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소나기.
여느 때처럼 책을 팔고 서점을 나서는데 한 방울씩 점점이 떨어져 내리던 빗방울이 책 한 권을 거의 다 읽고 사서 나오니 굵어져 있었다.
유독 혜화역을 지나친 날에 소나기를 만나는 일이 잦다. 다행히 장대비가 아니라서 성대에서 혜화역까지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가랑비라곤 했지만 금세 앞머리가 축축이 젖었다. 후드티를 포기하고 나온 게 후회가 됐다. 내 주변으로 나처럼 비를 피해 가는 사람은 많았는데, 나처럼 머리도 감싸 쥐지 않고 무덤덤하게 걸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왜 비가 오면 머리를 감싸 쥐고 뛰어가는 걸까? 몸은 비를 맞아도 되고? 궁금했다. 본능적으로 아는 걸까. 보호해야 할 곳이라는 것을.
처음 혜화에서 비를 맞으며 고시원으로 들어갔던 일이 기억난다. 그때도 소나기였다. 불과 1년 전 (조금 더 됐지만)인데 , 생각해 보니 그 사이 많은 게 변했다. 내 상황도, 만나는 지인도, 직장도. 변함없는 것은 이곳 혜화역. 건물들. 젊은이들의 꿈과 애환들, 여전히 품에 안고 지내는 책들 정도. 쓸 만한 인간이 되고 싶어서 살아가던 어느 날 소나기를 맞으며 일기를 쓴다. 비 오는 날에는 백수린인데 공교롭게도 그녀의 소설이 가방에 있다. 카페에서 시간을 좀 죽이다가 집에 들어가서 빨래를 하고 일찍 자야겠다. 거창하게 어디다 쓸만한 인간은 못 될지 몰라도. 갑작스레 만난 비 덕분에 쓸 만한 이야기는 건졌다. 오늘 하루도, 내일도 그냥 이렇게 소나기처럼 쓸 이야기들이 많이 생기겠지. 그저 꾸준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