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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안녕 Apr 21. 2021

스물다섯, 제주에 내려가다.

서울 토박이.가장 좋다고들 말하는 스물다섯.연고 없는타지.

첫 회사 생활을 시작한 건 스물셋이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수많은 인턴 자리, 정규직 자리를 놓고 이력서를 썼지만 생각보다 이름 있는 학교, 이끌어주는 선배가 없다는 사실에서 부딪히는 유리벽이 존재했고 나를 받아줄 회사가 있을까, 어디든 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강남에 위치한 이름 있는 IT회사에 합격했다. 


첫 회사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이 안 된다 싶을 정도의 꽉 막힌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 다녀보는 회사라 당시엔 모든 회사가 그런 줄 알았다. 

출근은 8시, 퇴근은 언제나 새벽 3시. 

새벽 2시쯤 되면 갑자기 호출받은 술자리에 가서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셨고 말도 안 되는 트집,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이상한 문화에 새벽에 택시를 타고 울면서 집에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몸이 피곤하니 친구들을 만나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도 감정노동처럼 느껴졌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내가 좋아하던 개발은 더 이상 가슴 뛰는 일이 아니었고 내 몸은 이미 누더기처럼 변해서 망가질 때로 망가져 있었다. 


회사를 관둬야겠다고 결심을 한 순간은 사랑하는 우리 치타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당시 치타는 몸이 많이 안 좋았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다. 매일매일,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을 해서 일하던 나는 아픈 치타와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회사 일을 하느라 휴가를 전혀 쓰지 못했다. 고양이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가야겠다고 휴가를 올렸고 휴가 날짜가 오기 전 치타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치타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픈 아이 옆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미안함, 허무함이 몰려오면서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고 깊은 회의감 속에 그제야 그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겨우 2년 정도의 경력으로, 대리도 달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직은 무모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간절함이 보였던 것인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 과분하게도 그 당시 좋다고 말하는 판교에 있는 IT회사와 제주, 판교에 로케이션이 위치한 지금의 회사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제주에 내려가고 싶었다.


당시의 나는 너무 지쳐있었고 가족도 친구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표정을 띄지 않고 가만히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제주에 가면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평생 살아온 서울을 등지고 스물다섯에 제주에 내려왔다. 


스물다섯에서 시작된 나의 제주살이는 이제 오 년이 지나 서른의 이야기를 제주에서 써내려 가기 시작했고, 이 곳에서 나의 가족 아랑이와 남편을 만나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제주에서의 생각과 감정, 서울에서의 생활과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연재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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