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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r 01. 2024

온기 없는 이 땅에서 서성이다 떠밀리듯

<믿을 수 있는 사람>, 곽은미, 2023

*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 본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탈북민 ‘한영’(이설)은 관광 통역 안내사로 이제 막 한국 사회에 첫 발을 딛었다. 선배가 조금 깐깐해도, 가이드를 하며 관광객들에게 무시를 받아도 한영에게는 “돈을 많이 벌어 잘 살고 싶다”는 꿈이 있다. 관광 가이드를 지원했을 당시 그녀의 꿈의 정처는 계속해서 가이드를 할 수 있는 한국,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다. 한영은 고향에서 멀지 않은 이 땅에서, 언젠가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재회하기를 바란다. 비록 함께 내려온 남동생 ‘인혁’(전봉석)과는 연락이 소원한 상태이지만, 그녀는 브로커를 통해 북한으로 생활비를 보내며 가족의 감각을 놓지 않는다. 

  반면 ‘정미’(오경화)는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어렴풋한 희망을 가진 한영을 보며 탈북민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툭툭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영에게 ‘해볼 것은 다 해보라’며 그녀를 응원해준다. 한국에서 탈북민으로 살며 감시받는 삶, 가능성이 제한된 삶에서 쉽게 희망을 보지 않는 정미는 영화 속에서 한영보다 몇 발짝 앞서 걷는 사람이 된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과 한국의 나라 간 갈등이 깊어지며 중국은 한국 관광을 중단시켰다. 중국이 한국 관광을 금지한 상황에서 특정 분야에 대한 파장이 예상됨에도 충격을 완화해줄 사회적 완충장치는 없었다. 국가 간 갈등의 충격은 곧바로 관광 산업과 연계된 개인에게로 가해졌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가이드를 하고 있는 한영 또한 예외 없이 그 혹독한 시간을 맞는다. 그렇게 한국에서, 가이드로 살아가는 생활에 뿌리를 내려가던 한영의 삶이 유실되기 시작한다. 믿었던 관계들이 배신으로 무너져 내리고, 경제적 상황이 힘들어지면서 가이드로서 지켜야했던 양심들도 더 이상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영은 안팎으로 조금씩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는 이 땅에서 자신마저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 한영에게 정미는 이민을 떠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린 모습만 같지 한국 사람들에게 외국인들보다 못하다. 우리 같이 가자.” 그런 정미에게 한영은 서울을 가이드 해준다. 한영은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고 보고 설명했던, 한국의 아름다움을 정미에게 선물한다. 정미는 이날 남한이 두 번째로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어쩌면 관광객들을 위해 편집된 한국의 아름다움이 한영에게 한국에 대한 희망을 심어줬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한영이 가지고 있던 한국에 대한 마지막 믿음이었고, 그 믿음이 정미보다 조금 더 오래 이 땅에 발을 디딜 수 있게 했을 것이다. 한영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나면, 관광객들은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관계의 온기를 나누어주곤 했으니까. 이방인이기에 끝내 한국인이 될 수 없는 현실과는 다른 표면적인 한국의 외연과 얽힌 그 미약한 온기가 그녀를 이 땅에서 서성이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영은 결국 곁을 주지 않는 온기 없는 이 땅에서 떠난다. 정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새로운 땅에서 스스로 선택한 ‘외국인’이라는 사회적 이름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외국인으로도, 자국민으로도 부르지 않았던 이 땅의 사람들이 떠나는 그녀를 기억할 사회적 이름은 여전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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