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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g Ha Jan 10. 2021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특권을 알아차리는 확실한 계기는 그 특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때이다.”      


2017년 한 장애인이 지하철 계단의 장애인리프트를 타려다 계단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듬해 6월 서울의 지하철 1호선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매 정거장에서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6개의 정거장을 가는데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많은 시민이 이동에 불편을 겪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시위가 공공질서에 해롭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공공질서는 정말 모두에게 이로웠을까? 다수의 비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 안으로 내려가 6개의 정거장을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필요한 시간이 비슷했을까?      


법실증주의 계열의 법학자 켈젠은 헌법의 기본권이란 ‘반사적 이익’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기본권이란 하늘이 내린 천부인권이 아니라 법규의 미비 혹은 집행에 따라 반사적으로 얻게 되는 이익이란 뜻이다. 그동안 우리가 편의라고 깨닫지조차 못했던 편리한 일상들은 어쩌면 누군가의 침묵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즉 우리가 누려온 편리한 일상이란 우연히 획득한 반사적 이익에 불과한 것이다.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소수를 배제하며 다수를 위해 만들어진 이 질서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부당한 특권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못한) 이 당연한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다가 "그 특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때"가 되어서야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사람은 성별, 나이, 직업, 종교, 성적지향, 국적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다수 집단도, 절대적 소수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분류하는 다양한 지위들에 따라 우리는 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도, 때로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작가의 말대로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구조적 차별은 우리의 감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청각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의 채용 기준, 트렌스젠더 등의 성 소수자들을 곤란하게 하는 화장실의 남녀 구분,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를 고려한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의 고정관념과 시스템 등, 우리를 둘러싼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는 사회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차별은 마치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고 역시나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나를 포함한 대다수가 이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우리는 스스로가 차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이를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고, 더 좋은 직장을 찾지 못했고, 더 높은 지위를 점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꺼이 그 차별을 감수하려고 한다. 외부에서 만들어진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내면의 시선”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불평등은 우리에게 편안한가?”     


그렇다면 이렇게 피해자마저도 차별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구조적 차별, 폭력의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이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차별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소수자가 되는 것이 개인의 선택과 잘못이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소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불안에 떨어야 하고 그 고통을 혼자서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차별과 폭력을 양산하는 사회적 시스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우리를 억압하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연시하던 것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문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그리고, “현재의 불평등은 우리에게 편안한가?”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은 ‘기둥 뒤에 공간있어요’만큼이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다. 만약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라면, 우리가 읽고 쓰는 것은 우리가 되고 싶은 우리가 아닐까.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풍경만으로 속단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상상해내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김지혜 교수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통해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것 역시 그런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으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을 직시할 용기"를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습니다를 연상케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표현은, 우리를 재단하고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앞으로 마주할 차별들에 대해 우리 자신만을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이고, 주변의 불평등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응원이다. 그러므로 기억하자, 사물은 항상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고 기둥 뒤에는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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