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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g Ha Jan 20. 2021

끓어오르는 강과 (마술적) 리얼리즘

안드레스 루소 《끓어오르는 강》




(마술적) 리얼리즘 El Realismo (Mágico)     


마술적 리얼리즘은 서구를 중심으로 소설의 죽음이 거론되던 1960년대, 전 세계에 소설의 부활을 알린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에 나타나는 특유의 문학적 서술 기법이다. 팔팔 끓는 얼음, 4년 11개월 2일간 계속되는 홍수와 10년의 가뭄 그리고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나는 아이. 사실과 허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믿을 수 없는 사건들에 그 어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으며 천연덕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잘 만들어진 하나의 마술쇼와도 같다.     


“올해 제가 스웨덴 아카데미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단지 문학적 표현 때문이 아니라 이 가공할 현실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종이 위에 쓰인 현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일상의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의 매 순간을 결정짓는 현실 말입니다. 또 그것은 지칠 줄 모르는 창작의 원천이자 불행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라틴아메리카의 고독 –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그러나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이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배경으로 하는 SF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 환상 문학처럼 단순히 가상의 현실 혹은 비합리적인 세계를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 주목하는 것은 마술이 아닌 ‘사실’이다. 이는 《백년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연설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상상의 세계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세계이다.      


예를 들어 소설 속에는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과 마을 사람들 3,000여 명이 시위대를 진압하려는 정부의 기관총에 맞아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마르케스가 연설에서 언급했듯,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마침내 피식민의 역사를 끝낸 라틴아메리카가 20세기에 겪어야 했던 것은, 5번의 전쟁과 17번의 쿠데타였다. ‘독재정권 하에서 2천만 명의 아이들이 두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죽었고 12만 명이 실종되었으며 칠레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망명하는 한편, 우루과이의 국민 다섯 중 하나는 모국으로부터 추방되었다.’ 소설과 현실, 과연 어느 것이 더 그럴듯하며 진정 믿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질곡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우리에게도 그만큼 지난하고 치열한 것임을 기억하지 못한 채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재는 것과 똑같은 잣대로 우리를 재단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제3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매 순간 더욱 이해되지 못하고 매번 덜 자유롭게 될 것이며 더욱 고독해질 것입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같은 글)”     


더 나아가 마술적 리얼리즘이 가리키는 ‘사실’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마르케스가 조명하려는 것은 역사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라틴아메리카 그 모두이다.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근대성(식민성)이 규칙이 없거나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상과 거짓의 영역이라고 치부해버렸던,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은폐되어온 세계 말이다. 따라서 마르케스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작가들에게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규칙적이고 논리적인 근대 세계가 발견하지 못했거나 무시해버린 또 다른 현실을 옮겨 담을 뿐이다.     


“원주민들에게 대립은 부정 없이 공존할 수 있다. (월터 D. 미뇰로,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즉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단순한 문학적 서술 기법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를 보다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하나의 시선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발견/발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 이는 어떤 대립은 부정하지 않고도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이고 우리를 둘러싼 선천적 딜레마와 고독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는 삶의 방식이다.      





“끓어오르는 강이라고요?”     


문학동네의 테드북스 시리즈 중 한 권인 《끓어오르는 강》은 한 명의 과학자가 이론적으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강을 찾아 아마존을 탐험하는, 그리고 이를 통해 세계를 향한 새로운 시선을 획득하는 일종의 성장담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끓어오르는 강에 대한 전설을 기억하고 있던 지질학자 안드레스 루소는,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위 동료들의 만류와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강의 진실을 찾아 아마존으로 떠난다. 저자는 그곳에서 불법 밀렵과 벌목으로 파괴되어가는 아마존의 정글과 끊임없이 뒤로 밀려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원주민들의 삶을 마주한다. 또한 21세기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아마존의 자연과 하나의 물줄기에서 삶과 죽음을 모두 읽어내는 원주민들의 전통적 세계관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오랜 시간 배워 온 현실과 눈앞에서 경험한 세계로부터, “현대 과학과 전통적 세계관이 폭력적이 아니라 정중히 맞붙어 자연세계에 대한 경외감으로 통합되는 이야기”를 읽어낸다.     


따라서 ‘끓어오르는 강’은, 마르케스가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려 했던 라틴아메리카의 ‘사실’이며 그 강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분명 우리와 함께하지만 존재할 거라 믿지 않았던 세계에 눈을 뜨는 과정이다. 저자는 그 길에서 때때로 스스로를 의심하고 머뭇거리며 좌절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눈앞의 두려움과 경이로움 모두를 용기 있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놀라운 경험을 기꺼이 우리에게도 나눠준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에 사람들이   의심을 품으면 좋겠어.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세상에 사는지 깨닫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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