 있는 독보적인 가수” 그리고 평단에서는 ‘지나치다’라고 평할 만큼 대중문화와 대중들과 가까웠던 오페라 가수. 

  전설적인 재능을 가진 그에게 100년이라는 시간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1995년 그는 아마존 정글을 찾아가 100년 전 카루소가 노래했던 곳에서 <귀여운 입술>을 불러본다. 100년이라는 시간의 묵은 때를 그의 단단한 목소리로 씻어내고 전설을 다시 이어 쓰는 것이다. 100년 전의 시간을 체감했던 파바로티였기에 자신이 사라진 100년 후의 시간에 대한 답은 큰 오차 없이 명료하고 정확하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흥미로운 변주가 일어나는 부분은 ‘인간으로서의 파바로티’이다. 

  전설이 아닌 ‘사람, 파바로티’에 대한 기억은 그가 살아서 걸어갔던 개인적 행보들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증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그를 유쾌하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실제로 영화 안에서 그는 장난꾸러기 소년 같다. 농담을 잘하고, 유머러스하고 센스가 넘친다. 또한 ‘구부러진 못’을 부적처럼 챙기는 모습에서 무대 앞에서 긴장하는 거장 파바로티의 인간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스스로를 농부라고 부를 정도로 소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파바로티였지만, 그는 ‘대중의 사랑’을 갈구했다. 이는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기획자들과 함께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던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가 가지각색의 기획자들과 끊임없이 일을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목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에너지에 있었다. 클래식에서 대중문화로 나아간 그가 머무른 곳은 목소리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다. 그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한 무대에 서는 자선 공연들을 열었다. 이런 파바로티의 다양한 도전과 시도 속에서 전설의 무대인 ‘쓰리 테너스’ 공연이 대중들에게 선보여지기도 하였다. 

  영화의 끝, 파바로티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의 대답은 소박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이렇듯 영화 <파바로티>는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매 순간 빛났던 그의 목소리를 가득 더했다. 파바로티의 노래들은 영화 속 사람들의 추억을 견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관객들의 추억 또한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영화관을 울리는 단단하고 선명한 파바로티의 목소리는 여전히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렇게 전설은 다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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