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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오빠 Dec 21. 2020

춘천, 요즘 어때?

로컬에 색을 입히는 사람들

20대 시절 강원도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호반과 낭만의 도시, 춘천. 개인적으로는 공지천을 거닐며 춘천 MBC에서 PD로 활동하고자 하는 꿈을 꾸기도 했었고, 닭갈비를 먹으며 춘천보다 닭갈비가 맛있는 곳은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했던 추억이 아련한 동네다. 더불어, 강원도청과 도의회, 도교육청 등 강원도 주요 행정 담당 관공서가 위치해 있어 그 위용이 높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강원도의 다른 도시들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춘천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혁신도시 원주, 서핑의 도시 양양, 커피로 시작해 한걸음 더 진화한다는 느낌을 받는 강릉, 때묻지 않은 자연의 도시 고성까지. 매번 방문하지 않아도 뇌리에 새겨져 있을 만큼 강원도의 도시들이 각자의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을 때 나에게는 추억 가득했던 도시, 춘천의 움직임은 더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름 애정이 있는 도시, 춘천을 조금 들여다봤다.

춘천과 닭갈비는 사실 연관성이 높지는 않다

춘천 닭갈비는 사실 지역 특성과 연관된 식문화는 아니다. 춘천에는 미군들이 주둔했던 캠프페이지를 포함해 여러 군부대가 있었는데, 이곳으로 납품하던 닭고기의 재고 처리를 이해관계자들이 고민 끝에 만든 음식 문화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쳐 대학생들의 발걸음도 끊겼겠지만, 숙박하는 여행객들의 감소도 한몫했다. 춘천 원도심의 쇠퇴는 춘천 외곽 지역의 신도시 개발뿐만 아니라 평창동계올림픽 이슈로 시작된 교통망 확충이 거론되기도 한다.

여러 악재가 겹쳐 닭갈비 거리도 한산해졌다


획기적인 교통망 확충,
때로는 독이 되는 공식

춘천 원도심의 상권이 위축된 이유를 코로나19의 탓으로만 돌리긴 어렵다. 코로나19와 같이 외부 변수에 취약한 환경으로 알게 모르게 변화한 것이 구조적으로 더 큰 이유가 될 수 있다. 위에서 숙박 여행객의 감소를 예로 들었는데, 예전에 춘천은 1박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방문하던 도시다. 그랬던 도시가 점점 '무박 도시', '무정차 도시'로의 모습이 가속화됐는데, 그 이유는 강원도의 다른 도시가 자신들의 색을 갖추기 시작함과 함께 서울-양양 고속도로, KTX 강릉선 등이 개통되며 방문 트래픽을 뺏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실제로 2018년까지 춘천시는 강릉, 속초, 양양 방문객 증가 수 대비 더딘 모습을 보였는데, 2019년을 거쳐 2020년 초까지 관광객 수가 어땠을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커피를 너머 다시금 지역색을 강화한 강릉, 서퍼들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한 양양, 다양한 앵커 테넌트들과 콘텐츠로 두각을 나타내는 속초. 그동안 색이 옅었던 동해안 도시에 방문할 이유들이 점점 더 생기고 있었고, 교통망이 확충되며 해안가 도시 위주로 자연스럽게 트래픽이 몰렸다.

강릉, 속초, 양양 방문객 증가 대비 인상적이지 못한 춘천 방문객 수 (출처: 강원통계정보)

뿐만 아니라, 춘천은 강원대학교 등 대학교만 3개가 존재하는 교육의 도시인데, 기존에 하숙, 기숙사 등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던 대학생들의 동선이 수도권과 공유됨으로써 춘천에서의 소비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진 이유도 교통망 확충의 명암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지부진한 대규모 개발 사업,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춘천은 강원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이를 기반으로 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어떤 지자체보다도 대규모 개발사업에 관심이 많은데, 건너 들어보니 시민들까지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2014년에 착공했지만 시공사 교체, 유적 발견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레고랜드'가 있다. 


춘천시와 강원도는 이 레고랜드를 중심으로 교육, 놀이, 휴양이 취합된 공간이 탄생하게 되며 2,000개 내외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수적인 효과로는 레고랜드의 콘셉트 자체가 아동을 대상으로 한 공간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유일무이한 '아이들의 도시'로 브랜딩이 가능해진다. 

원래는 2021년 오픈이 예정됐었던 레고랜드, 현재 공정률은 3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지자체와 함께 춘천 시민도 큰 기대를 하고 있을 테마파크 사업, 하지만 2020년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밀집될 테마파크 사업이 무조건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확신이 약해지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대규모 개발 상업 시설 유치에 대한 긍정적 효과도 분명히 있겠지만, 방문객들의 심리도 꽤나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중도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하는 큰 결심까지 한 터라, 레고랜드는 세상에 공개가 될 것이지만 이후 어느 정도 변화된 사람들의 여가 습관 등이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상태다.


춘천만의 다양성과 색을 만들자,
 균형 잡힌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기대

대형 개발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는 했지만 2018년 이후 춘천 원도심 재생에 대한 논의와 움직임도 진척되고 있음을 느꼈다. 자연부터 인간, 문화와 낭만까지 다양한 스토리를 지닌 공간으로 포지셔닝할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골목상권과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도 공존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방문한 대전이 1900년 대 초 다수의 일본인이 거주했던 이유로 독특한 주거 문화가 배어있음을 느꼈는데, 춘천 또한 춘천만의 저밀도 공간 문화가 존재한다. 춘천은 앞서 말한 대로 미군이 한동안 머물렀던 캠프페이지가 있어 고층 건물 건축에 대한 제한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아기자기한 꼬마빌딩과 단독주택이 혼재한 거리문화가 형성돼 있는데, 이들이 중심이 된 원도심 재생사업이 실제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육림고개에 다양한 청년 창업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춘천 원도심 중에서도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약사명동 개발이 대표적인데,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약 2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책정돼 진행 중에 있었다. 대형 개발 호재도 좋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다양성을 가져가는 방식 또한 도시의 활기를 불어넣는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 향후의 운영과 지역 커뮤니티와의 상생 방안, 청년 정착화 등 무수히 많은 이슈가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춘천에서 그려가는 사람들

춘천에도 역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 하고 싶은 일을 펼쳐나가는 주인공들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방문이나 이용이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꼭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파머스가든 

서울에서 활동하던 젊은 창업가가 춘천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재료로 빵과 피자 등 다양한 F&B 메뉴들을 소개한다. 단순한 핫플레이스로 치부하기에는 사장님의 진정성과 운영 방침이 남다르다.

춘천의 로컬푸드로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파머스가든


신북커피

낡은 폐가를 리모델링(?)한 듯한 외관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며 휴식과 함께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다. 코로나19로 테이크아웃만 가능하지만, 가게만의 독특한 메뉴도 존재하고 공간 자체가 과한 리모델링이 아니라서 오히려 안락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잠깐 한숨 돌리기에 가장 좋았던 신북커피


제일약방

해외에서 경험한 공유 문화를 춘천에서 재해석하고 펼치고자 운영을 시작한 제일약방. 실제 약방으로 운영됐다가 방치된 곳을 1년 간 공사해서 만든 코워킹스페이스로 '스톤키즈'가 이어받았다. 스톤키즈의 심중섭 대표님은 스타트업 개발자부터 영상 제작자까지 요즘 시대가 원하는 잇(it)맨이다. 지금은 건물 전체를 다양한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우리의 일상을 고려해 새로운 공간 제안과 도전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는 멤버십제로 운영돼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지는 않지만 공간을 소비하고 싶은 분들과 터놓고 편안하게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지나쳐보자.


오월학교

춘천 원도심에서 20여 분쯤 벗어난 곳에 위치한 오월학교, 자세한 사항은 아래 지난 포스팅으로 대체한다.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브랜드와 공간을 창조하는 주체가 소비자에게 그 뜻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것인데, 이를 잘 구현해 주신 곳이다. 개인적으로 춘천의 다양성을 한층 더해줄 수 있는 앵커 테넌트이자 스테이다.




춘천은 호수와 낭만의 도시였지만, 앞으로는 다양성이 지배적인 도시로 색을 갖춰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춘천만큼 수도권의 접근성이 좋으면서 번뇌를 잊을 수 있는 장소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형 개발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원도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콘텐츠가 훨씬 더 다양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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