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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hkin Feb 06. 2017

모투누이의 모아나, 바람과 바다의 신 마우이

"모아나", 두 영웅의 성장 이야기

※ 이 글에는 "모아나"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를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이라면 이 글을 읽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태초에 테 페티가 있었습니다. 테 피티는 온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그 스스로가 섬이 되었죠. 테 피티의 심장은 창조신의 힘을 담은 정수였습니다. 당연히 이 심장을 탐내는 존재는 많았고 결국 반신 마우이가 그것을 훔쳐내고야 맙니다. 하지만 마우이도 심장을 오래 지니고 있지는 못했죠. 불꽃의 악신 테카 때문에 마우이는 힘을 잃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창조신의 심장 또한 행방이 묘연해졌고요. 창조신의 심장이 사라진 지금 바다 곳곳의 섬들은 결국 그 생명력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디즈니의 신작 "모아나"의 처음을 장식하는 전설입니다. 모아나의 할머니 탈라가 극적인 효과까지 더해가며, 그래서 불쌍한 아이들을 울리고 기절까지 시켜가며 전달한 이야기죠. 창세 신화가 곧바로 멸망 신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재밌다며 듣고 있는 아이가 딱 한 명 보이네요. 바로 주인공 모아나입니다. 바다가 모아나를 선택한 데에는, 이런 담력이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거북이를 포식자에게서 지켜주는 마음씨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요.

  모아나는 디즈니가 좋아하는 성장형 영웅입니다. 테 피티를 찾아가기에 모아나는 부족한 게 너무 많은 사람이었죠. 넓은 바다를 헤쳐 가는 모험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배 모는 법조차 제대로 몰랐으니까요. 겨우 테 피티 섬 근처까지 닿았지만 목표에 열중한 나머지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고 임무에 실패하고 맙니다. 마우이마저 모아나를 떠나 버렸고요. 하지만 모아나는 어느덧 성장하여 테카의 본모습을 간파하고,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놓아 고향 모투누이의 생명력을 회복시킵니다. 운명의 방향을 돌려놓은 전환점, 그것은 모아나의 깨달음이었습니다.

  마우이가 모아나를 떠났던 시점으로 돌아가 볼까요. 앞에 할머니 탈라의 영혼이 나타나 모아나를 위로합니다. 너무 큰 짐을 진 것이 부담스럽다면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하죠. 하지만 모아나는 선뜻 모투누이로 향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망설이느냐는 할머니의 질문에 모아나는 스스로를 돌이켜 봅니다. 그리고 항상 항해자를 꿈꿔왔던 모아나, 모투누이 사람들의 삶을 지켜야 하는 차기 족장 모아나를 발견하죠. 그 꿈과 의무는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야만 한다는 것 또한 깨닫습니다. 모아나를 선택한 바다도, 반신 마우이도 그것을 대신해 이뤄줄 수는 없는 것이죠. 모아나가 바다에 뛰어들어 테 피티의 심장을 건져 올리는 모습, 마우이에게 하던 ‘너는 바다를 건너 심장을 돌려놓아야 한다’는 말을 이제 자기 자신을 향해 말하는 모습은 모아나의 결심을 짐작케 합니다. 자신에 대해 이해한 모아나가 테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않느냐’며 노래하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깨달은 사람만이 다른 존재를 참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은유인 걸까요.

  재밌는 점은 마우이 또한 이런 성장을 겪는다는 점입니다. 마우이는 먼 옛날부터 활동해 온 영웅입니다. 그럼에도 마우이는 결코 모아나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스승'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동료'입니다. 자아도취에 빠진 반신 정도로 비쳤던 마우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일종의 애정결핍을 괴로워하는 존재로 재조명됩니다. 그가 수많은 업적들을 이루었던 건, 사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우이의 바람 때문이었죠. 그리고 여기에는 갓난아기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던 아픔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탈라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우이 입장에선 섭섭한 것이, 테 피티의 심장을 가져온 건 마우이의 탐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다시 외면당하는 것이 싫었던 마우이가 창조신의 심장을 훔쳐오라는 요구까지 수행했던 것이죠. 마우이가 모아나를 떠나면서까지 갈고리를 소중히 여겼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갈고리 덕에 얻은 변신 능력으로 업적을 쌓아왔던 마우이 입장에서, 갈고리가 부서진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테카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마우이는 모아나를 위해 기꺼이 갈고리를 포기합니다. 남들에게 버림받기 싫어 갈고리를 써왔던 마우이가 동료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갈고리를 포기하는 순간이죠. 영웅이 되기 위해선 중요한 것은 마법 갈고리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요? 작품의 초점이 모아나에 맞춰진 탓에, 마우이의 성장 계기가 자세히 나오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진정한 자신, 그리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깨달은 두 주인공은 서로를 완전히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테 피티 섬에서 헤어지는 두 사람의 인사에는 그 어떤 군더더기도 인사치레도 없이 담백합니다. 서로에 대한 인정, 그리고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작별이죠.


잘 있어, 마우이.
또 보자, 모아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는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게 하고, 신뢰를 두텁게 합니다. 이 점에서 두 사람의 작별 인사는 모아나가 테카의 참모습을 알아본 장면과도 결을 같이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모아나는 모투누이 사람들과 함께 항해를 시작합니다. 족장들이 대를 이어 쌓아왔다는 돌무더기 위에 모아나는 조개껍데기를 올려놓죠. 섬에서 캐낸 돌들이 섬을 지키는 삶을 상징한다면, 해변에서 가져온 조개껍데기는 이제 모투누이 주민들이 항해자로서 탈바꿈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족장 모아나의 시대에 모투누이 사람들은 더 이상 암초 너머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덧붙임  : 사실 "모아나"의 반전은 "모노노케 히메"의 설정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모노노케 히메"와 함께 다룰 기회가 있겠죠.

덧붙임 2 : 첨부된 그림들은 각각 "모아나"의 콘셉트 아트, 그리고 OST 표지입니다. 모아나와 마우이가 서로 대등한 동료로 느껴지도록 디즈니가 많이 애썼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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