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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옷장지기 소령님 Mar 31. 2019

받는데에도 예의가 필요해!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6화.

커다란 전광판의 시계가 드디어 36시간의 대장정이 시작됨을 알렸다. 


60명의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6개 팀별로 나뉘어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모두들 시간이라도 멈출 듯 비장한 표정으로 준비해온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앞으로 36시간 동안 졸음, 피곤함, 외부로부터의 유혹을 모두 이겨내고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계획했던 웹이나 앱을 만들어내야한다. 


열린옷장을 위해 소중한 36시간을 포기한, 아니 헌정한 9인의 무사들. D사, N사, M사, O사 등 국내 굴지의 IT기업에서 모인 기획자와, 개발자들로 과연 눈빛부터 심상치않다. '졸음따위 씹어 먹어버리겠어!'라며 단 1분도 잠들지않겠다는 각오들이 대단하다.   


다음세대재단과 희망제작소가 함께 매년 주최하는 "소셜이노베이션캠프36"의 한 장면이다.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 세상의 변화에 동참하고 싶은 젊은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들이 한 자리에 모여 36시간 동안 미리 선정된 NGO/NPO를 위해 웹이나 앱을 개발하는 행사다. 2012년 운좋게 열린옷장도 그 혜택을 받게된 것이다.


제6화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홈페이지라는 뿌듯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불편함을 느끼던 터였다. 시간도 비용도 천문학적이라 아예 손 놓고 있던 것이 또한 홈페이지 업그레이드 작업이었다. 그런 터에 대한민국 최고의 IT전문가들이 우리를 위해 나서준다니 이번 기회에 홈페이지 고민은 말끔히 끝나겠구나 싶어 너무나 셀레였다. 


작업은 오직 36시간 동안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D-day 한달여 전부터 정기적으로 사전모임을 갖고 단체 담당자 인터뷰, 기획서 작성 등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홈페이지가 필요한지 그림을 그려나갔다. 우리는 개발자, 기획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동안 말로만 꿈꾸었던 홈페이지에 대해 쏟아내곤 했다. 


그런데 원하는게 너무 많다는 것은, 원하는게 없는 것과 같다. 아니, 원하는게 뭔지 모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끝없이 쏟아놓다 보니 만들어야할 홈페이지는 거의 우주항공모함 수준이 되어버렸다. 무려 50여장의 기획서에는 어마어마한 기능과 컨텐츠가 담겼다. 없는게 없었다. 기획자들도 개발자들도 당황스러워했다. 


"아....이게....36시간에 작업......가능할지....."

"제대로 하면 최소 6개월은 걸릴 작업인데....."


하지만 단 한 가지도 포기할 수 없다는 우리의 눈빛에 그들도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일단 해보죠. 36시간이 부족하면 캠프가 끝난 후에도 모여서 해보는게 어때요?"  

고맙게도 젊은 IT천사들은 우리가 원하는 홈페이지를 끝까지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열정과 패기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우리의 과한 욕심과 무지가 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게 될 지 그 때는 정말 몰랐다. 


예상했던 대로 36시간은 우주항공모함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이미 너무나도 끈끈한 한 팀이 된 개발자와 기획자들은 캠프가 끝난 후에도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계속 소통할 수 있도록 SNS에 그룹페이지를 만들어놓고 주말만 되면 약속을 정해 계획했던 홈페이지 작업을 위해 모이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홈페이지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모두가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야근도 주말근무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 계속 모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겨우 모인다고 해도 작업을 원활히 진행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끊어질듯 끊어질듯 이어지던 홈페이지 작업 모임은 결국 6개월여만에 미완성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열린옷장을 하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지인들이 참 많은데, 이 9인의 IT천사들에게는 특히 더욱 그렇다. 우리가 너무 준비없이 과한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늘 부담을 지고 살아야했다. 미완성으로 끝난 작업 탓에 아마 지금도 개운하지 못할 것 같아 너무나 미안하다. 


몇몇 분들과는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가끔 얼굴보며 서로 하고 있는 일을 응원하곤 하는데, 만날 때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또 다시 미안하다. 이번 기회를 빌어 남우님, 병국님, 성훈님, 보라님, 준우님, 누리님, 영은님, 해정님, 가진님 모두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는 소셜이노베이션캠프36을 통해 소중한 사람들을 얻음과 동시에 소중한 배움도 얻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참 흔하지만 너무나 맞는 말이다.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자는, 세상 누구도 도울 수 없다." 





Tip for your start. 

"내가 원하는 것이 명확해야,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재능기부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면, 그저 받는다는 사실에 기뻐하기 전에 고민하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고민하고 요구해야 돕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6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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