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로맨스를 쓴다고? 진짜? 뭘 알아서?”
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웹소설로 여러 가지 장르를 쓰긴 하지만 어쨌든 주로 쓰는 건 로맨스다. 누군가 물으면 숨길 것도 없이 저렇게 답하곤 했는데. 돌아오는 답이 저런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저건 무슨 의도일까? 라고 꼬아서 생각하기도 했다. 왜? 내가 연애도 못해봤을 것 같냐?
많이는 아니지만 못해본 건 아니다. 진짜로.
근데 이제는 뭐, 그래 로맨스를 모르면 저런 말을 할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고 만다. 사람들은 로맨스를 많이 쓰려면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고 한다. 그건 글을 안 써본 사람들의 착각이다. 일반 문학에서 등장하는 로맨스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웹소설에서의 로맨스는 말이 로맨스지 정확한 장르는 ‘판타지’다. 그러니까, 세상에 없는 거. 상상으로나 가능한 거.
그러니까 로맨스 작가들에게.
“내 얘기는 쓰면 안 된다.”
하는 따위의 말들은 진짜.... 뭐라 욕할 힘도 없는, 진짜 알못의 개소리일 뿐이랄까. 쓰래도 안 쓴다. 아니 못 쓴다.
내게도 그런 지인 같지 않은 지인이 있었다. 내가 웹소설을 쓴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그때의 나는 나름 투잡러라 아주아주 찌들어가는 중이었다. 늦은 퇴근을 하면 원고를 쓴다. 그리고 또 출근을 한다. 근데 그때는 어째선지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피곤한 줄도 몰랐다, 라는 건 내 기분이고. 육체는 착실히 지쳐가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또 사람을 좋아해서, 만나자는 대학 동기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신나게 미리 만나고 있던 친구들을 찾아 홍대로 떠났다. 이제는 어딘지도 기억 안 나는 어느 술집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20대 중반의 대다수가 그렇듯 예전 학교 다닐 때의 얘기, 이제 막 시작한 일에 대한 얘기, 뭐 그런 것들을 주제삼아 또 한참을 떠들었다. 그러다 내 얘기가 나온 건 자연스러웠다.
“요새 퇴근 늦는데 또 집에 가서 일 하는 거 피곤하지도 않아?”
내 사정을 아는 친구가 정말 아무 의도없이, 나를 걱정해서 그렇게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냐면, 그 자리가 끝나고 몇 번이나 사과했기 때문이다. 암튼 이 얘기는 뒤로 하고.
그렇게 물었고 나는 또 크게 생각하지 않고.
“피곤한 것 같은데 재미있어.”
라고 대답했다. 그에 옆에 있던 친구들이 끝나고 일 해? 알바? 아니면 뭐 집에 가져가서 일하는 거야? 등등의 질문들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건 아니고, 그냥 웹소설 써. 계약했어.”
라는 답을 했고. 친구들은 제법 관심을 가졌다. 그럴만 했다. 나는 컨텐츠를 제작하는 과를 전공했고, 다들 대학동기다 보니까,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는 뭐 아직 웹소설 IP라는 게 거의 전무하던 때이긴 했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게 친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얘기를 시작했다. 말했다시피 나는 말이 많으니까, 그런 자리는 제법 신나하는 편이다.
그러다 당연히.
“어떤 거 쓰는데?”
라는 질문이 들어왔고. 처음에는 그냥, 웹소설, 하고 얼버무리려던 게. 그 문제의 인물이.
“뭐 야설이라도 쓰냐?”
하며 키득거리는 바람에 좀 발끈했었나. 아무튼 그래서 한심하게 쳐다보면서도 숨길 게 뭐있나 싶어서 대답해줬다.
“로맨스 소설인데.”
라고 정정해주고. 다른 애들은 오, 쓰기 어렵지 않아? 정도의 말만으로 끝내려는 걸. 꼭 어느 자리에나 있는 눈치없는 그놈의 욕 들어먹어도 싼 동기 오빠는 여전히 키득거리며 그랬다.
“로맨스? 니가 로맨스를 알아?”
지는 아나. 물론 이 말은 육성으로도 나갔다. 너는 아냐? 라고. 가끔 입이 잘 안 참는 편이다.
아무튼 그 말 이후로는 대꾸해주지도 않고 안주나 주워 먹는데, 그런 놈들이 그렇다. 포기를 모른다. 적당히 하고 끊고 다른 분위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런 걸 할 줄을 몰랐다.
“야 원래 사람은 다 경험해봐야 쓰는 거야.”
라고 글이라곤 써본 적도 없는 놈이 내게 말했고. 나는 무시했다. 분위기만 나빠지는 것 같아서 친구의 취업 얘기를 꺼냈는데 술도 적당히 들어갔겠다, 평소에도 눈치도 없겠다 싶던 놈이 살살 선을 넘기 시작했다.
“연애 몇 번이나 해봤어? 너 모솔 아냐?”
내가 모솔인 것과 로맨스를 쓰는 것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거야? 라고 물었고, 안 해봤는데 어떻게 알고 써? 라는 답을 받았다. 꼭 직접 경험만 아는 건가? 시장조사 하느라 장르별로 당시 1위부터 상위권 웹소설을 죄다 읽은 내 노력은 경험이 아닌 건가?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그리고 나 모솔 아니라고 새끼야. 내 연애 경험을 갖다 쓸 생각도 없긴 하지만.
그렇게 내 눈빛을 받았으면 그 입을 닥쳤어야 했는데. 기어코 선을 넘어왔다.
“내가 가르쳐줄까?”
음, 그 말에 나는 어떤 반응이었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냥 무시했던 것 같은데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때 나는 니가 걔 머리채 잡고 흔들 줄 알았어, 라고 말했다. 조마조마했다고. 안 잡았으면 됐지, 뭐. 아니다 잡았어야 했나?
그 얘기는 아무튼 그렇게 흐지부지 됐던 것 같은데.
나중에 친구가 진짜 미안하다고, 그 얘기 꺼낸 게 잘못이었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괜찮았다. 친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눈치 없는 놈일 줄 몰랐으니까.
아무튼, 대다수의 ‘알못’들은 이런 착각을 한다. 연애를 많이 해봐야 잘 쓰는 것 아니겠냐고.
뭐, 부정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는다. 연애 많이 하면 감정에 대해서야 알 수 있겠지. 절망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런. 그런데 그 연애 경험을 내 소설에 오롯이 쓸 수 있느냐? 그건 다른 문제다.
일단 내 연애담을 소설에 등장시킬 생각이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너무 미화시켜서 어차피 내 얘기가 아니거나 너무 현실적이어서 사람들이 읽지 않기 때문이다.
말했다시피 웹소설 로맨스는 판타지 장르에 가깝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사랑이 궁금한 거다. 현실 남자와의 연애가 궁금한 게 아니다. 알고 싶지 않다. 물론 남의 사랑 얘기 재미있겠지. 연애프로그램이 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그리고 드라마 주인공 같은 사람도 있긴 할 테고, 유니콘 같은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대다수는 그저 보편적인 연애를 할 테고, 독자들은 그걸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경험하지 않을, 현실에서 볼 수 없을 사랑이 궁금한 거다.
현실에서 쉬이 보는 데이트를 하고, 결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걱정하는 거. 사람들이 그게 궁금할까? 그건 굳이 돈 주고 웹소설을 보지 않아도, 네이트판이나 뭐니 하는 곳에 잔뜩 올라오는데? 세상에 없을 이야기지만 너무 현실과도 동떨어지지 않은, 너무 터무니없지 않은, 그 안에서 리얼리티를 발견하는, 그런 게 보고 싶은 거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궁금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제발, 로맨스를 쓴다는 말에 연애 경험 많아? 라는 그런 덜떨어진 질문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잘 모르는 일에는 조언이랍시고 아무 말이나 떠들어대지도 말자. 소설쓰기는 일기쓰기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