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8
저녁 8시 40분, 어둑한 종로 뒷골목을 걷던 중
누군진 기억나지 않지만, 암튼 전화를 걸려고 했다.
습관처럼 초성을 눌러서 전화번호를 찾고 있는데, 예기치 않은 이름이 보였다.
이름을 불러본지도, 들어본지도, 기억해본지도 15년이 넘는 한 친구의 낯선 세례명.
불현듯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친구의 덥수룩한 얼굴이 떠올랐다.
작은 키와 허름했던 MLB 모자, 베이지색 바지와 회색 맨투맨티가 보이더니,
꼰대스런 말투와 허풍스럽던 걸음걸이가 떠오르고,
술집 소줏병들과 벌겋게 달아올라 소리지르던 모습이 끄집어졌다.
기억은 끊어질 줄 모르고 줄줄이 올라오는데
괜시리 불쾌한 기억이 떠오를까 싶어 얼른 기억을 끊고 싶었다.
근데 왠걸.
오랜만에 끄집어진 기억은 간만에 신선한 공기를 맡은 고래마냥 수면 위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수치심이란 태그가 새로 붙은 과거 기억들이 부끄러워 잘 묻어두려 했는데...
슬쩍 삐져나온 기억들을 별거 아닌 걸로 치부하기엔 너무 자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