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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g Ha Jan 17. 2021

라떼는, 말이야...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조제>

시작부터 눈물이 날 정도로 끝이 뻔한, 그리고 그런 결말이 가장 알맞다는 걸 알면서도, 막연히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 영화를 만들 때의 감독의 생각, 배우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쓰네오의 대답은 결국 ‘나도 나를 사랑해’가 되고 말았다. 쓰네오가 조제를 사랑하는 데 성공할 수 있으려면 조제의 결여(다리)만큼의 결여를 제 안에서 발견했어야 했다. 그러나 쓰네오는 실패했다. 예나 지금이나 쓰네오에게는 ‘없음’이 너무 없는 것이다. 조제의 집을 떠나며 쓰네오가 한발 늦게 오열하는 장면이 그토록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것이 죄지은 자의 참회의 눈물이 아니라, 실패한 자의 통한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죄가 아닌 실패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조제가 쓰네오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를 비난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는 비난하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더 분명 해지는 것이지만, 그녀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였기 때문이다. 조제는 성공했다고, 이 영화는 말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아름다운 힘이다. (신형철,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 정확한 사랑의 실험>)"     


스스로가 쓰네오 같은 연애를 해왔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변명을 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신형철 평론가는 쓰네오의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단언했지만, 그것도 분명 사랑이었다. 쓰네오에게는 ‘없음’이 너무 없다 했지만, 나는 때때로 내게 결여가 있으므로 헤어짐을 선택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는 결국 ‘나도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기에 실패한 사람이었고, 다른 많은 결여가 있었지만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음으로써 채워내야 할 결여는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그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너를 사랑한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는 차마 ‘나도’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나의 사랑을 주는 것보다 너의 사랑을 받는 게 너무 어려워서, 되돌려줄 게 없었다.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한 가지뿐이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것은 나였지만, 떠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도망친 것은 쓰네오였지만, 떠난 것은 쓰네오가 아니었다. 쓰네오가 조제의 집으로 이사 올 때, 반대로 버려진 조제의 책들과 유모차를 떠올려 보면, 용기 있게 들어간 것도 과감히 떠나온 것도 결국은 조제였다. 사랑에 실패하고 도망친 쓰네오는 남겨졌다, 조제가 없는 나머지 세계에. 그러므로 쓰네오는 멈춰 서서 흐느끼지만, 조제는 뒷모습만을 보이며 유유히 멀어질 뿐이다. 신형철의 말대로 "이것이 이 영화의 아름다운 힘"이다. 또한 나와 쓰네오의 사랑을 실패라고 말하는 그의 글이 오히려 그 슬픔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위로가 되는 이유이다.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의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주인공 안나는, 우주를 탐험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인류가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해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 남겨지고 배제된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되묻는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필름 카메라로 찍은 듯한 질감이나 컨트롤할 수 없어 제멋대로 부서지는 한낮의 햇살만이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보다 선명한 색감과 화려한 조명으로는 전달이 되지 않는 그런 이야기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때에 분명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이야기가, 있는 듯하다. 한마디로 그때 그 이야기가 더 좋았다는 뜻.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라떼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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