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일공원 Jul 09. 2021

메신저 폭풍의 재택 근무를 잠재우는 간편 볶음밥

삶의 균형을 위한 안식요리

삶의 균형을 위한 안식요리

작년 말 이직했다. 그리고 알았다. 으리으리한 사옥과 세련되게 꾸며진 오피스 인테리어및 풍부한 간식보다 좋은 것은 재택근무라는 것을. 물론 재택근무는 복지 개념이기보다는 일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도입하기 힘든 방식중 하나겠지만..!) 재택근무가 좋았던 것은 역시 자율성이다. 자율성은 2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유 그리고 규율. 스스로 지키는 규율은 업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다준다. 높은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하다 보니 재택근무라 온종일 놀다가 1~2시간 깔짝 일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시간이었나 싶다. 분명 일하는 환경은 편해진 것 같은데 이전 회사에 비해 업무 강도가 낮아진 거 같지 않다. 오히려 더 바쁠 때가 많다.(더 고효율로.)


바쁘게 돌아가는 디지털 속 근무환경에서는 현실 행위를 놓치기 쉽다. 사람들과 눈 마주치고 인사하기나 제시간에 밥 먹기와 같은. 주변 팀 동료분들과 스몰토크를 하다 보면 업무가 너무 바빠 식사시간을 놓쳤다는 경우를 종종 듣는다. 봉천동 최고 부지런 돼지인 나도 점심시간이 됐는지를 모를 때가 있을 정도니, 평소에 규칙적인 식사에 관해서 관심이 덜한 사람이라면 불균형한 식습관에 빠지기 쉬웠을듯하다. 그렇지만 전쟁통에서도 연주를 포기하지 않았던 어느 피아니스트처럼 부지런한 돼지는 폭풍 일과 속에서도 식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면 배달을 꽤 합리적인 선택이다. 점심시간 몇 분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해놓고 잠시 일에 집중하고 나면 어느새 문 앞에 그날의 메뉴가 도착해 있다. X로나 사태 이후로 배달수요가 한층 커지면서 다양한 수요에 맞게 음식도 1인분씩 다양한 메뉴를 시켜먹을 수 있게 되었다. 돈까쓰,제육,냉면은 기본이고, 주변 쩝쩝 박사분께서는 파전에 부꾸미, 타코 등등 입맛에 맞게 잘 시켜 드시더라.


그렇지만 배달음식은 2가지 단점이 있다. 첫 번째로 돈이다. 딱히 옷 산 것도 없고 비싼 물건을 산적도 없는데 왜 월급날이 가까워질수록 통장은 마르는 걸까? 지출내용을 다시 꺼내보면 식사비다. 그리고 대부분은 배달비다. 배달비가 어마 무시하다. 한 끼에 1만 원~1만 5천 원하는 음식을 일주일에 몇 번 시켜먹다 보면 금세 몇십만 원이 훌쩍 까여있다. 무서운 한 끼다. 핀테크 UX가 발전하면서 결제를 위한 진입 장벽이 버튼 하나로 낮아진 점도 우리가 배달비에 잔고를 뺏기는 것에 한몫했을듯하다.


배달음식의 두 번째 단점은 식사의 본질을 잃는 것이다. 식사는 무엇일까? 단순히 영양섭취는 아닐 것 같다. 선택한 메뉴를 눈으로 확인하고, 맛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맥락을 가진 경험일듯하다. 그리고 나는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도 식사의 본질에 포함하고 싶다.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음식을 먹는 사람을 위한 시간이다. 그것이 나일지라도. 하루에 일정이상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물리적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힘의 대상은 더 소중해지고, 에너지를 가진다. 오늘 나를 위해 가진 시간으로 더 즐거운 내일을 보낼 수 있다.


배달은 편리하게도 식사를 버튼 몇번으로 축소시킨다. 가끔은 재료가 잘리고 볶아지는 것을 쳐다보면서 오늘 내 하루가 어땠는지 혹은 어땠을지를 생각해보자. 만든 음식이 어설프고 못나더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볶음밥은 파스타 같다. 우선 금방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바쁜 재택근무 식사에 제격이랄까. 알리오올리오를 깨우치면 오일과 면만 있는 형태에서 출발하여 봉골레, 크림파스타, 토마토파스타, 로제파스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처럼. 초반 맛을 내는 방법만 알면 어떤 것이든 고슬고슬 맛있게 볶을 수 있다.


계란 볶음밥

준비물

-계란 2개, 햇반, 대파, 간장, 식용유

그리고 있으면 좋을 굴소스, 참깨


볶음밥의 맛은 강한 화력에서 오는 불맛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의 대부분은 가정용 가스레인지 혹은 얌전한 인덕션이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시간을 들여 밥알 하나하나가 살도록 정성을 들이면 된다. 먼저 스크램블을 만들어주자. 스크램블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팬을 충분히 달구고 기름을 한바퀴정도 두른다. 뜨거워진 팬에 계란 2개를 톡톡 까 넣고, 익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무젓가락 등으로 휘휘 저어주자. 액체 상태인 계란이 서서히 굳기 시작하면 따로 덜어내자. 이렇게 스크램블로 따로 만들어 넣으면 밥알 사이 계란이 포슬하게 씹혀서 맛이 좋다. 밥을 볶는 와중에 계란을 함께 넣고 볶으면 화력이 약한 인덕션에는 특히 샤브샤브를 먹고 난 후 먹는 죽 같은 비주얼이 되기 좋다. 지금은 계란만 잘 익혀주고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다른 요리를 하는 동안 냉동실에서 잠시 식혀주자.


스크램블이 끝나면 이제 밥을 볶을 차례다. 프라이팬은 계란을 볶았던 팬을 그대로 사용한다. 다시 팬에 불을 올리고 지체 없이 식용유를 휘휘 두른다. 볶음밥은 식용유를 넉넉히 넣을수록 맛있다. 조금 과했나 싶을 정도로 넣어주자. 그리고 썬 파를 한 움큼 정도 잔뜩 넣어준다. 편마늘이 있다면 함께 넣어주자. 유튜부에서 지독히도 많이 나온 파기름을 내는 과정이다. 파를 달궈진 기름에서보다는 낮은 온도의 기름에서부터 익혀야 파기름이 더 잘 만들어진다. 기름이 부글부글 끓고 향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파가 노릇한 기운이 물씬 들면 이제 파기름이 완성된 상태이다.


완성된 파기름에 밥을 볶을 차례다. 너무 뜨거운 밥을 넣으면 고슬하게 만들기 어려우므로 적당히 식은 밥이 좋다. 손이 빠르다면 밥을 넣자마자 휙휙 밥알을 하나하나 분리하겠지만 탈까 봐 마음이 조급하다면 잠시 불을 끄자.(인덕션을 사용 중이라면 잠시 팬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리고 국자, 스페출러, 뒤집개 뭐든 팬의 코팅이 벗겨지지 않도록 밥을 팬에 골고루 잘 펴준다. 밥이 팬에 고르게 펴진 것 같으면 다시 불에 팬을 올려두고 밥과 파기름을 잘 섞는다.


소스는 간장으로 간을 하지만 사실 굴소스를 더 추천한다. 없으면 이김에 하나 꼭 사두자. 굴소스는 중식요리에서 감칠맛과 간을 잡는 데 사용하는 농축된 간장 같은 소스이다. 요리에 한두 스푼 넣는 것만으로 맛이 훨씬 좋아진다. 동양의 치킨스톡같은 녀석이다. 팬에 간장(혹은 굴소스)를 넣을 때에는 밥에 바로 투하 하지 않고 팬 주변에 뿌린다. 그리고 소스가 부글부글 끓는 모양새가 되면 밥과 소스를 함께 비빈다. 이렇게 소스를 눌려야 더 불향에 가까운 볶음 요리가 된다. 밥과 소스 파기름이 적절히 섞이면 아까 만들어둔 계란을 넣고 30초 정도 휙휙 저어주는 것으로 끝낸다. 마지막으로 참깨를 뿌려주면 시간을 내 요리를 한 기분이 한껏 든다.


보상 볶음밥

준비물

-계란 볶음밥을 만들기 위한 재료, 보상 재료(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햄, 베이컨 뭐든지)


앞의 계란 볶음밥에서 파기름맛을 내는 것에 성공했다면 이후엔 사실 무엇을 넣고 볶든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된다. 가장 쉬운 재료는 햄 혹은 베이컨이다. 이미 익혀져 있는 재료이기 때문에 타지만 않는다면 재료를 언제 넣어도 크게 상관없다. 기름기가 많은 베이컨은 파기름을 낼 때 함께 넣어서 볶아주면 한층 더 맛있는 기름이 만들어진다.


아직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등을 넣을 계획이라면 파기름을 내기 전에 팬에서 먼저 고기를 익혀주자. 고기를 중간에 넣으면 팬에 자리가 없을 수도 있고 고기를 익히는 동안 연약한 파들이 다 타버릴 수 있다. 충분히 익힌 고기는 따로 빼두고 소스를 넣기 전에 밥과 함께 볶아주자. 더불어 고기를 굽고 난 후 팬은 꼭 씻지 말고 바로 파기름을 내보자. 고기가 구워지며 팬에 눌어붙은 육즙 등이 볶음밥을 더 맛있게 만들어준다.


밥 한 공기에는 고기가 약 200g 정도. 한 움큼이 좀 안되는 양이 들어가도 충분하다. 나는 늘 고기를 살 때 욕심을 부려서 사게 되는데, 반은 볶음밥에 넣고 반은 통으로 구워서 밥 위에 쌓아 먹는다. 좋은 고기덮밥 비주얼이 된다.


토마토 리소토

준비물

-햇반, 마늘, 양파, 베이컨, 토마토 파스타 소스, 올리브유, 버터


뜬금없이 웬 리소토일까? 파전과 피자, 국수와 파스타 이렇게 동서양이 대칭되는 음식처럼 리소토도 볶음밥과 비슷한 요리다. 밥이 들어가기도 하고. 다만 다른 점은 대파가 마늘로, 굴소스가 토마토 소스등으로 재료가 바뀐 점이겠다. 만드는 과정은 역시 비슷하다. 넣어주는 순서만 잘 기억하자.


마찬가지로 팬에 불을 올리자 마자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다. 그리고 바로 다진 양파와 편마늘을 넣는다. 정성스럽게 파기름을 냈던 것처럼 이번에는 마늘과 양파를 볶는다. 마늘이 노릇해지고 양파가 투명해지고 살짝 색이 노래질 때쯤 (아마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다) 베이컨을 넣고 볶아준다. 베이컨은 금방 익는다. 베이컨이 익으면 햇반을 넣고 재료를 잘 섞은 후 토마토 소스를 충분히 넣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터를 크게 한 조각 넣어준다. 버터를 넣음으로써 요리의 방향성이 서양풍으로 확 변한다. 보통 토마토 소스에 간이 충분히 되어있지만, 중간에 한번 맛을 보고 소금으로 간을 해주자. 동양음식의 간은 간장으로, 서양음식의 간은 소금으로. 기억해두자.


리소토도 볶음밥과 마찬가지로 무궁무진하게 응용할 수 있다. 우선 토마토 리소토가 아닌 크림 리소토가 좋다면 토마토 소스 대신에 마트에서 파는 250mL짜리 휘핑크림을 넣어주면 된다. 물론 간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소금이나 치킨스톡을 조금 더 넣어주면 좋고, 충분히 졸여주면 꾸덕한 리소토를 만들 수 있다.


무슨 재료든 넣으면 자기만의 리소토를 만들 수 있다. 베이컨, 닭가슴살, 소 등심 원하는 재료를 넣어보자. 집에서 넣으면 고기 잔뜩 리소토를 먹을 수 있다. 다만 밥을 넣기전에 재료를 넣고 볶아 충분히 익혀주고 꼭 마지막에 밥을 넣어주자. 밥을 넣는 순간 재료가 익을 공간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퀴퀴한 자취방을 밝히는 근사한 파스타 요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