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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옷장지기 소령님 Mar 20. 2019

어떤 분이 우리 옷을 대여하겠대!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 7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2012년 당시 우리의 상황은 이랬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코워킹 스페이스에 책상 하나를 빌려쓰면서 의자 뒤쪽에 세워놓은 작은 행거에 걸린 정장 10여벌.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그나마 10벌 중에 7벌은 우리 스스로 기증한 옷이고, 순수하게 기증받은 옷이라고는 단 세 벌이 전부였다.


고백하자면, 트위터로 설문조사를 빙자한 기증캠페인을 벌이고 나서 얻은 수확은...한 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설문조사를 시작한지 불과 이틀 만에 두 번이나 라디오방송을 탔다고 주변에서는 대박이라 했지만 방송의 힘은 생각보다 크지않았다.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 중 20여분께서 기증을 약속해주셨지만,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기는 쉽지않았다. 아마도 소중한 옷을 덥석 보내기에는 우리가 미덥지 않았던 탓이리라. 


그렇게 안개 속 같은 겨울을 보내고 봄이 시작되는 즈음에 첫 번째 기증 정장이 도착했다. 블랙 컬러의 모직 스커트 정장 한 벌이었다. 당장 입기엔 너무 두터웠지만 어찌나 반가웠던지... 이 평범한 블랙 정장은 우리 열린옷장의 영원한 보물 1호이다. 열린옷장의 문을 열어준 큰 의미가 담겨있으니 말이다. 천만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옷인 것이다. 지금도 그 옷이 대여될 때마다 첫 번째 기증정장이라는 말씀을 꼭 드린다. 옷이 돌아올 때까지 혹시라도 반납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봐 조마조마해 하곤 한다.      


그 천만금보다 값비싼 정장을 맨 처음으로 기증해주신 분은 고주연 님. 

옷과 함께 보내주신 짦은 사연을 보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중학교 선생님이셨다. 교사가 되기 위해 처음 임용고시를 볼 때 면접을 위해 아버지가 사주신 정말 소중한 옷이었다. 이제는 체형이 변해 입을 수 없게 되었지만 늘 옷장 가장 깊숙이 간직하셨던 옷을 꺼내어 기증해주신 것이다. 


'기증'이라는 것을 처음 받고 보니 덜컥 겁이 났다. 과연 이 옷을 우리가 잘 보관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보내주신 이런 깊은 마음을 앞으로 입게 될 청년구직자들에게 제대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하지만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정장을 대여하겠다는 '청년구직자'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옷장 속에서 먼지만 쌓여가다 기증으로 세상 빛을 본 정장들은 우리의 행거에서 다시 먼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이제는 한 여름... 면접시즌도 이미 다 끝났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울고 싶은 심정으로 여름을 맞이했다. 작년 여름은 유난히 길고 더웠던 거 같다. 면접용이라 거의 블랙인 정장들을 바라만 봐도 더웠다.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기적같이 전화가 울렸다. 

"여자친구가 갑자기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요, 혹시 정장을 빌릴 수 있을까요?"     


여자친구인 임종숙 님의 면접정장을 대신 챙겨주는 착한 남자, 김성환 님의 전화였다. 잠깐 두 분의 후기를 전하자면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13년 6월 8일, 웨딩마치를 울리고 예쁜 부부가 되었다. 곧 부부를 닮은 예쁜 아기도 태어났다.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이번에는 김성환 님의 정장을 대여하기 위해 열린옷장을 찾아주신 덕에 두 분의 소식을 알 수 있어 너무 반가웠었다. 


다시 2012년 7월로 돌아가 보자. 낯선 길을 물어물어 코업의 열린옷장 사무실, 아니 책상을 찾아오신 두 분이 얼마나 황당하셨을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면접은 바로 당일!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종숙님은 바로 정장을 갈아입고 면접장으로 달려가야할 상황이었다. 


당시에 우리는 사이즈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무작정 오시라고 해놓고 나서 '어? 근데 맞는 옷이 있으시려나?' 뒤늦은 걱정을 하는 어리버리들이었다. 피팅룸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종숙님이 도착하시고 나서야 '어? 옷은 어디서 입어보지?' 허둥지둥 여자화장실로 안내하는 무뇌아들이었다. 


그런데 참...우리는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길래 이리도 운이 좋은 건지!

첫 번째 대여자 임종숙 님에게 첫 번째 기증자 고주연 님의 정장이 맞춘 것처럼 꼭 맞는 것이다. 한 여름에 입기엔 너무 더운 모직 정장이었지만 종숙 님은 맞기만 하면 괜찮다고 급히 바로 면접장소로 출발하셨다. 


이런 연유로 우리 열린옷장은 '기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임종숙 님 이후로 한 두분 씩 대여를 하러 찾아오실 때마다 늘 우리는 기적같기만 했다. 아니, 요즘 수많은 대여자분들이 매일같이 찾아주시는 것도, 매일같이 기증박스가 도착하는 것도 모두 기적같기만 하다. 


지금 열린옷장은 15개의 피팅룸을 갖춘 135평 공간에 2,600여벌의 정장과 셔츠, 블라우스, 타이, 구두까지 정장 코디에 필요한 모든 아이템을 갖추고 있다. 대여하려는 분들이 점점 많아져 늘 부족하긴 하지만 사이즈가 없거나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그냥 돌아가시는 분은 거의 없다. 


그러나 열린옷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구석구석의 옷장을 모두 활짝 열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모두에게 열린 옷장'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하지 않겠는가? 

당신의 옷장을 열어보는 것으로부터 

기적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Tip for your start.

기다림의 밤을 견뎌야, 기적의 아침은 온다.


열린옷장의 사업계획에도 이런 기다림의 시간이 있을 수 있다는 예상은 전혀 없었다. 대부분 창업을 준비하다 보면, 우리가 시작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줄 거라는 착각, 아니 자기 주문같은 것을 걸게 된다. 왜냐하면 불안하니까! 그러나 이 시점에서 조금만 냉정해지자. 불확실의 시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시작하는 것과 잘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냥 기다리며 시작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 7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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