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중심 세계 경제의 시작과 케인스의 미완의 비전
달러-금 본위제의 출현
1944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다가오던 시기, 국제 경제 질서를 새롭게 수립하기 위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각국의 재무 관계자와 경제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이 회의의 결과, 세계는 달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체제는 금 1온스당 35달러라는 고정 환율을 설정함으로써,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축통화의 한계를 미리 인식한 케인스
브레튼우즈 체제의 설립 과정에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달러가 기축통화로 기능하는 것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경제 정책이 세계 경제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습니다. 1940년대 당시 케인스는 무역수지 불균형의 심각성을 이미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적자국의 입장에서 시장에서 불균형이 조정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환율 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리는 전략을 선호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흑자국이 자국 통화의 절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세계 통화를 꿈꿨던 ‘방코르’
이에 케인스는 '방코르(Bancor)'라 불리는 초국가적 국제 통화의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케인스의 제안하에서 각 회원국은 국제 청산 동맹에 계좌를 개설하고, 무역 흑자나 적자를 방코르 단위로 기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어떤 국가가 지속적으로 무역 흑자를 기록하면 추가적인 무역 장벽이나 부담을 부과할 계획이었으며, 반대로 무역 적자가 심한 국가에는 조정 기간과 유연성을 제공하여 균형을 맞추려 했습니다.
방코르는 주로 세계 중앙은행 간의 결제를 위한 화폐로 설계되었으며, 모든 국가의 화폐 가치는 방코르에 대한 상대 환율로 표시될 예정이었습니다. 케인스의 구상은 오늘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기능과 용도 면에서 훨씬 더 광범위했습니다.
결국 경제는 힘의 논리
그러나 이러한 케인스의 혁신적인 방안은 채택되지 않았고, 대신 미국 달러를 기반으로 한 금 태환제가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는 이후 수십 년간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 해럴드 경제, https://biz.heraldcorp.com/article/3345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