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8
요즘 나의 아저씨를 뒤늦게 정주행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꼭 보라고 할 때는 왜 그런지 아껴두었다 봐야지 싶더니, 이제서야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한 편 한 편 정성스럽게 보고 있다. 드라마와도 시절인연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거기에서보면, 아이유가 마치 비타민 마시듯이 예쁘고 작은 찻잔이 아닌 큰 컵에 매일 매일 루틴처럼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한 번에 두 봉지씩. 작은 티스푼으로 돌리면서 유리잔에 딱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짠하면서도 듣기가 좋다. 사찰에서의 풍경소리처럼, 유럽의 어느 저녁 울려퍼지는 성당의 묵직한 종소리처럼, 세탁기가 다 돌아가고 나서 이제 다 끝났다고 알려주는 멜로디처럼, 지안이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믹스커피를 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 소리를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듯 안정의 신호같다. 텅빈 방 안 어두운 구석에서 불도 켜지 않고 홀로 커피포트에서 물을 끓여 쭈그리고 앉아서 커피 두 봉지를 타서 마시는 장면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과 삶의 고단함을 펴는 시간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믹스커피가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편안함에 이르게 하는 보약처럼 다가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지안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믹스커피로 마음을 달래는 것 같았는데(어쩌면 잠을 안자려고 했던건가), 우리집에서는 아버지가 늘 아침마다 믹스커피에 홍삼과 꿀 조금을 타서 보약처럼 주셨다. 지금도 그 루틴은 계속되고 있다. (아버지는 뭘 하나 하시면 정말 꾸준하게 하신다. 놀라울 정도로.) 같은 커피인데도, 회사에서의 채찍같은 각성제로서의 믹스커피와 아버지가 아침마다 타주시는 믹스커피는 많이 차이가 난다. 사랑 한 스푼 더 넣었을 뿐인데 그건 전혀 다른 믹스가 일어난다. 회사에 다닐 때 동료들도 나의 보온병을 물어보고는 했다. "오늘도 아버지가 커피 타주셨었어?" "네에~"
회사에 다닐 때에도 아침마다 보온병에 꿀과 홍삼과 사랑이 담긴 믹스커피를 담아서 주셨다.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아침 고3 수험생 도시락 챙겨주듯이 그렇게 나의 아침 깨움을 담당해주셨다. 아버지께 회사에 믹스커피는 언제나 떨어지지 않도록 구비해두는 비타민처럼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고 말씀드려도 이건 그냥 믹스커피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꼭 챙겨주셨다. 난 커피러버이다. 드립커피도 좋아하고, 집에서 드립해서 먹는 것도 좋아한다. 믹스보다는 커피향이 주는 그 느낌을 더 좋아하는데, 사찰의 찻집에 가면 아메리카노 대신 대추차를 마셔야 제맛인것처럼 집에서 아침에는 아버지가 타주시는 모닝믹스커피가 제맛이다.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타주시는 믹스커피 한 잔은 가족의 루틴이자 아버지의 기쁨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최근에는 디톡스 중이기도하고, 믹스커피가 건강에 아주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기에, 줄이고 있다. 아예 안 마신다고 하니 아버지가 서운해 하시기에, 아버지에게도 베이스로 쓰기에 좀 더 몸에 좋은 커피를 추천드리며 사랑의 모닝커피에 변신을 주고 있다. 정화의 여정 중에는 잠시 믹스커피는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안 마시고 있다보니, 매일 아침의 보약으로 혹은 마음의 위안으로 다가왔던 믹스커피가 오늘따라 더 땡긴다. 지안의 믹스커피타임을 보면서 난 그간 당연하게 받아마셨던 아버지의 사랑과 마음의 안정제를 떠올리며 감사함을 느낀다. 지안처럼 혼자서 타 봤지만 아버지가 타주시는 그 맛과 차이가 난다. 분명 똑같은 믹스커피인데, 무얼 믹스 하시는지 맛이 달라진다. 라면도 그렇듯 커피도 누군가가 사랑으로 타주는 것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아버지 사랑해요! 오늘도 아버지가 타주시는 사랑의 믹스커피 한 잔 하러 집에 가야겠다. 믹스커피 한 잔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믹스되어 있으니까.