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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Nov 01. 2023

먹이

"그냥 둬."

프리젠테이션 리허설을 앞두고 제안팀 내부 리뷰를 했습니다. 오타도 몇 개 찾고, 헤드메시지(문서 상단에 해당 페이지를 요약하는 글)가 매끄러운지도 점검했습니다. 대략 점검할 것은 다 한것 같아 문서를 닫으려는데 한 주니어 컨설턴트가 머뭇거리며 손을 듭니다.

"잠깐만요."

수 십개의 눈이 그녀를 향합니다.

"12페이지 좀 열어주세요. 네, 거기. 여기는 핵심화두 세 번째에 "시스템 정리"라고 되어 있는데 20페이지 가주시겠어요. 여기 핵심키워드에는 "고도화"라고 되어 있어요. 왠지 앞 뒤가 안 맞는 느낌이에요."

의심이 놀라움으로 바뀝니다. 이 녀석은 앞으로 꽤 잘 성장할 것 같습니다. 진심을 담아 대단하다는 칭찬 포인트를 듬뿍 줬습니다. 그래서 문서 취합하는 PMO(프로젝트 진행조직)가 수정을 하려는 순간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먹잇감을 남겨 두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 불일치를 눈치챈 주니어 컨설턴트도 이걸 찾은 순간 짜릿했을 겁니다. 쉽게 찾아지는 오타같은 것이 아니거든요. 조금 뒤 만날 늙은 하이에나들은 더 그럴 겁니다. 서로에게 이 사냥에서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어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때때로 약간 의도적으로 오타를 숨겨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리스크가 있습니다. 된통 당할 수 있거든요. 문서 전체를 싸잡아 완성도를 지적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르죠.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찾았을 때 짜릿하고 지적하면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보물을 그냥 지우다니요. 

회의가 끝날 때, 시니어 컨설턴트는 저를 보고 웃었고, 주니어 컨설턴트들은 아직 의아한 표정입니다. 아마 이해가 안 갈 겁니다. 결국 누군가는 짚어 낼 오류를 왜 그냥두는지 이해가 안 갈 거거든요. 그들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오류가 없을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오타나 저런 불일치는 그냥 수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걸 찾지 못하면 프로젠테이션의 전체 구조를 물어뜯을 수 있습니다. 그건 너무 아찔합니다.

'제발 요것만 물어뜯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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