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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g Ha Sep 26. 2022

생활 > 시 > 삶

로즈 조지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놀라운 변기를 생산한다.” 


볼리비아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일본의 국제개발협력 기관인 JICA의 보건 사업 견학 차 포토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KOICA는 오루로시에 3차 병원 신축 사업을 진행 중이었고, 나는 막연히 JICA의 프로젝트 역시 이와 비슷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포토시 공항에 내려 SUV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한참을 달린 뒤에야 도착한 조그만 마을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화장실     


이었다. 아! 붉은색 벽돌을 조악하게 쌓아 올린 직육면체 속에 수줍게 자리 잡고 있던 새하얀 세라믹 변기와, 그보다도 더 수줍은 얼굴로 그 옆에 서서 자신의 첫 화장실을 자랑하던, 익명의 쎄뇨라 볼리비아나!     


인턴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코로나가 팬데믹 단계로 접어들고 내 취업이 여전히 어두운 독서실 안을 헤매던 때에도, 조금은 살만해졌다고 생활이 아닌 삶을 살고 싶다 부르짖는 요즈음에도, 문득문득 그 새하얀 변기가 떠오르곤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내 무의식 속 토템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읽고 쓰는 삶과 먹고 싸는 생활의 괴리가 회귀 불가능할 정도로 커져 버리려 할 때 작동하는.


“생활은 시보다 더 진실하고 / 시는 삶보다 더 진하다는데 / 밥이 될 수 없는 거짓말의 시를 쓰면서 / 어떻게 살아 있기를 바라며 / 어떻게 한 사람의 희망이기를 바랄 수 있을까 (정호승, <거짓말의 시를 쓰면서>)”    

 

어떤 텍스트는 읽는 이로 하여금 삶과 생활이라는, 도저히 중첩되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간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득한 이 거리를 어떻게 해야할까. 동전의 양면이지만 결국엔 하나의 동전일 뿐인 이 두 세계가 만날 수 있도록, 시인은 시를 썼다.


* 당시 JICA는 볼리비아 전역에서 임산부와 영유아의 이환율 및 사망률을 낮추는 모자보건강화 프로젝트를 수년간 진행 중이었는데, 그 핵심은 시내에서 동떨어진 공동체 단위의 마을들에 올바른 손 씻기 방법 및 위생적인 우물 사용법 등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가구 1화장실의 공급이었다. (물론 지역 거점 병원들에 대한 인적·물리적 지원도 함께 행해지고 있었다)      


*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책이다. 그것도 진지하게. 로즈 조지는 뉴욕과 런던의 하수도에서부터 일본의 변기회사와 인도의 슬럼가를 종횡무진하며 똥에 대한 몰이해를 파헤치고 똥의 가치를 퍼올린다. 비록 입가가 아닌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웃음이긴 하지만, 작가의 유머러스함 덕분에 심적으로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완독할 수 있었다. 최근에 읽은 환경과 빈곤 관련 도서 중에서 가장 동기부여가 잘 되었던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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