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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공원 Sep 29. 2022

인생네컷

대만 카스테라, 인형 뽑기에 이어서 인생네컷의 유행이 한참이다. 카스테라는 혼자 먹기 양이 많고, 인형 뽑기는 내가 게임에 워낙 소질이 없어서 한 두번 해봤을까? 그런데 인생네컷은 벌써 몇 장을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술 먹고 기억이 흐릿한 상태로 찍은 것까지 포함하면 더 많겠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 인생네컷을 좋아하는 걸까? 사진 찍는 것을 어색해하는 나도 인생네컷 부스 안에서는 꽤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편해서 좋아하는 걸까?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엄마와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편입한 이후 별다른 이유 없이 따로 본 적이 없었다. 명절이 되거나, 볼 일이 있다면 만나는 그런 사이. 어쩌면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런 부모 자식 간의 사이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아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 금요일 시간이 되냐는 급작스러운 엄마의 말에 연차를 썼다. 서울 숲에 가서 강아지 애니와 식사를 하고 카페를 가고 또 사진도 찍을까 싶었다. 엄마는 강아지와 함께 셋이 사진은 찍고 싶지만 비싼 것은 부담스럽다고 하셨다. 셀프 스튜디오나 인생네컷 같은 곳에서 찍어도 괜찮다고 한다. 어머니는 인생네컷을 좋아한다고 하셨ㅇ.. ♫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국 우리는 성수를 가지 못했다. 엄마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린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둘 다 막상 나가기 귀찮았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엄마 운전하느라 피곤하지?”,”나가면 강아지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더 귀찮겠지?” 다행히도 인생네컷은 동네에도 있었고, 맛있는(그리고 비싼)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마친 뒤 카페를 거쳐 10대들이 갈법한 공주공주한 인테리어의 인생네컷에서 사진도 야무지게 찍고 나왔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나를 만날 때마다 ‘여기 좀 봐줘~’라며 늘 셀카를 찍었다. 그렇게 가끔 만나면 어색한 사진만 몇 장씩 남았는데, 이렇게 보기 좋게 사진을 남길 수 있다니. 참 좋다. 인생네컷은 작위적이면서 자연스럽다.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인생네컷 프레임 안에서는 모두가 한층 덜 어색하고 사이가 좋아 보인다. 잘 셋팅된 조명과 카메라 셋팅, 약간의 소품 그리고 몇 장씩 사진을 찍다 보면 사진을 찍는 것을 어색해하는 사람들도 금세 표정이 자연스러워진다.


보기 좋게 찍힌 사진은 사진을 기준으로 그날의 시간들을 더 자연스럽고 좋은 시간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단지 4 프레임뿐이지만,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사진을 보면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대화를 했던 다른 시간도 지금 보는 4 프레임처럼 더 좋았던 것처럼 추억하게 된다. 너무 소모적이지만 않다면, 가끔은 이렇게 품을 들여 사진을 남기는 것이 꼭 필요하다. 작위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이 과정들, 인생네컷집을 찾고 촬영하기 전 머리를 가다듬고 어떻게 찍을지를 떠드는 이런 유난스러운 것도 다 소중하다. 


사진으로 보니 엄마를 보니, 맨날 보던 엄마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나의 눈이 아닌 타인의 화각으로 보는 익숙한 얼굴이 동시에 새롭기도 해서 왠지 미안하다. 그래서 인기가 많은가? 미안하진 않더라도 익숙한 얼굴들을 새롭게 기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어서 인기가 많다보다. 인생네컷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어느 순간에는 대만카스테라와 인형 뽑기처럼 유행이 끝나감과 동시에 사라질 수 도 있겠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남기기 위한 방법은 또 생기겠지. 그러면 또 엄마와 다른 걸 하러 가야겠다.


나와 엄마 그리고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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