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싫었던 이유
얼마 전 뉴스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결국 엄마가 회사를 그만뒀다.
코로나가 심해지고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곳이 없고, 여건이 되지 않는 부부들이 결국 아이의 엄마가 회사를 관두고 육아를 하게 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뉴스였다. 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부분이다. 그런데 최근에 육아를 하던, 임신을 한 나와 가까운 언니들, 혹은 지인의 아내분 내지 지인의 지인인 아내분. 또는 회사에 건너서 얼굴만 알고 있던 육아맘 동료. 여러 사람들의 퇴사 소식 혹은 회사를 관두게 된 이야기를 나는 꽤나 많이 접했다. 대수롭지 않을 이야기가 며칠 동안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어릴 때 나는 결혼도 하고 싶지 않았고 설령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안 해본 거라면 모든 다 하고 도전하는 성격이었던 내가 왜 아이는 가지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가장 가까운 예로 어머니가 보였다. 이제는 연세가 지긋한 어머니는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지 않던 시대를 사셨지만 박사학위까지 따 낸 소위 고학력자였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되면서 회사를 관뒀고 오빠와 내가 어느 정도 컸다고 느껴질 때마다 다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셨지만 우리 때문에 결국 오래 다니지 못하셨다. 나중에는 공부에 대한 욕구,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집에서 취미로 공부를 하셨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든 찾아서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일을 얼마나 하고 싶어 하셨는지 안다. 말하시지 않아도 그저 느껴진다. 자식들이 모두 장성하게 크고 나서야 어머니는 이제 주 5일을 출근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셨다. 예전처럼 머리를 쓰는 직업은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시고 보람을 느끼신다. 우리를 더 이상 양육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서야 일을 할 수 있어진 거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친구의 사촌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를 다니다가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고, 복귀를 하려던 찰나에 둘째 임신을 하면서 휴직기간이 길어졌고 둘째까지 낳고 돌아간 회사에서는 업무 적응이 어려웠고. 업무에 다시 뛰어들어서 열심히 하려니 아이들의 양육이 걸려서 결국 회사를 관뒀다는 이야기. 다시 회사를 다니고 싶어서 준비를 했고 최종 면접을 앞둔 가운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아이들의 어린이집 문제로 최종 면접을 가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현실적이었다.
내 주변에도 아이를 낳고 일을 '안'하는 게 아닌 '못'하게 된 언니들이 많다.
아이와의 유대관계도 좋고,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도 좋고, 그래 다 좋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던 시절에 열정이 넘쳐나던 그 모습, 회사에 들어가서 신나 하던, 회사 업무를 따로 스터디하던 그 빛나는 모습을 내가 기억하고 있어서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있는 언니를 보면 속상해질 때가 있다. 이건 친하지 않은 언니더라도 속상해진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보육을 하는 여성을 안 좋게 보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학창 시절에 엄마가 되고 싶다고 꿈꾸던 학생은 거의 없을 거다. 커리어를 갖춰나가고 싶어 하고 직업을 꿈꾸면서 공부를 하고 미래를 그려나간다.
아이를 낳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엄마가 되어버리게 되는 사회가 화가 나고 속상한 거다.
내가 사회초년생이던 때에 나는 워킹맘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싫어했다. 함께 야근을 하지 않았고 업무 시간이 끝나자마자 칼처럼 가방을 메고 뛰어나가는 워킹맘 선배들과 협업을 하면 상대적으로 내가 일을 더 많이 책임져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워킹맘이 집에 간 시간에 일어난 회의, 업무 결정 등 많은 사항을 다시 설명해줘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고 어찌 보면 선배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 주변에 아기를 낳은 지인들이 많아지면서 바라보는 관점이 변한다. 아이의 하원 시간에 맞춰서 가기 위해서 쉬지 않고 일을 하고, 당연한 권리를 말하는데 눈치를 보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과거에 내가 했던 생각이 얼마나 형편없는 생각이었는지 창피하다. 그런데 내 주변엔 아직도 과거의 내가 했던 생각을 그대로 하고 있는 지인들도 넘쳐난다.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거다.
회사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하던 워킹맘 동료가 있었다. 프로젝트가 온전하게 끝나고 회고를 하는 시간에 동료는 눈물을 보였다. 애들을 챙기겠다고 먼저 퇴근하면서 야근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했고, 집에 와서는 애들에게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업무를 하니 가족들에게 미안했다며. 둘 중 하나를 놔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회사를 관둘 생각도 했었다고, 기다려주고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누구도 그 동료에게 왜 일찍 가는지 야근을 함께 하지 않는지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좋은 구성원이었고 팀원이었다. 하지만 나라도 그 동료처럼 야근하며 고생하는 동료들을 두고 먼저 갈 때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지 못할 것 같다.
주변의 눈총이 없어도 힘든데 주변의 작은 말 한마디, 원성이 더해지면 또 한 명의 워킹맘이 육아맘이 되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미래를 그리면서 이제는 아기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나는 멋있는 여성이 되고 싶어! 사람들이 말하는 일 못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 를 외치던 나는 이제 가정을 꾸리고 내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과연 이 사회에서 나를 포기하지 않고 모두 지킬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시선과 편견, 유리벽 속에서 회사를 정년퇴직까지 다닐 수 있을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워킹맘이 회사를 다니기엔 너무 역경이 많다. 임산부를 코로나가 이렇게 심한 가운데 만삭까지도 무조건 출근시키는 회사, 임산부도 산악 워크숍에 필수로 참석하게 해서 유산하게 만든 회사, 면접에서 임신 계획을 묻고 임신 계획이 있으면 채용을 하지 않는 회사.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다. 주변에 산재되어 있는 숱하게 들려오는 회사들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다.
나는 나도 가족도 주변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내가 조금 힘들었다면 그다음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은 조금 덜 힘들 수 있기를.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결국 엄마가 관두는 환경은 이제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