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관심 없는 '한 남자'가 있어...
며칠 전 우루과이와 한국 대표팀의 첫 경기가 열린 날이었다.
2022 월드컵 개막식 소식은 회사에서 들었지만, 한국팀의 첫 경기가 그날인지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스포츠를 좀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한국팀의 경기 일정도 모를 수 있냐'라는 눈빛을 보냈고, 나는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알고 계시냐...'라는 존경의 눈빛을 보냈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자
내가 참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다. 해외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밤을 새우고, 내 DB에는 일절 없는 외국 팀과 선수 이름을 줄줄이 말하며, 더 나아가 회사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축구 선수와 경기 스킬로 비유까지 한다. 물론 해당 지식이 전무한 나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하하하 웃으며 맞장구친다. 자세하게 물어볼까 봐 조금 불안한 눈빛을 하면서 말이다.
야근을 하다가 부서 분들과 식당에 갔는데 야구 중계를 하고 있으면, 스포츠에 진심인 분들이 자체 중계진으로 등장한다. 이번 경기가 해당 시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어떤 선수는 현재 이런 컨디션이라 어떻고, 지금 진행 중인 경기 외에도 최근에 있었던 멋진 수비나 공격에 대한 중계를 앞다투어하면, 분위기가 (나만 빼고) 금세 후끈 달아오른다.
스포츠! 그라운드 룰이 있는 공정한 경기.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선수 각자의 판단이 모여, 매 경기마다 겹치지 않는 숨 막히는 전율을 선사해주며, 보고 또 봐도 손에서 놓기 싫은 것이 일반적인 남자들이 가진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나는 저질체력은 기본이요, 공으로 하는 모든 스포츠에서 내가 자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것과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스포츠에 진심인 남자, 그 모습이 참 멋진데 말이다.
물론 스포츠를 좋아하기 위한 노력은 해봤습니다.
'3 on 3 프리스타일' 스트리트 농구가 유행하던 중학교 시절, 같은 반에 선수급인 친구가 마침 짝꿍이어서 녀석에게 쉬는 시간마다 개인 과외로 농구를 배웠었다.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녀석은 "드백아, 너는 축구해라. 농구는 니랑 안 맞다."라며 지도 편달을 중단했다.
물론 축구도 해봤다. 고등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진행된 축구는 2그룹으로 나눠졌는데, 정식 경기장을 이용하는 내가 속한 그룹과, 귀퉁이에 있는 작은 골대 2개를 이용하는 그룹이었다. 큰 경기장에 있으면 생각보다 공이 잘 오지 않는다. 말이 축구를 한다는 것이지 3분의 2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때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반면 작은 경기장 그룹은, 마치 풋살 경기장처럼, 경기 내내 공을 차야 하는 압박이 존재해서 체육시간이 끝나면 땀범벅이 되었다. 연말에 있었던 '큰 경기장'과 '작은 경기장' 멤버들의 축구 시합의 결과는 짐작하듯 큰 경기장 그룹의 대패로 기록되었다.
이후 한동안 공을 만져본 경험 없이 육군으로 입대를 했고, 이등병 시절 화려하게 '자살골'을 넣었다가 천사표로 유명했던 최고참 선배에게 "야, 이제 드백이 너는 축구장에 얼씬도 하지 말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부대 특성상 인원이 적어 휴가자와 최고참 몇 명을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 '출전(!)'을 해야만 했으며, 한 번은 선배를 밀착 마크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 선배 주위를 맴돌다가 내 이빨과 선배의 얼굴이 부딪혀 선배의 눈썹 위가 찢어지는 사고가 생겨, 안전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부대원 전체가 얼차려를 받는 일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쉽게도 스포츠가 아니다. 후에 따로 이야기를 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스우파(Mnet에서 방영되었던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계급별 미션 / 메가 크루 미션 영상들을 거실 TV에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본다거나, 첫째 녀석이 좋아하는 IVE, 뉴진스의 음방 라이브 영상 - 교차 편집(stage mix) 포함 - 을 보는 것이다.
한일전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나 스포츠의 꽃이라고 생각되는 '양궁' 같은 올림픽 경기 외에는 시큰둥 한 나지만, 가끔씩은 '딸, 아들'을 가진 아빠로서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아이들까지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스포츠를 좋아할 아이라면 어떻게든 좋아한다
라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특히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당구나, 역사물, 전쟁영화 같은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걸그룹'을 좋아했던 내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닐까? 이렇게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향한 변명 한 줄을 추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