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올해도 정신없이, 혹은 별 다를 것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내게 12월 31일의 기억은 11시 59분까지 회사에서 일하다가 새해를 회사 문 밖에서라도 맞이하겠다고 후다닥 뛰어나가던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작년 2022년을 맞이하던 때는 일하던 동료 몇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건넸고, 올해는 이직해서 상황이 좀 다른가 싶었지만 회사에서 맞이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집에서 일하다 말다 불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을 뿐이었다.
한 해가 지나고 또 지날 수록, 나이를 먹을 수록 더욱 현명하게 일하게 되나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다. 내가 하는 분야의 일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오늘 몰아서 한다고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매일 조금씩 고민한다고 해도 마지막 날 하루에 새롭게 생각한 것이 좋은 디자인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 분명한 것은 어느정도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매일매일 조금씩 고민한 게 당장은 눈앞에 결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게 쌓이고 쌓여 시너지를 내서 마지막에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디자인으로 이끈다고 믿고 있다.
이직을 하고 같은 일이지만 새롭고 더 많은 영역을 관여하게 되면서 어렵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다. 계속 같은 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몰랐을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같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나를 움직인 원동력이었다. 그래야 바로 무너지지 않고 같이 힘을 합쳐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한편으론, 예전엔 큰 회사 안에서 있어서인지 1년 후, 2년 후를 잘 생각을 안했었는데, 나오고 나니 자꾸 가까운 미래를 고민하게 된다. 1년 후 나는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5년 후 나는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이 일을 계속 잘 하고 있을까? 그러다 다시 생각한다. 내 단점이라면 단점이고, 장점이라면 장점인, 조금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일에 집중하자고. 결국은 지금의 최선과 노력이 쌓여서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여전히 내 것을 놓지 못하고 주변에 일을 나누는 것도 잘 못하지만, 그나마 예전보다는 그 큰 힘을 안다. 결국 협업이라는 것을. 그리고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도 좀 더 신경쓰게 된다. 나는 아무래도 역시 말보단 글이 편한 사람이지만, 직업 특성 상 좀 더 시각적으로 멋지게 컨셉을 잡고 설득하는 능력을 키우자고 다짐한다. 그동안은 급박한 스케쥴 속에서 그저 과정은 무작정 열심히 몰아치다 좋은 세트를 만들어내는 결과로 끝났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초반의 컨셉을 견고하고 멋지게 다져서 서로를 설득하고 최상의 방향으로 이끌면서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내게 부족한 것을 채움과 동시에 내가 가진 장점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동안은 그저 진득하게 일하는 것이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좀 더 겉으로 드러나는 장점이 있어야하는 걸까 생각한다.
변화를 주고 싶다면 머무는 장소를 바꾸라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직장을 옮기니 환경이 바뀌었고, 일의 영역도 넓고 깊어졌다. 이제 내 주거 공간만 바꾸면 내 삶이 좀 더 달라질 것 같은데... 집에서의 나는 약간 무기력한 느낌이니까. 아무리 일에만 24시간, 365일을 쏟아붇는다 해도, 내 시간에 발전적인 걸 할 수 없다면 내 스스로 발전이 없을 것 같아 두렵다. 지금 당장은 일하느라 정신없으니 올해 중반쯤이나 늦어도 내년까지는 기회를 봐서 독립을 실행에 옮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