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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공원 Jul 08. 2021

마음을 채우는 돼지고기

삶의 균형을 위한 안식요리

평범한 하루더라도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무사히 하루를 넘긴 나를 위해 보상을 주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든다. 나에게 보상은 간단하다. 맛있는 음식과 술.


옛날부터 ‘고기’는 특별한 날 먹는 대표적인 재료였다. 옛날이야기에서 등장한 특별한 날을 기념해 먹은 고깃국, 고기반찬들. 다행히도 이제는 만 원 한 장이면 한 끼를 채울 푸짐한 고기를 사 올 수 있다. ( 심지어 24시간 편의점에서도) 마을에 잔치가 열릴 만큼의 경사가 있지는 않지만 오르락내리락 고된 하루를 보낸 나에게 퇴근은 언제나 특별한 행사다. 행사에는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지.


사실 오늘 저녁 메뉴를 무엇인지는 대부분 오전에 정해진다. 어울리지 않게 하루의 칼로리와 단백질/탄수화물/지방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식사를 구성하기 때문에 저녁에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을 계획이라면 점심을 최대한 가볍게 먹는 편이다. 술 약속이 있거나 돼지고기와 같은 무거운 식사가 예정되어있다면 점심은 샐러드이거나 비슷한 류의 간편식이다. 저녁을 가볍게 먹을 예정이라면, 점심은 밥과 고기 등 균형이 잡힌 식사를 한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다 보니 하루의 식사 구성은 대부분 하루의 아침이나 그날 저녁에 잠들면서 정해진다. 난 정말 부지런한 돼지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비율을 의식해서 식사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탄수화물로 배를 채웠을 때와 단백질로 배를 채웠을 때의 포만감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에 기름이 많지 않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면 배가 금방 꺼지는 편이고, 탄수화물 위주의 혹은 탄수화물이 포함된 식사를 하면 포만감이 오래 가는 편이다. 고된 일이 후에 별다른 일정 없이 식사 후에 잠자리에 들것으로 예상된다면 역시 고기 식사가 답이다. 반대로 식사 후에 할 일이 많다면 탄수화물이 들어간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자주 먹는 삼겹살은 100g 기준 517칼로리다. 식당에서 파는 1인분(200g) 기준으로 보았을 때 삼겹살이 포함된 1끼는 1000칼로리가 훌쩍 넘는다. (그리고 우리는 1인당 1인분을 먹는 나약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평균 하루 기초대사량이 여성은 1500, 남성이 1700 정도니까 삼겹살 1인분에 밥 한 공기 먹으면 기초대사량이 1끼 만에 채워지는 셈이다. 살찌는 걸 이만큼 돌려 말했다. 결국, 삼겹살은 마음 놓고 데일리 하게 먹기에는 무리한 음식이다.


그래서 찾은 부위는 바로 ‘앞다릿살’이다. ‘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앞다릿살은 100g 기준 180칼로리이다. 삼겹살의 3분의 1에 가까운 칼로리다. 두 번째로 ‘금’겹살에 비해 가격도 훨씬 저렴해서 우리 동네 기준으로 만원이면 1kg의 앞다릿살을 구할 수 있다. (비슷한 부위의 뒷다릿살은 앞다릿살보다 가격이 더 저렴한데 맛은 역시 조금 더 비싼 앞다릿살이 낫다고 한다) 물론 기름기 좔좔 인기 부위인 삼겹살보다는 맛이 조금 떨어지지만 담백한 맛을 좋아하고 기름진 음식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앞다릿살은 최적의 선택이다.


큰-덩어리로 산 앞다릿살을 잘게 잘라 카레나 볶음밥 등으로 해먹어도 좋지만, 뭉텅뭉텅 큼직이 썬 고기를 입에 때려 넣는 것을 선호하는 정통 육식파라면 아래 ‘앞다리 통구이’ 레시피를 추천한다.


'앞다리 통구이'


준비물

-에어프라이어, 앞다릿살, 후추, 맛소금, 올리브유, 마늘(선택), 양파(선택), 대파(선택)


기본적으로 앞다릿살은 지방층이 적은 부위다. (가끔 지방층이 엄청 두꺼운 상태로 포장된 경우가 있는데, 손질하는 게 좋다. 삼겹살처럼 지방 사이에 고기가 적절히 껴있는 게 아니라 비계의 고소함이 더 빨리 물린다) 때문에 프라이팬에 굽는 방식은 육즙이 금방 빠지기 때문에 잘 구워도 퍽퍽해진다. 추천하는 방식은 에어프라이어에 주먹만 한 크기의 고기를 넣고 통으로 굽는 것이다.


고기 고르기

조리 과정이 간단해서 전 과정이 중요하다. 추천하는 것은 고기를 산 직후 신선한 고기로 통구이를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고기는 영혼 없는 사람처럼 육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먼저 준비한 신선한 고기를 실온에 2~3시간 이상은 두어서 속이 차지 않도록 한다. 속이 차다면 고기를 구울 때 안과 밖의 익는 속도 차이가 커서 통구이 전체에 고른 맛을 내기 힘들다.


시즈닝하기

고기를 굽기 직전에 맛소금과 후추 그리고 올리브유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시즈닝한다. 조물조물 주물럭대면 좋다. 굽기 직전에 시즈닝을 하는 이유는 소금이 고기에 닿으면서 삼투압 현상으로 육즙이 빠지는 현상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시즈닝에 사용하는 후추는 그라인더로 간 통후추를 추천한다. 통후추가 주는 식감이 좋기도 하고, 순후추는 향보다는 매운맛이 강해서 아쉽다.


굽기

자 이제 굽기만 하면 된다. 에어프라이어에 고기를 넣고 160도에서 20분, 뒤집어서 20분 구워주자. 집마다 기기의 성능이 다르기 때문에 맞는 시간을 찾는다. 중요한 것은 온도다. 온도를 160도 이상으로 하면 고기가 빠르게 익지만, 저온에서 익힌것 보다 고기가 더 퍽퍽해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온에서 오래 익혔을 때 고기가 더 고르게 익고 쫀득한 식감이 잘 산다. 믿고 천천히 익혀보시라.

저온에서 고기 겉면이 모두 노릇 하게 익었다면 보통 익은 것이다. 오버쿡이 되지 않게 조심하자. 안 익었을까 봐 쫄린다면 한 덩이 과감하게 잘라보자, 핑크빛이라면 성공, 핏물이 흐른다면 더 익히기. 혹시 고기가 회색빛으로 꿉꿉하게 다 익었다면 김치를 준비하자. 퍽퍽한 식사가 될 것이다.

마늘을 굽는다면 중간 정도에 넣는 것이 적당하게 익는다. 양파를 넣는다면 고기를 처음 구울 때 원판형태로 툭툭 잘라 고기 아래에 깔아 넣고 소금을 약간 뿌려준다. 고기즙이 베어서 별미다.


먹기

살짝 식힌 고기를 육결이 느껴지도록 거친 백정에 빙의하여 뭉텅뭉텅 썰어낸다. 쌀밥에 먹어도 좋고 탄수화물을 줄이는 중이라면 샐러드에 고기를 한가득 얹어 먹어보자. 죄책감이 덜하다. 시즈닝때 간을 충분히 했다면 그냥 먹어도 좋고, 소스에 따라 여러 맛으로 즐길 수 있다. 쌈장이나 꽃소금에 찍어 먹어도 좋다. 최근에는 오뚜기에서 나온 멜젓과 함께 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금세 식탁이 제주도 풍으로 바뀐다. 와사비는 추천하지 않는다. 매운맛을 중화시켜줄 지방이 적어서 코가 맵다.



대부분의 요리과정을 에어프라이어에 맡기는 게 자존심이 상하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자. 자취요리 마스터피스 백종원님 레세피를 따른 ‘꽈리고추 돼지 볶음’이다.



‘꽈리고추 돼지 볶음’


준비물

-앞다릿살 많이, 꽈리고추 많이, 굴소스, 간장, 간마늘, 설탕, 후추, 물


이 요리는 사실 고기에 지방이 좀 있는 게 맛있다. 원래는 삼겹살용으로 만들어진 레시피인데, 앞다릿살을 써도 무방하다. 지방층이 골고루 포함된 고기를 골라보자. 고기는 통구이처럼 두껍게 자르지 않고 밥반찬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다. 꽈리고추는 고기 한 점 집을 때 1개씩 집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넉넉히 준비한다. 고추는 크기에 따라 2~3등분해준다.


굽기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바로 고기를 올린다. 센 불에 구워 육즙을 가두기보다는 고기 온도를 서서히 올려 육즙을 빼내 소스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혹시 편마늘을 넣고 싶다면 같이 넣고 굽는다. 지방이 빠져나오고, 고기가 노릇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고기가 충분한 갈색을 띠면 그놈의 마이야르가 완성된 것이다. 이때부터 소스 작업을 시작한다.


소스(구우면서)

이 요리는 소스를 배합할 필요 없다. 구우면서 순서대로 넣으면 된다. 나의 기호에 맞게 적절히 간을 봐가며 양념을 추가하자. 고기의 기름이 너무 많다면 조금 따라내도 좋다. 가장 먼저 설탕. 설탕 밥숟가락 반개에서 한 게 정도 기름에 눌린다. 그다음 고기를 한쪽으로 몰아서 프라이팬 바닥에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굴소스 두 숟가락을 붓는다. 그리고 그 위에 간장을 간에 맞게 몇 숟가락 붓는다. (굴소스를 먼저 넣는 이유는 점성으로 간장이 팬에 넣자마자 퍼지지 않도록 잡아두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후 프라이팬을 고기 쪽으로 기울여 굴소스와 간장이 프라이팬에 자글자글 눌리며 고기에 섞이도록 한다. 양념들이 적절히 버무려졌다면 물을 자작하게 넣어주자. 그리고 간마늘도. 물은 고기가 살짝 잠길 정도로 넣는게 좋다.


대망의 꽈리고추

물을 많이 넣은 이유는 바로 꽈리고추 때문이다. 이 녀석에게 충분한 양념이 배도록 국물을 많이 만든 것. 때문에 양념 간도 고기만 있을 때 기준으로 약간 센게 좋다. (너무 세다면 물을 추가해주면 된다. 그래도 짜다면 고기 한 점당 밥을 많이 먹자…!) 고추를 넣고 요령껏 팬을 휙휙 저어보자. 실력이 좋다면 팬을 한 손에 잡고 휙휙, 불안하다면 젓가락으로 휘적휘적. 맛은 비슷하다.


먹기

먹음직스러운 간장 빛 고기에 푸른 꽈리고추가 곁들여져서 생각보다 근사한 생김새이다. 생색내며 요리해주기 적합하다. 국물이 자작한 요리여서 깨끗한 흰밥 한 숟가락에 지방이 적절히 붙은 고기 한 점, 꽈리고추 1개, 국물 살짝 적셔 먹으면 아주 꿀맛이다. 한입 먹어보면 알겠지만, 소주가 절로 떠오르는 안주의 맛이다. 술과 먹기 너무 좋은 음식이다.


칼로리 계산하는 사람이 소주는 괜찮냐고? 이봐라, 이미 지방층 두꺼운 고기를 고르고 설탕에 각종 양념을 넣을 때 무언가 잘못됨을 느끼지 못했다면 당신은 이미 오늘 다이어트 실패다. 행복한 돼지가 되어보자. 소주 한잔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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