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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오빠 Oct 17. 2020

버려진 공장이 도시와 숨 쉬는 곳

로컬에 색을 입히는 사람들

부산을 잠시 지나치던 날, 방치된 공장이 도시재생의 노력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 있다 해 들렀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에 위치한 이곳은 F1963이다.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 간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고려제강의 폐공장이 있던 곳이 부산비엔날레 준비 과정에서 재탄생했는데, 여전히 외지인과 부산 시민들이 사랑받는 곳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F1963 도착을 알리는 사이니지

F1963은 분명한 '재생'의 가치를 전달한다. 옛 것과 새 것을 조화했다. 이곳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입구 사이니지를 시작으로 걷기 좋은 길지 않은 대나무 길이 반긴다.

와이어 제조설비 공장부지가 대나무 숲길로 재탄생했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대나무길 같지만, 원래 이곳은 고려제강의 와이어 제조설비가 있던 공장부지다. 불리는 이름은 맹종죽 숲, 그리고 소리길. 공장 바닥의 콘크리트를 잘라 대숲 길을 조성했고 솔솔 부는 바람에 댓잎 부딪히는 소리가 도시 생활의 피곤함을 달래준다.

대숲 길을 지나면 만나는 F1963, 타공판 익스테리어가 이색적이다

혼자 갔다면 바람과 함께 여유를, 함께 갔다면 담소를 몇 마디 나눌 때쯤 F1963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외관에 '이건 뭐지?'라는 느낌을 받기 쉽지만, 익스테리어를 구성하는 타공판은 햇빛을 적절히 걸러내며 바람이 들어오기도 해 이곳의 콘셉트가 '휴식'임을 알려준다. 시각적으로는 절제된 차단을, 내부에서는 꽉 막히지 않는 여유를 주는 포인트다.


공장 부지라서 그런지 꽤나 넓은 공간에 다양한 브랜드와 휴식 공간이 공존하고 있었다. 소리길이라고 불리는 대숲 길부터 예술도서관, 국제갤러리, 달빛가든 등 자연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부터 테라로사, 중고서점인 YES24, 막걸리로 유명한 복순도가와 프라하993 등 유명 F&B도 입점해 있었다.

역시, 테라로사의 인기는 부산에서도 높다

서울에도 테라로사 매장이 있지만, 이 곳에서 만난 테라로사는 '재생'의 테마를 입어서인지 꽤나 각별했다. 출근길에 빠르게 테이크 아웃하는 커피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풀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만한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F1963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옛 것과 새 것을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적절히 조율한 느낌이다.

빛이 쬐니 따뜻한 느낌이 좋았던 순간

공간 전반이 그렇지만, 녹슨 철과 콘크리트, 그리고 현대적인 마감이 아주 좋은 느낌을 선사한다.

높은 천정은 '쉼'을 제공하는 기본 요소가 된 듯하다

테라로사는 앞사람을 보며 커피와 음악을 즐길 수도 있지만, F1963의 공간 특성상 중정이 존재해 밖을 보며 멍 때리기도 안성맞춤이다.

종종 야외 공연이 열리면 사람들이 앉는 계단

중앙에 위치한 중정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일부 구조물을 걷어내고 흙을 깔아 재탄생됐다. 한편으로는 학창 시절의 구령대를 보는 듯했지만, 옛 기억을 더듬다 보니 정겨운 기분도 든다.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공간 중 하나로 '서점'을 꼽는데, 이 곳에는 특이하게도 중고서점인 예스24가 입점해 있다. '재생'의 의미를 담아서일까, 책을 보관하는 책꽂이조차 재생 자원으로 만들었다. 중고서점이라고 하기에는 어느 YES24 매장보다 쾌적했고,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했다.

재생 자원으로 만든 예스24의 책꽂이

예스24의 곳곳에도 과거 모습을 현대적으로 활용한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F1963은 공간 전체가 유리와 철, 나무와 기타 카보네이트 관련 소재들이 곳곳에서 방문자들과 소통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기존 구조물을 재활용한 콜라보 공간, 너무 자연스러운 공존이다

북적거리는 공간 탐험이 끝나면 정원을 맞이한다. 내부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원형에 가까운 공간을 느낄 수 있는데, 서울의 선유도공원과 원주의 뮤지엄 산 느낌을 살짝씩 엿볼 수 있다.  

멤버십 제도로 운영되는 도서관

정원의 한적함에 깊게 취해 사진을 찍는 것조차 잊는 순간들이 펼쳐진다. 남길 것은 최대한 남기고, 새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덧대려고 한 노력, 상업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지만 상업적인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라는 느낌이 남는다.

억지스럽지 않은 물소리를 도시 한복판에서 듣는다는 것, 행운이다

방치된 와이어 공장이 다시 시민 품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문화공장이라는 닉네임이 제법 어울렸던 F1963, 2018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곳. 알고 보니 이 곳은 조병수 건축가와 연이 있는 곳이다.


글로벌 기업 Kiswire와 조병수 건축가의 콜라보 프로젝트인 F1963은 설계 부문을 조병수 건축가를 통해 진행했다고 한다. 거제도의 '지평집'과 함께 평창동 ㅡ자 스튜디오주택, 일산 ㄴ자집 등으로 지역성을 살린 설계로 건축계에서 명망 높은 조병수 건축가. 감히 그 세계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재생 건축에 대해 '옛 것을 활용하되 그대로 머물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재해석시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결과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것'이라는 철학이 마음에 와 닿던 공간이다.

F1963 설계를 맡은 조병수 건축가 (출처:조병수건축연구소)




F1963은 누구 한 사람의 천재성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30억 원이 넘는 부산시의 지원, 글로벌 기업의 기획, 목적에 특화된 건축가와의 협업 등 지자체(관)와 기업/전문가(민)가 합심해 성공적으로 만든 프로젝트다.


최근 다양한 방면에서 지역 활성화, 도시 재생의 키워드가 관심을 받고, 이 산업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가장 좋은 결과물이 어떤 방식으로 나올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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