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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g Ha Jan 13. 2021

당신과 나의 공생가설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7편의 이야기가 공통의 주제를 지닌 하나의 가설이다. 그것은 바로 1492년 근대성이 탄생한 뒤로 인류가 끊임없이 부딪혀온 문제인 타자와의 만남, 그리고 그와의 공생 가능성이다. 소설은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먼 미래 혹은 우주의 다른 행성과 같은 낯선 공간을 배경으로 인류에게 가장 익숙한 문제를 다루면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오직 감정 그 자체였던가?”     


한 문구회사가 감정을 물질화해서 판매하자 사람들은 행복과 설렘 같은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우울과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까지 마구 사들이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던 정하는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은 거예요”라는 직장 동료의 말에 더욱 큰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오직 감정 그 자체였던가?”     


행복과 설렘, 우울과 증오. 감정이란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물질화된 감정을 사들이는데 열을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타인과의 연결을 염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급한 대로 그 관계의 결과라도 자신의 마음대로 다룰 수 있도록, “단단히 만져지는” 물질화된 감정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하의 말대로 “의미가 배제된 감정”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     


<감정의 물성>뿐만 아니라 다른 단편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타자와의 만남을 꿈꾸는 이들의 타인에 대한 몰이해가 만들어낸 세계,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들이 만들어낸 디스토피아. 예를 들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는 완전한 인간을 추구했던 릴리의 인간배아 디자인으로 인해 지구가 신인류와 비개조인으로 분열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인류를 나누는 담벼락이 서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는 사실과 그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도 사랑과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데이지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한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안나는 우주를 탐험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인류가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해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 남겨지고 배제된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되묻는다. 의미가 없는 감정의 소유, 배제를 통한 완전함의 추구, 목표가 없는 수단의 발달은 이토록 허무하다.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되고 만다. 우리가 결국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아닐까. 개인 우주선을 타고 가족이 있는 슬렌포니아로 가려는 안나는, 자신을 막아선 이에게 말한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배제가 아닌 공존, 그리고 타인과의 사랑이다. 인간과 외계인의 공생 가능성에 대한 단편인 <공생가설>은 “마음, 사랑, 이타심” 즉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을 인간이 타고나는 것이 아닌, 외계인과의 공생을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스펙트럼> 역시 외계인과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김새도 언어도 삶과 죽음에 대한 개념마저도 다른 외계인 루이는, 희진에게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완전한 타자”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희진은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루이 역시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희진이, 그래서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라고 느낀다. 사랑,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이 모든 감정은 이렇듯 불가능할 것만 같은 타자와의 공존, 서로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느낀 적 없는 무언가가 아주 그리워지는 감정이었다.”     


왜 하필 우주였을까. 지구와 우주를 배경으로 인류와 외계인의 공존을 다루는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당신과 나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저렇게 다른 존재들마저도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 있다면, 이렇게 닮은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분명 지금보다 더 서로를 잘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릴리가 만든 유토피아를 떠나 결국 지구로 돌아간 순례자들처럼,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테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것이다. 낯설지만 그립고 멀고도 가까운, 당신과 나의 공생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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