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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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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haPark Oct 09. 2021

믹스커피 한 잔에는

Day18

요즘 나의 아저씨를 뒤늦게 정주행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꼭 보라고 할 때는 왜 그런지 아껴두었다 봐야지 싶더니, 이제서야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한 편 한 편 정성스럽게 보고 있다. 드라마와도 시절인연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거기에서보면, 아이유가 마치 비타민 마시듯이 예쁘고 작은 찻잔이 아닌 큰 컵에 매일 매일 루틴처럼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한 번에 두 봉지씩. 작은 티스푼으로 돌리면서 유리잔에 딱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짠하면서도 듣기가 좋다. 사찰에서의 풍경소리처럼, 유럽의 어느 저녁 울려퍼지는 성당의 묵직한 종소리처럼, 세탁기가 다 돌아가고 나서 이제 다 끝났다고 알려주는 멜로디처럼, 지안이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믹스커피를 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 소리를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듯 안정의 신호같다. 텅빈 방 안 어두운 구석에서 불도 켜지 않고 홀로 커피포트에서 물을 끓여 쭈그리고 앉아서 커피 두 봉지를 타서 마시는 장면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과 삶의 고단함을 펴는 시간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믹스커피가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편안함에 이르게 하는 보약처럼 다가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지안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믹스커피로 마음을 달래는 것 같았는데(어쩌면 잠을 안자려고 했던건가),  우리집에서는 아버지가 늘 아침마다 믹스커피에 홍삼과 꿀 조금을 타서 보약처럼 주셨다. 지금도 그 루틴은 계속되고 있다. (아버지는 뭘 하나 하시면 정말 꾸준하게 하신다. 놀라울 정도로.) 같은 커피인데도, 회사에서의 채찍같은 각성제로서의 믹스커피와 아버지가 아침마다 타주시는 믹스커피는 많이 차이가 난다. 사랑 한 스푼 더 넣었을 뿐인데 그건 전혀 다른 믹스가 일어난다. 회사에 다닐 때 동료들도 나의 보온병을 물어보고는 했다. "오늘도 아버지가 커피 타주셨었어?" "네에~"


회사에 다닐 때에도 아침마다 보온병에 꿀과 홍삼과 사랑이 담긴 믹스커피를 담아서 주셨다.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아침 고3 수험생 도시락 챙겨주듯이 그렇게 나의 아침 깨움을 담당해주셨다. 아버지께 회사에 믹스커피는 언제나 떨어지지 않도록 구비해두는 비타민처럼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고 말씀드려도 이건 그냥 믹스커피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꼭 챙겨주셨다. 난 커피러버이다. 드립커피도 좋아하고, 집에서 드립해서 먹는 것도 좋아한다. 믹스보다는 커피향이 주는 그 느낌을 더 좋아하는데, 사찰의 찻집에 가면 아메리카노 대신 대추차를 마셔야 제맛인것처럼 집에서 아침에는 아버지가 타주시는 모닝믹스커피가 제맛이다.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타주시는 믹스커피 한 잔은 가족의 루틴이자 아버지의 기쁨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최근에는 디톡스 중이기도하고, 믹스커피가 건강에 아주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기에, 줄이고 있다. 아예  마신다고 하니 아버지가 서운해 하시기에, 아버지에게도 베이스로 쓰기에   몸에 좋은 커피를 추천드리며 사랑의 모닝커피에 변신을 주고 있다. 정화의 여정 중에는 잠시 믹스커피는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마시고 있다보니, 매일 아침의 보약으로 혹은 마음의 위안으로 다가왔던 믹스커피가 오늘따라  땡긴다. 지안의 믹스커피타임을 보면서  그간 당연하게 받아마셨던 아버지의 사랑과 마음의 안정제를 떠올리며 감사함을 느낀다. 지안처럼 혼자서  봤지만 아버지가 타주시는  맛과 차이가 난다. 분명 똑같은 믹스커피인데, 무얼 믹스 하시는지 맛이 달라진다. 라면도 그렇듯 커피도 누군가가 사랑으로 타주는 것이  맛있는  같다. 아버지 사랑해요! 오늘도 아버지가 타주시는 사랑의 믹스커피   하러 집에 가야겠다. 믹스커피 한 잔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믹스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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