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교훈과 역사의 반복
금본위제도 (Gold standard)
20세기 초, 세계는 금본위제도를 통해 화폐의 가치를 관리했습니다. 이 제도는 화폐와 금의 일정량이 등가 관계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었죠.
아래의 그림은 1922년 미국 정부가 발행한 금 증서(gold certificate)입니다. 정부가 발행한 일종의 지폐로, 소지자가 요구할 경우 이를 일정량의 금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보장했습니다.
금 증서는 은행 간 거래나 대규모 금융 거래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금본위제 하에서 통화의 안정성을 높이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발발과 흔들리는 금본위제
영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도 금본위제를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보유한 금의 양만큼 화폐를 발행한다'는 초국가적 원칙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각국은 금 보유량에 따라 화폐를 발행해야 했지만, 전쟁의 여파로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화폐 발행은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 체결과 독일의 분노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패전국 독일에게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요구했습니다. 독일은 20년 동안 1,320억 마르크, 현재 가치로 약 330억 달러에 해당하는 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요구는 결국 독일 마르크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고,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했습니다.
이를 비판하는 당시의 한 만평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2]. "Peace and future cannon fodder (평화와 미래의 총알받이)"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우는 아이를 바이마르 공화국에 비유하면서,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함을 꼬집고 있습니다.
이 만평은 또한 어정쩡한 조약이 장래에 새로운 전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묘사된 세 인물은 각각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그리고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입니다. 이들은 모두 조약 체결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입니다.
과도한 전쟁 배상금 문제를 지적한 케인스
베르사유 조약 회의에 참석했던 영국 재무부 소속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조약의 경제적 조항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독일에 부과된 과도한 전쟁 배상금이 독일 경제의 회복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유럽 전체의 경제적 안정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케인스의 이러한 경고는 이후 독일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불안정을 겪으며 현실화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히틀러와 나치당의 집권으로 이어져,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참사의 불씨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금 보유국이었던 1970년대 미국
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 국가들은 다시 막대한 군비를 지출해야 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대부분의 전쟁 비용을 금으로 미국에 지불했으며, 그 결과 전쟁이 종료될 무렵 미국은 전 세계 금의 약 70%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국제 경제 질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https://ko.wikipedia.org/wiki/%EA%B8%88%EB%B3%B8%EC%9C%84%EC%A0%9C
[2] https://namu.wiki/w/%EB% B2% A0% EB% A5% B4% EC%82% AC% EC% 9C% A0%20% EC% A1% B0% EC%95% 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