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뿐인 삶에서 알맹이 가득 찬 삶으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미켈란젤로
1350년경부터 1600년까지 서유럽에서는 인간 정신의 해방을 추구하는 문예 부흥과 문화 혁신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를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릅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여러 위대한 예술가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로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가 있습니다. 그는 조각가, 화가, 건축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1508-1512)
미켈란젤로는 다양한 성경 속 인물들을 조각과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피렌체에 전시된 '다비드 상(David)'과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Pieta)'는 그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생동감 있는 인체의 근육과 옷감 등의 표현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우리가 특별히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작품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입니다.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를 로마로 불러들여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작업을 맡겼습니다.
초기에는 12명의 사도들의 모습을 그리는 제한된 작업으로 제안되었으나, 작품이 완성되어 갈 무렵에는 무려 300명 이상의 인물들이 천장화에 표현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구약 성경의 창조부터 노아 이야기까지를 포함한 방대한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수많은 천장화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부분은 하나님과 아담의 손이 닿는 장면을 묘사한 '천지창조'입니다. 이 작품은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재해석되었고, 다양한 패러디물로도 흔히 사용되었습니다.
고된 천장화 작업, 그로 인한 신체적 고통
천장화를 그리는 작업은 대단히 큰 육체적 고통이 따랐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편하게 누워서 천장화를 바라보며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목을 뒤로 젖힌 채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는 아래와 같은 그의 시와 삽화에 자세히 표현됩니다.
(중략)
내 턱수염은 하늘을 향하고, 내 목덜미는 아래로 꺾여, 척추에 붙어 있네
내 가슴뼈는 하프처럼 뚜렷이 자라나고,
풍부한 자수 장식이 붓에서 떨어지는 굵고 가는 물방울들이 내 얼굴을 적신다네.
허리는 지렛대처럼 내 배를 갈아 넣고,
엉덩이는 짐대처럼 내 몸무게를 떠받치네.
내 발은 안내 없이 이리저리 헤매고,
앞으로는 피부가 느슨하고 길게 늘어지며,
뒤로는 구부림으로 인해 더욱 팽팽하고 곧아지네.
비스듬하게 나는 시리아 활처럼 긴장하네.
(중략)
최후의 심판 (1536 - 1541)
1536년에 이르러 미켈란젤로는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중요한 의뢰를 받게 됩니다. 약 5년 동안 그는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벽에 새로운 걸작,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을 그리게 됩니다. 이 거대한 벽화는 종교적 변화와 혼란이 가득했던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와 신앙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시점이었으며,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의뢰의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최후의 심판 벽화는 총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가장 위쪽 부분은 의인들이 구원을 받아 들어가는 천국, 가운데 부분은 죽은 자들이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는 연옥, 그리고 제일 아래쪽 부분은 저주받은 자들이 떨어져서 고통받는 지옥입니다. 이 세 부분은 인물들의 표정과 색감을 통해 환희와 고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자화상
이 거대한 벽화에는 미켈란젤로 자신의 자화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천국에 자신을 크게 그려놓고, 지옥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신을 묘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켈란젤로는 천국이 아닌 지옥에 가까운 연옥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것도 온전한 자신의 모습이 아닌, 벗겨진 피부의 형태로 말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성 바르톨로메오는 떨어질 듯한 벗겨진 피부, 즉 미켈란젤로를 붙들고 있습니다. 성 바르톨로메오는 전설에 따르면 생전에 피부가 벗겨지는 고문을 당한 순교자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예술가로서 대중에게 대단한 명성과 인기를 누렸습니다. 귀족들과 교황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요즘 시쳇말로 예술 맛집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그는 평생 역사에 남을 이 거대한 벽화에 자신을 왜 그렇게 비참하고 초라하게 그려 넣었을까요?
다비드상, 피에타, 천장화 그리고 최후의 심판까지, 미켈란젤로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탐구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 삶의 의미 그리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 더욱 깊이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일컫어지는 솔로몬은 그의 지혜를 담은 잠언 외에, 자신의 지난날 삶의 회한을 기록한 전도서를 남겼습니다. 전도서의 성구 중 하나를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전도서 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미켈란젤로도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솔로몬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작품의 성공을 통해 쏟아지는 찬사와 부, 그리고 영광들은 최후의 심판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모두 헛된 것임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상에선 부와 명성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알맹이는 없고 껍질뿐인 자신의 삶을 표현한 게 아닐까요?
껍질뿐이 아닌 알맹이로 가득 찬 삶
땅콩을 좋아하시나요? 땅콩 껍질을 열었을 때 우연히 땅콩이 세 개 들어있으면 기쁘고, 분명 두 개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만 들어있으면 실망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예쁘고 멋진 땅콩 껍질이라도, 그 안에 알맹이가 없으면 상품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보시기에 땅콩과 같을지 모릅니다.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존재일지, 아니면 알맹이로 가득 찬 존재일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루하루 알맹이를 채워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본 글은 '벌거벗은 세계사: 레오나르도 다빈치 vs 미켈란젤로' 편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