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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오빠 Apr 10. 2024

'지금'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

인류의 진화와 발전에 의문점을 제기하다, 사피엔스

지난 몇 십 년 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해 왔다. 세탁기, 식기세척기, 컴퓨터, 이메일, 스마트폰 등 지금도 무한한 공산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것들은 인류의 삶을 더 여유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발명된 제품들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느긋한 삶을 살고 있을까?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수호한다는 우리나라의 행복 관련 지표를 보면 아래와 같다.

10점 만점에 약 5.94점으로 150여 개국 중 57위 (세계행복보고서)

10만 명당 자살률 25명, 하루 평균 36명 자살 (OECD 평균 대비 2.2배 높음)

삶의 만족도 지수 OECD 38개국 중 36위 (국민 삶의 질 2023 보고서)


그리고 한 때 관심받았던 '나라별 중산층 기준'에 대해 다시 살펴보자면,

외국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악기 연주, 차별화된 요리, 약자 도움 등 (프랑스)

페어플레이 정신, 자신만의 신념, 약자 두둔 및 강자 대응, 독선 금지 등 (영국)

부채 없이 30평대 아파트 소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예금 잔고 1억 원 이상 등 (한국)


인류는 긴 시간에 걸쳐 진화, 발전, 혁신 등을 이뤄왔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과정에서, 미국적 사고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장 선진 체제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오롯이 따랐던 한국의 지표는 인간이 과연 행복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다. 세계적 석학인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 혁명이 전 세계를 휘몰아치는 시점에 역사상 처음으로 힘의 중심이 인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지도 모르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또한, 우리가 진정 알아야 할 것은 기술보다도 인간의 마음과 그 마음이 만들어내서 믿고 있는 환상, 소위 상상의 질서를 파악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인류의 발전을 사피엔스를 통해 담았다. 여기서는 사피엔스에서 제시한 주요 관점 중에 기억할만한 것들을 정리하려 한다.


인류는 행복해지고 있는가?

생존을 위해 이동 생활이 필수였던 수렵사회 기간에는 전염병도 적었고, 전쟁도 적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생활에 있어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이 고루 섭취될 수 있는 식단을 가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원전 9,500여 년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농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인류는 처음으로 영구적 정착생활을 하게 된다. 직관적으로는 삶이 안정되고 풍족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때부터 인류는 '미래와 건강에 대한 걱정'이 시작된다. 매해 수확량이 일정해야 하는데 홍수와 병충해 이슈도 생겼으며, 밀을 주식으로 삼다 보니 면역력이 결핍돼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농업을 시작하며 인간은 디스크 탈출,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에 걸리기 시작한다. 농업의 시작을 혁명이라고 표현하지만, 일반 농민들의 삶은 열악해졌고, 도시와 국가가 이뤄지며 생긴 기득권층과의 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농업으로 정착하기 시작하며 인구가 급증해 인류는 이전 시대로 돌아가지 못한 것도 있다 (출처: 중앙시사매거진)

이후 언급되는 과학혁명과 산업혁명도 맥락을 같이한다. 과학혁명으로 인간은 기술의 진보와 낮은 유아 사망률을 경험하지만,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제국주의의 탄생, 그리고 이것은 유전학과 생물학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까지 이어진다. 과학 발전에 자본주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고, 여기서 신용의 개념이 창출돼 지금까지 이어졌다. 2000년 대 금융위기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빈부격차는 윤리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시화, 농민의 소멸,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등장, 민주화, 가부장제 해체 등은 가족과 지역 공동체를 붕괴시켰는데, 인류의 발전을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들라크루아의 파리는 배경에 공장과 앞 쪽의 행복한 사람들이 함께 등장한다. 여기서 행복 없는 삶을 역으로 표현하고 있다. (출처:  Alchetron)

그런데 수렵사회부터 현대사회까지 이어진 발전 과정을 곰곰이 들여다봤을 때, 분명히 인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배운 것 같은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상의 질서란 무엇인가?

상상의 질서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수렵시대 기간의 애니미즘, 농업혁명 시대의 종교, 과학혁명 시대의 정치의 공통점을 알아낼 수 있다. 각 시기마다 드러난 형태는 다르지만 이들 모두는 신화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아마도 모여 살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니) 셀 수 없는 다신교에서 셀 수 있는 다신교 정도로 좁혀져 왔다. 


우리는 이렇게 지금도 신화에 노출이 되어있다고 할 수 있는데, 상상의 질서란 결국 누군가가 꾸준히 만들어 놓은 체계, 질서, 문화이고 이를 대중들은 상상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며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상상의 질서가 수립되면 그 질서에 맞는 환경(집 구조, 도시 형태, 관념 등)이 따라오며, 삶의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19세기 낭만주의와 20세기 소비자주의가 만나 여행은 현대사회의 미덕이 됐다

상상의 질서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는 이 질서가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지으며,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달러화, 인권, 국가, 기업이라는 것은 사실 상상에 기반한 현실이다. 수십억 명이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라는 것을 여행을 통해 즐기고, 돈을 많이 쓰는 이유는 19세기의 낭만주의와 20세기 소비자주의 신화가 결합됐다고 한다. 낭만주의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강조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여행이다. 소비자주의 역시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가능한 한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행이 현대사회의 미덕과 같이 느껴지게 된 이유는 이렇게 신화가 만든 상상의 질서가 현실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할까?

지난 몇 십 년 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해 왔다. 세탁기, 식기세척기, 컴퓨터, 이메일, 스마트폰 등 지금도 무한한 공산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것들은 인류의 삶을 더 여유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발명된 제품들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느긋한 삶을 살고 있을까?


이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고 있는 수많은 상상의 질서와 무관하지 않다. 상상의 질서의 반대편에 자연의 질서가 있다. 중력, 자연 현상, 이치 등 자연의 질서는 붕괴할 우려가 극히 적다. 하지만 반대로, 인위적으로 형성된 상상의 질서는 붕괴할 우려가 있다. 인류를 제어하는 알 수 없는 수단들은 상상의 질서에 맞춰 행동하도록 권고하거나, 가끔은 강제하면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아직도 GPT가 사람들을 느긋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까?

글 초반에 언급한 우리나라 사회의 불행과 관련한 지표들의 개선은 개인이 상상의 질서를 깨달아가면서 각자의 존중받을 수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음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빠른 기간에 한 번에 이뤄지진 않겠지만, 어린 친구들에게는 상상의 질서를 파악하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지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교육을, 어른들은 인문학 공부가 점점 더 필요해지는 기분이 드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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