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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티칸 Aug 31. 2015

'연기'는 실용 인문학입니다. (2)

'선택'을 느끼다.

여자는 미용실에 드라이를 하러 왔다.


"원장 선생님이 항상 해 주셨는데, 오늘 안 계신가 보네요?"


여 직원이 대답한다.


"네, 월요일은 쉬세요."


여자가 말한다.


"아,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드라이 좀 해 주세요."


여 직원이 묻는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여자가 대답한다.


"원장님이 항상 해 주시던  것처럼 부탁드려요."


여 직원이 다시 묻는다.


"음... 제가 정확하게 본 게 아니라서요. 어떻게 해 드렸죠?"


여자가 다시 대답한다.


"저도 뭐라 정확하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알아서 해주세요."


여 직원이 말한다.


"음... 네, 알겠습니다."


여 직원이 드라이를 시작한다. 

한 참을 드라이를 하고 난 뒤, 여자는 자신의 머리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가 말한다.


"이게 아닌데."


여 직원이 말한다.


"그래요? 제가 직접 본 게 아니라서요. 어떻게 좀 더 만져 드릴까요?"


여자가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 좀 더 펴 주세요. 머리가 얼굴에 달라 붙지 않게 해주세요."


또 한 참 드라이를 한다. 여자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가 웃으며 말한다.


"그냥 적당히  마무리해 주세요. 나갈 수 있게요."


여 직원의 표정이 굳어 있다. 다시 드라이를 한다. 여자가 말한다.


"지금 계신 남자 디자이너 선생님이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여 직원이 대답한다.


"네, 잠시만요."


남자 디자이너 선생님이 온다. 남자가 말한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여자가 대답한다.


"원장 선생님이 해 주시던 게 있는데, 설명을 잘 못하겠네요. 알아서 해 주세요."


남자가 대답한다.


"네. 알겠습니다."


또 한 참 드라이를 한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가 웃으며 말한다.


"이게 아닌데. 그냥  마무리해 주세요. 나갈 수는 있게 해 주세요."


남자 드라이를  마무리한다. 남자 예의를 갖춰서 말한다.


"다음에 오셔서 원장님께 머리 하실 때 잘 보고, 제가 해 들릴 일 있으면  그땐 잘 만져 드릴게요."


여자가 대답한다.


"네, 알겠어요. 아휴, 이거 머리가 이래서 어떻게 나가지?"


여 직원과 여자는 카운터로 간다. 여 직원이 묻는다.


"맡기신 가방이 어떤 거세요?"


여자가 웃으며 답한다.


"거기 초록 색 가방이요."


여자는 가방을 받아 들고 계산을 마치고, 웃으며 미용실을 나선다.



위의 이야기에는 참 많은 선택이 담겨 있습니다. 나름 굉장히 살벌한(?) 상황이죠. 글로 다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세 사람 모두 순간 순간의 선택이 참 절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이야기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쩌면 상당히 살벌한(?) 상황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지 않았을까요? 


행동
https://www.flickr.com/photos/fotofilip3/5189571337/

허락 없는 복사와 활용을 원치 않는 작가의 사진이라 링크로  대신합니다.

'연기'에서 행동은 '선택'입니다. '삶'은 행동으로 만들어집니다. 행동이 없는 순간이 한 순간이라도 있나요? 우린 매 순간 무엇인가를 하고 있죠. 그리고 그 많은 '행동'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듭니다. 우린 '감정'을 선택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행동'을 선택하면 감정, 정서는 그 선택에 따라 오는 것이죠. 간혹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것을 볼 때 아쉽습니다. '행동'을 선택하지 않고 '감정'을 선택하며 연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말이죠. '역할'의 삶은 '감정'의 선택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선택으로 드러나는 것인데 말입니다. 똑같이 우는 연기인데 어떤 사람의 연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어떤 사람의 연기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집니다. 우린 '감정'을 보고 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또는 '감정'을 보고 '삶'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사람의 '선택'을 보는 것이죠. 그리고 그의 '선택'이 만들어 낸 그의 행동을 보고 감정과 정서를 느끼는 겁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걷는 것을 보세요. 어떤 '선택'이 그 사람의 걸음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잠깐이라도 느껴봅니다. 누군가 잔뜩 화가 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의 '감정'을 보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선택한 '행동'을 보고 그의 '삶'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난 어떤 행동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선택하면서 살아가고 있죠?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지, 그 사람의 선택을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행동'에 대한 선택을 이해하고 살아간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순간'을 만나기까지, 1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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