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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g Ha Jan 19. 202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

영화 <남극의 쉐프>

이것도 이제 꽤나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꼬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짓과 맞닥뜨린 것이다. 이전에 꼬마는, 이 세상에 달콤한 배나 파이나 값 비싼 시계 외에도, 아이들의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다른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안톤 체호프, <하찮은 것>)”     


정신을 차려보니 멕시코였다.      


교확학생을 가야겠다는 나의 말에 아빠가 한 대답은 “거기서 거기.” 여기에서 총에 맞아 죽으나 저기에서 칼에 찔려 죽으나 똑같으니까, 이왕이면 다시는 가보지 못할 먼 곳을 가보라고. 첫 해외여행이 지구 반대편이라니, 내 인생 과연 괜찮은 것인가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비행기 안이었다.   

   

과연 멕시코는, 라틴아메리카는,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멀고도 다시 오고 싶을 만큼 멋진 곳이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위험하지도 않았고, 딱히 대단한 걸 지니지도 않았으면서 매 순간 불특정 다수를 경계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일상 속에서 한없이 행복하다가도, 우르르 쏟아지는 삶들을 다 담아내지 못해 버거웠고 불안했다.     


무엇보다 그것은 나의 부모님이 살아본 적 없는 곳이었고 또 당신들이 겪지 않은 삶이었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의 자식으로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세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이상 부모님의 자식으로만 나를 규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이 모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해 12월 쿠바 즈음에서, 나는 확실히 우리가 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누구에게 나의 슬픔을 이야기 하나? (...) 이오나가 아주 열심히 말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안톤 체호프, <애수>)”     


그리고 그것은 참, 외로운 일이었다.          


귀국을 5일 남기고, 멕시코시티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경찰서와 대사관을 오가며 하루를 다 보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눈물을 참느라 혼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멕시코에서 보낸 지난 1년이 너무 행복했던 탓이다. 그래서 만 23년 인생 최대의 위기에도 함부로 누군가를 탓하거나 미워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고 그러다 방심하는 순간에는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그 모든 일을, 난데없이 벌어진 이 판을 수습해야 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그 순간에 아빠나 친구가 옆에 있었다고 해도 별로 위로가 되진 못했을 거라는 깨달음이, 와락 밀려왔다.     


그러니까 그건, 누군가 옆에 있다고 사라지거나 몇 번의 토닥거림으로 위로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난생처음 겪는 존재론적 쓸쓸함. 시발, 산다는 건 존나 외로운 일이구나, 다들, 이렇게 살고 계신 겁니까? 그렇다면 나도, (콧물을 닦으며) 괜찮다고, 생각했다.     



"8명이서 외롭진 않나요?"

"가끔 외롭긴 하지만, 그건 딴 아저씨들도 마찬가지니까요."     


따라서 니시무라도 괜찮았던 것이다.     


남극의 쉐프 니시무라는 남극으로 오기 전 가족과 함께 있을 때도, 남극에서 7명의 남자들과 동고동락할 때도, 똑같은 외로움을 느낀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어느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깨닫는다. 이 세계에는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위로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 누구와 있어도 항상 자신의 몸무게만큼은 쓸쓸하다는 것을. 참 다행인 점은 니시무라의 말대로 “그건 딴 아저씨들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므로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있는 그 순간에도 다 같이 외롭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로한다는 아이러니.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영화다. 남극에서 이렇게 따뜻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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