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 시 받는 텀싯 (Term Sheet)
스타트업이 적절한 투자자를 만나 IR발표를 하고, 투자자 관점에서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판단되면, 본 계약 전에 ‘Term Sheet’(텀싯)이라는 것을 받는다. 이 텀싯에는 투자금 규모뿐만 아니라 투자 집행 시의 주요한 조건들이 포함된다. 이 텀싯 조건을 가지고 쌍방(스타트업과 투자자)이 본 계약 전에 조율, 협상하게 된다.
창업자는 회계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투자자가 투자금 보호를 위해 제시하는 조건들에 대해 상식 수준에서 꼭 알아야 된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텀싯에 포함되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Tag along (테크얼롱) : 동반매도권/매도참여권 ‘최대 주주가 지분 매각할 때 투자자도 함께 매각할 수 있는 권리’
Drag along (드레그얼롱) : 동반매도청구권/매도요구권 ‘투자자가 지분 매각할 때 최대 주주 지분까지 끌어와 매각할 수 있는 권리’
Refixing (리픽싱) : 전환가액 조정. 주가가 낮아질 경우 전환사채(CB)의 전환가격이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인수가격을 함께 낮춤으로써 가격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 —> 뒤에 나오지만 리픽싱 조항이 들어가면 스타트업 대표는 긴장? 해야 한다.
Call option (콜옵션) : 특정 가격에 다시 살 수 있는 조건. 주식매도청구권
Put option (풋옵션) : 특정 가격이상으로 되팔 수 있는 조건. 주식매수청구권
Pro rata (프로라타) : 투자자가 다음 라운드에 우선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권리 —> 한국에서는 일반적이지 않고 실리콘밸리에서 통용되는 조항
최근 내가 상담한 스타트업 대표들 중 투자받으면서 텀싯 조건 때문에 고민했던 사례가 있다.
N인베스트먼트 사로부터 10억원 투자 제안을 받았던 A사 ;
A사 대표가 나에게 직접 자문을 구했던 터라 그 내막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N사 투자심사역은 사내 표준 양식이라며 거의 모든 투자자 보호 조항을 포함한 텀싯을 보냈고, A사 대표는 그것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여기서 가장 문제 되었던 조항은 바로 “경영목표(KPI)에 따른 풋옵션” 조항이었다.
만약, 위 조항을 거부하여 투자 협상이 결렬되면 다른 투자 대안 즉, 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https://g.co/kgs/26Y24T 즉 차선책 대안)가 없는 상황일뿐더러 N사가 가진 뒷 배경 -N사를 통한 자사 플랫폼 확장의 기회- 때문에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조건을 수용하고 빨리 계약을 종결하자니, 나중에 N사가 이 조항을 들어 경영간섭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어 난감한 상황이었다.
결국 A사 대표는 심사숙고 끝에 Deal breaker가 되더라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 조항(즉, 투자사가 되팔 수 있는 권한)을 삭제해야만 본 계약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끝내 관철시켰다. 설령 N사로부터 투자를 못 받더라도 자생하겠다는 벼랑 끝 전략이었고, 결과는 통했다.
현시점에서 돌아보면, 그 조항을 삭제하고 투자받은 것은 회사로서는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첫째, 작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얼어붙은 스타트업 투자 환경을 감안하면 투자 빙하기 돌입 전 투자금을 확보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둘째, 외부 요인에 의해 경영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한 현 상황을 감안하면, 만약 심사역이 제시한 표준 텀싯과 표준 계약서 그대로 사인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A사 대표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다. 물론 N사가 여론의 부담을 안고 무리하게 스타트업에게 풋옵션을 행사할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그 조항이 있었다면 최소한 법적으로는 N사의 권리 행사가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마켓컬리의 최근 상황을 보면, 텀싯에 있는 투자조건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코로나 시기에 초고속 성장을 하면서 시리즈 A, B, C, D 투자를 무난히? 잘 받았던 회사는 투자유치를 통해 대기업과 경쟁할 정도로 급성장을 하였다. 이런 급성장이 외부 환경 요인(글로벌 유동성 축소에 따른 금리 인상)과 경쟁사 출현 등으로 현재는 경영권 박탈 위기를 초래했다. 추가 투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최종 투자조건에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조항을 넣어, 올해 안에 이익을 내지 못한다면, 앵커PE 투자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될 가능성이 높다.
[참조] 마켓컬리, 최근 쿠폰이 왜 이렇게 많이 오지? (+리픽싱 조항)
https://blog.naver.com/marchwave87/223163244315
본 주제로 돌아가면 결국 관점의 차이다.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스타트업의 과도한 기업가치액와 사업의 장밋빛 미래 전망이 좌절될 경우를 대비한 투자자 보호 조항을 넣고 투자 결정을 하고 싶을 것이다. 반면, 스타트업 관점에서 보면, 이런 투자자 보호 조항이 본인들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회사를 스스로 성장시킬 자신이 있거나 다른 투자 대안이 있다면, 무리한 조건을 빼고 계약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하면 독소조항이라는 위험을 지고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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