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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Dec 31. 2019

내가 개라고?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라헐 판 코에이

저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가면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습니다. 17세기 스페인의 대표적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입니다. 펠리세 4세의 공주 마르가리타를 중심으로 한 이 그림에는 화려한 공주와 시녀들, 그들 옆에 선 난쟁이 2명과 개 한 마리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요?


오스트리아 작가 라헐 판 코에이는 이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소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썼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저는 스페인 여행을 가면 꼭 이 그림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기 전이라면 무심코 지나갔을 그림이 이 책으로 인해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 것이지요. 한동안 저는 지나가는 강아지를 볼 때마다 바르톨로메를 떠올렸습니다. 이 책이 많은 아이들에게 '청소년기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선정되는 것을 보면, 좋은 책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17세기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이 책에서 주인공 바르톨로메는 장애가 있습니다. 그는 신체가 기형이고 꼽추였기 때문에 집 안에서만 길러졌고 가족들에게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우연히 바르톨로메를 보게 된 공주가 그를 애완용 동물로 키우겠다고 떼를 쓰고 결국 바르톨로메는 궁전에 가게 됩니다. 왕실에 광대가 상주하며 총애를 다투고 길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있던 시대, 바르톨로메는 배를 곪지 않고 알록달록 멋진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스스로를 ‘개’라고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개'가 바로 바르톨로메라는 것이 작가의 설정입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야"라는 바르톨로메의 외침은 허공에 메아리치고 비웃음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정말 개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좌절하던 주인공은 우연히 그림을 그리는 궁중화가를 만나고 그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게 됩니다. 신체의 불구나 낮은 신분과 상관없이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 개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바르톨로메는 드디어 신체와 마음의 장애를 딛고 세상 사람들과 마주섭니다.  


장애를 신의 저주라고 생각했던 중세에는 장애인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 받아들이는 사람보다는 혐오하고 조롱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합니다. 바르톨로메의 장애를 혐오스럽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남의 눈에 띄지 못하게 집에 가두어 두었던 아버지와 아들을 사랑하지만 장애 때문에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같습니다. 아마 바르톨로메는 그를 구경거리로 삼고 조롱하는 이웃 사람들과 공주나 시녀들 등의 주변인들보다 부모로 인해 더 상처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바르톨로메를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은 형과 누나가 있었고 바르톨로메의 장애를 그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재능을 꽃피우게 도와주는 스승이 있었습니다.


바르톨로메가 개로 취급받을 때 분개하던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합니다.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경계, 그게 바로 인권이야. 나의 존엄성은 내가 지키는 거야"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라헐 판 코에이 / 박종대 역 / 사계절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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