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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n 13. 2023

반짝거리는 우리 보통날

<항구의 니쿠코짱!> , 와타나베 아유무, 2023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 본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쿠코’는 조용한 항구 마을의 한 선박에서 엄마 ‘니쿠코’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니쿠코는 마을에서 ‘사연 있는 밝은 뚱보’로 불리곤 한다. 여러 남자들에게 상처받고 딸과 함께 각지를 떠돌던 니쿠코의 사연은 그녀의 ‘토토로’ 같은 커다란 몸집처럼 감출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니쿠코는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거대한 다정함으로 자리 잡는다. 그녀는 마을의 한 고깃집에서 서빙을 한다. 해가 저물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따뜻한 포만감을 잔뜩 전해줄 음식들을 나른다.

 키쿠코는 중간에 서 있는 사춘기 소녀다. 키쿠코는 그녀에게 다가올 몸의 변화를 알고 있다. 멀지 않은 시간에 그녀는 변화를 겪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키쿠코는 변화 앞에 의연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그녀는 일상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 학교에서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관계의 무게중심에 신경이 쓰이고, 등하굣길에 만나는 무뚝뚝한 얼굴의 ‘니노미야’가 불현듯 짓는 우스꽝스러운 얼굴에도 마음이 쓰인다.

 그리고 본인과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엄마와, 그 엄마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 이사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키쿠코의 일상에 불안을 가져온다. 키쿠코는 본인이 타고 있는 배가 언제 어디를 향해 움직일지 모른다는 점에서 현재를 온전히 깊게 사랑할 수가 없다. 가장 오래 머문 이 항구마을에서의 추억들이 조금씩 특별해져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키쿠코는 행복과 상실을 동시에 감각하고 있다.

 영화 <항구의 니쿠코짱!>은 변화를 예민하게 감각하는 키쿠코가 본인의 목소리로 기록하는 반짝이는 보통날의 성장기를 담는다. 영화에서 니쿠코는 키쿠코에 의해 설명되고 정의된다. 키쿠코는 니쿠코를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는 보호자’라는 내적인 시선과, ‘사연 있는 밝은 뚱보’라는 외부의 시선 사이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본인의 시선을 따른다면 니쿠코는 동등한 위치에서 아낌없이 다정함을 퍼주는 보호자가 될 것이고, 외부의 시선을 따른다면 니쿠코는 철없고 뚱뚱한 사연 있는 엄마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지점에 함몰되지 않고 키쿠코의 사회적 관계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니쿠코를 ‘거대한 다정함’이라는 평면적이지만 일관적인 캐릭터로 키쿠코 옆에 세워 둔다. 마치 영화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가 아이들 옆에 나무처럼 거대한 몸으로 서 있으면서 그들의 성장을 도왔던 것처럼. 그렇게 니쿠코라는 인물은 영화의 모든 사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분위기가 되고, 이름이 되고, 상징이 된다. 니쿠코가 영화에서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키쿠코의 성장담이 여러 시공간을 담으며 입체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니쿠코만 곁에 있다면 그녀의 다정함이 영화 안에서나 밖에서나 중심을 잡아 줄 테니.

 니쿠코의 ‘다정함의 중력’을 바탕으로 키쿠코는 본인이 가진 다양한 얼굴들을 발견해 나간다. 단짝 친구를 외면했던 본인의 못난 마음부터, 니노미야와 함께하면서 발견한 아이 같은 행동들, 그리고 관계들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는 사회적 환경과 성장의 시간을 반짝임으로 인식하는 것까지. 그렇게 키쿠코는 시간에 떠밀려 외부에서 설정한 일련의 성장 단계들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한 페이지를 본인의 손으로 넘기게 된다.

 키쿠코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면, 니쿠코는 뜨문뜨문 실없고 낙관적인 농담을 던지고는 한다. 이를테면 ‘별이라는 한자는 ‘태어나다’와 ‘빛나다’가 합쳐져 만들어 졌다.‘, ’보통이 제일이다,‘ 같은 말들이다. 하지만 키쿠코가 스스로 하나의 시절을 마무리 짓는 순간에는 니쿠코가 던졌던 농담 같은 명언들이 키쿠코의 삶에 스며있다. 이제 키쿠코는 태어남 자체로 반짝이는 보통으로 가득 찬 일상들을 소복소복 쌓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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