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중심 찾기
책받침 여인 3인방이 풍미하던 시절은 아니지만, 저도 연필을 쓰던 세대라 책받침은 아침 등교 가방에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학용품은 대부분 쉬는 시간에 그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한 손가락으로 책받침을 받치고 교실 끝에서 끝까지, 쉬는 시간이라는 그 전쟁통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지 겨뤄보기도 했습니다.
배달 점수 10점을 받기 위해서는 레슬링 선수들을 요리조리 피할 수 있는 유연성, 날아오는 지우개를 포착할 수 있는 광각적 시야, 무엇보다 흔들리는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손목의 스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만일 서울시를 평평한 책받침으로 가정한다면, 손가락 하나로 기울어짐 없이 들어 올릴 수 있는 지점을 어디일까요?
이 때 필요한 건 서울시 경계를 이루는 무수한 점들, 즉 좌표입니다. 각 좌표들에서 어딘가로 직선을 그었을 때 다른 모든 좌표들에서 그은 선들 과 가장 짧은 거리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면 됩니다.
서울시의 공식적인 중심점은 남산타워 인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GPS 측량을 통한 결과이며 측량을 할 때 기준이 되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지리적 중심을 계산하면 우리 회사 동료들이 가장 짧은 거리로 출근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료들이 회사라는 시설의 수요자라는 측면에서, 그 수요를 대표하는 지점을 찾는 작업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사 동료들의 위치, 즉 좌표를 알아야 합니다.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에서는 주소를 X, Y의 좌표로 변환하는 프로세스를 지오코딩(Geocoding)이라고 합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회사 구성원의 집 주소를 아래와 같이 지도상에 디스플레이할 수 있습니다(각자의 이름은 약자로 표시했습니다)
동료들이라는 책받침을 한 손가락으로 받칠 수 있는 한 점을 계산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주경기장 인근에 한 점(Center-1)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지점은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운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한 결과물입니다.
동료들의 위치에서 어떤 지점까지의 직선거리를 계산했을 때 그 거리의 합이 가장 작은 지점을 지도에 표시한 것입니다. 즉 가장 짧은 거리로 이동 가능한 지점입니다.
모든 구성원들을 동일한 중요도로 가정했을 때는 올림픽 주경기장 인근 지역이 중심점입니다. 하지만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J씨는 몸무게를 가중치로 해야 실질적인 중심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상대적으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 쪽에 손가락이 위치해야 책받침이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몸이 무거운 사람의 출퇴근을 배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회사 구성원들의 몸무게를 가중치로 하여 중심점을 구했습니다.
말 그대로 무게중심이 구해졌습니다. J를 향해 약 500m 정도 중심이 이동했습니다만, 여전히 올림픽 주경기장 인근 지역입니다. 몸무게라는 가중치가 중심점 이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한편 회사 구성원들의 권력도 모두 동일한 건 아닙니다. 권력자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주어 중심점을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권력이란 점심 식사 의사결정에 보다 많은 의견을 개진한 사람입니다. 평소 기억을 더듬어 권력자에 대한 가중치를 1점에서부터 5점까지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거주지에 원의 크기를 달리해서 권력 가중치를 나타냈습니다.
계산 결과 청담동에 권력을 가중치로 한 중심점(Center-3)이 만들어졌습니다. 첫 번째 만든 중심점에서 서쪽으로 약 2km 옮겨갔습니다. 권력자 P-2와 P-1을 향해서 좀 더 중심점이 이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장 입지를 결정할 때 거주인구나 직장인구 규모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소득 수준도 중요한 결정 요인 중 하나입니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구매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회사 동료들이 회사 서비스를 직접 구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을 중심으로 회사를 입지 시켜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재미 삼아 소득 대신 집값을 가중치로 해서 중심점을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한국 사람 자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이고, 그 절반 이상이 바로 거주하고 있는 집입니다. 그 집은 소득수준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간정보라는 세상에서는 집값에 공간통계적 기법을 적용해서 소득수준을 추정하기도 합니다. 주소만 알면 대략적인 소득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 정보입니다.
이미 동료들의 주소를 알고 있기에 집값(공시가격 기준)을 데이터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집값이 낮은 사람을 배려한 중심점을 구했습니다. 집값이 가장 낮은 사람을 1로 하고 집값이 높은 사람일수록 0에 가깝게 만들어 가중치로 삼았습니다.(지도에서는 집값이 높을수록 버블의 크기를 만들었습니다)
아래 지도에서 Center-4가 집값을 고려한 중심점을 계산한 결과입니다. 잠실3거리 인근이며, 가중치가 없을 때의 중심점(Center-1)과 비교해 동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P-1의 청담동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와 K의 숲에 둘러 쌓인 전원주택이 강력하게 무게 중심에 반영된 결과입니다.
회사 구성원들의 집 위치를 기준으로 정한 네 곳의 중심점 모두 회사 운영에 있어 나쁘지 않은 위치입니다.
그런데 물론 회사 위치를 이렇게 단순히 중심점을 구해 결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중교통이나 임대료, 주변 환경, 특히 매물이 있는지 여부 등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위치를 결정하는 큰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에서는 활용해 볼만한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여러 매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물류 창고의 입지 결정을 위해 매장들의 무게중심을 구하기도 합니다.
또한 인구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것은 공공정책 의사결정에 있어 광역적 시야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기반 시설에 대한 공간적 수요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리공간적 현상을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프로세스를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줄여서 GIS라고 합니다.
사실 최근에는 System 대신 Science, Service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지리정보에 학문으로서의 응용, 그리고 사람들에게 공간적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에 좀 더 무게가 실리면서 진화한 단어입니다.
단어야 어찌 됐든 앞에서 분석한 것처럼 GIS는 우리에게 공간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게 합니다. 전자지도에 동료들의 집 위치를 찾아보는 것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지도였다면, 동료들의 이동거리가 가장 짧아지는 지점이 어디인지 찾아보는 프로세스가 바로 GIS 분석일 것입니다.
어설프지만 이러한 분석을 시도해 보고 이곳에서 함께 공유하면, 앞으로 또 다른 GIS의 진화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